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나즈막한 화봉산 아래에 위치한 화산서원이다. 이 서원은 조선중기의 명신 백사 이항복의 기리기 위해서 건립한 서원으로 숙종때 국왕으로부터 편액을 받은 사액서원이다. 서원 인근에 이항복 선생의 묘가 있으며, 서울출신인 백사 이항복의 집안에서 아마도 가산면 일대에 근거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사 이항복의 후손들은 조선시대에 많은 정승들을 배출한 집안으로 유명하며 이시영, 이회영 등 많은 인물들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많은 기여를 했었다.
현재의 화산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17년 지방유림들이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뒷쪽에 사당이 있고 앞쪽에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있으며, 강당은 두고 있지 않다. 화산서원이 있는 포천시 기산면은 조선시대 금강산 유람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역 중요관청인 양주목 관아와 도보로 하루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오성과 한음'이야기로 유명한 친구인 한음 이덕형을 모신 용연서원이 반나절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금강산과 관동팔경 유람을 떠났던 많은 선비들이 묵으면서 학문을 논하던 서원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포천시 가산면에 위치한 화산서원 전경. 일제강점기에 복원된 것이라고 하며, 강당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동.서재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원을 찾는 손님이 많았다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건물배치이다.
서원 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화산서원 외삼문
서원내부에는 강당건물은 없고 앞면 3칸규모의 동.서재가 있다. 강학기능이 많이 약화된 일제강점기에 동.서재를 복원한 것은 이 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배려하거나 서울에 기반을 둔 백사 이항복의 후손들이 그의 묘소에 제사를 올릴때 묵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화산서원 내삼문과 사당.
서원 내삼문 앞 마당.
포천 화산서원 앞 가산면 일대는 포천에서도 농토가 넓은 지역이다. 멀리 백사 이항복의 묘소가 있는 낮은 야산이 보인다.
화산서원,
조선 선조 때의 명신 백사 이항복의 학문가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고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인조 13년(1635) 건립되었다가 숙종 원년(1675) 임금이 친히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을 내린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1년 지방유림들의 뜻을 모아 복원되었다. 현재 사당과 동.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항복은 선조13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모시고 따랐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이 되었고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광해군 10년(1618)에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해 8월달에 모든 관직을 회복하고 고향인 포천에 안장되었다. 시호는 문충공이다. <출처:포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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