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은 충남 서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충청 서해안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인 홍주목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중 정3품의 높은 관직인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인 목(牧)은 지방행정단위 중에서는 가장 큰 곳에 속하며 대부분 이름끝에 주(州)를 달고 있다. 아마도 충남서해안 지역 대부분의 고을이 직속은 아니지만 관할지역과 비슷한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홍성군은 옛 홍주목과 결성현이 합쳐진 것이라고 하면,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인근의 공주와 일본어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홍성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홍주향교는 홍주목 관아가 있었던 읍성인 홍주성에서 북쪽편에 위치한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서 목사가 근무하던 동헌과는 많이 떨어져 있다. 홍주는 구한말 목사 한응필이 읍성을 비롯하여 대대적인 수리공사를 하면서 많은 건물들이 수리되었다고 하는데 홍주향교 또한 이때 수리한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주향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 규모에 비해서 향교의 건물들은 그리 크지는 않고, 내력도 깊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홍주지역은 교육에 대한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았던 지역으로 보이며, 지역의 유력자들은 대부분 서울에 그 기반을 두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홍주는 서원 또한 그리 많았던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지역이기도 하다.
홍주향교임을 알려주는 홍살문이 향교 입구에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비각속에 보존되고 있는 비석을 볼 수 있다.
홍주향교 출입문인 외삼문
외삼문은 솟을대문을 하지 않고 있으며, 단순한 맞배지붕을 한 삼문의 형식이다.
홍주향교는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가 나란히 정면을 보고 있는 건물배치이며, 다른 지역의 향교와는 달리 마당이 명륜당 앞쪽에 있다.
홍주향교 명륜당은 앞면 3칸 규모인데, 현재의 건물로 보아서는 일반적인 향교의 강당건물과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사당인 대성전과 비슷한 건물 구조를 하고 있다. 보통 강당인 명륜당은 이 건물보다 규모가 크고 누마루의 형태나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사랑채와 비슷한 모습인데, 이 곳 명륜당 건물은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의 기능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느낌이다.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는 앞면 5칸으로 그 중 2칸만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재에 있는 사랑채 같은 방이 강당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명륜당 앞 마당.
명륜당 뒷편에 별도 건물로 되어 있는 대성전
명륜당 앞 마당을 밭으로 이용하는 등 홍주향교는 관리가 적절히 되고 있지 않는 향교로 보인다.
향교는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으로 고을마다 세워졌다. 이 향교은 고려말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나 1408년에 세워지고 1420년에 수리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등의 몇차례 큰 재난을 당한 뒤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 관아에 대한 대규모의 수리공사를 하면서 향교의 대성전을 수리하였다. 이 후에 몇 차례의 보수작업이 있었다. 이 홍주향교는 낮은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앞에는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명륜당, 뒤에는 성현을 제향하는 대성전을 두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이외에 유생의 기숙사인 동재 등이 있고, 축문을 태우는 망료대, 어둠을 밝히는 청료대, 손을 씻는 관수대 등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동무와 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동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다. <출처:홍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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