Culture & History Traveling

서원_향교_사당

도봉산 도봉서원과 각석군,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서원

younghwan 2010. 12. 8. 22:51
반응형

 서울 도봉산 등산로 입구 계곡에 위치한 도봉서원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서원 중 서울에 소재한 유일한 서원이다. 도봉산 기암괴석과 계곡의 맑은물, 큰 바위 등은 예로부터 명승지로 유명했다고 하며, 중종때 사림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정암 조광조 선생이 이 곳을 자주 들렀다고 하며, 1573년 선조때 조광조 선생을 모시기 위한 서원으로 창건된 사액서원이라고 한다. 서울출신인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유학자들이 시문을 남긴 유서깊은 서원이다.

 도봉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헐린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현재의 서원은 뒷편에 있던 사당만이 남아 있고,  앞쪽에 있던 강당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는 복원되지 않았다. 도봉서원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건물외 도봉산 계곡의 바위에 여러 문인들이 각석으로 글을 남겨 놓고 있는데 우암송시열의 친필로 남긴 글과 김수향, 권상하, 이재 등 이 곳을 다녀간 많은 문인들의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현재의 도봉서원의 모습은 등산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도봉산 등산로 계곡 한편에 조그만 사당만 외로이 남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봉산 계곡을 따라서 이어진 등산로에 위치한 도봉서원이다. 서울에 거주하던 유학자들이 많이 찾았던 서원으로 도봉산 계곡의 맑은 물과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옛서원은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사당만 복원되어 있다.


서원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홍살문을 통과하면 정면에서 보이는 도봉서원의 모습


서원 출입문이지만 원래는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이다. '유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유생들이 공부하고 학문을 토론하던 강당은 없어지고 사당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다.


도봉서원 사당. 원래 다른 현판이 있을것 같은데 단순히 '도봉서원'이라고 적힌 현판이 사당에 걸려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건물로 아마도 한양 가까이 있어서 법규상 제약이 많아서 건물을 원래부터 작게 지은 것으로 보인다.


도봉서원과 오랜세월을 같이한 고목


서울 도봉서원


도봉서원에 세워진 비석.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도봉서원 복원과 관련된 비석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림으로 그린 도봉산의 옛모습. 뒷편에 도봉산 암봉이 우뚝 솟아 있고,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 같다. 앞편에 강당과 누각이 있고, 강당 뒷편에 동.서재를 두고 있는 약간 색다른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서원 옆쪽에는 방이 꽤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데 서원관리인들이 숙식하는 고직사는 아닌 듯 하고, 아마도 도봉산 계곡을 찾아온 한양의 고위 인사들이 묵었던 방이 아닐까 생각된다.  계곡을 바라보고 있는 강다과 누각, 계곡 바위에 있는 정자 등 계곡의 풍경을 즐기기위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 놓고 있는 도봉서원의 건물배치로 보았을 때 사실 한양에 거주하는 고위관리나 학자들이 휴식과 여흥을 즐기는 공간의 성격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보이는 바위에 세운 정자인 침류대가 있던 자리를 안내하는 표지석이다. 침류대는 조선 인종때 시인 유희경이 계곡바위에 지은 누각이 있던 자리이다. 우암 송시열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이 이 곳 경치를 적은 시를 남겨놓고 있다고 한다.


고산앙지. 계곡건너로 보이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1700년 7월에 곡운 김수증이 쓴 글씨이다. 고산앙지란 시경에 나오는 것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라는 뜻이다.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서원담장 한쪽편에 세워 놓은 지게. 도봉산으로 음식등을 나르는 지게로 보이는데, 짐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의 고단함이 묻어나 보인다.

 도봉서원은 조선 전·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조광조와 송시열을 배향(配享: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한 사액서원(賜額書院: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으로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 묵객들이 시문을 남긴 오늘날 서울 지역 내 가장 대표적인 서원이다. 비록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유적의 대부분이 멸실되었으나 서울 지역 내 다른 서원과 달리 사당의 기단과 옛 사료상의 도봉서원 유적으로 소개된 각석군(刻石群)이 서원 터 앞 계곡에 대부분 원형대로 남아 있어 유적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유적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각종 문헌이나 시에서 오랫동안 경치가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히던 경승지(景勝地)에도 해당하므로 보존가치가 크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