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자리잡고 있는 용연서원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유명한 조선중기 문신 한음 이덕형을 모신 사원이다. 이 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중요 서원 중의 하나이다. 현재의 서원건물은 강당과 사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서원이다. 원래는 동재.서재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사당만 남아 있던 것을 1986년도에 강당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전해줄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포천시에는 용연서원과 화산서원이 있으며, 포천시 가산면에 위치한 화산서원은 오성이라고도 불렸던 백사 이항복을 모신 서원으로 용연서원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조선시대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서원들은 유람을 떠났던 선비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낮은 동산으로 배경으로 아담하게 세워진 포천 용연서원 전경. 조선시대 금강산 유람길에 위치한 이 서원은 지금은 사당과 강당만이 남아 있는 아담한 규모이지만, 금강산 유람에 나섰던 선비들이 잠시 쉬면서 학문을 논하던 곳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용연서원 외삼문. 전국의 많은 향교와 서원은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으며 찾는 사람또한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담장밖에서 본 용연서원.
건물배치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원래는 동.서재를 비롯하여 현재보다는 건물이 많았다고 한다.
용연서원 강당
강당은 앞면 3칸으로,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복원된 건물로 현판도 걸려 있지 않고, 서원강당 건물임에도 개방적인 구조를 하고 있지 않다.
원래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당건물은 앞면 3칸이지만 다른 서원에 비해서 규모가 큰 것으로 보인다.
서원 담벼락 앞에 심어진 꽃나무
용연서원 전경
홍살문 바깥으로 보이는 용연서원이 있는 포천시 신북면 전경.
조선숙종 17년(1691) 한음 이덕형과 용주 조경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숙종 18년에 사액을 받았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다. 이덕형은 선조 13년(1580)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때 구원병을 요청하러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때 영의정이 되었으나, 광해군 5년(1613) 영창대군의 처형과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논의에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인조 때 모든 관직을 다시 회복하였으며 시호는 문익공이다. 조경은 광해군 4년 (1612) 생원 진사시에 급제했으며 이조정랑,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때 끝까지 청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하였고, 숙종 때 청백리에 뽑혔으며, 시호는 문간공이다. 경내에는 사당, 강당, 동재, 서재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6.25동란으로 소실되어 사당만 남아 있던 것을 1986년 강당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처:포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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