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불교건축(불전_요사)

고성 건봉사 불이문, 들어가는 길

younghwan 2011. 5. 25. 14:13
반응형


  건봉사는 조선시대 전국 4대사찰의 하나로 신라 법흥왕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실질적으로 고려말엽 나옹화상이 중수하고 건봉사로 개명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세조가 건봉사를 원찰로 삼고,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일본이 통도사에서 가져간 부처님의 사리를 돌려 받아서 이 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건봉사는 동해안 지역을 관장하는 큰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전각대부분이 불타버리고 불이문만 남았다고 한다.

 건봉사 불이문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건축물이다. 사찰 출입문으로 건봉사는 1920년에 건립된 것으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찰의 불이문이나 천왕문과는 달리 산문이 일주문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돌기둥에 사찰을 수호하는 의미로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어서 사천왕이나 금강역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금강산 자락에 위치한 건봉사 출입문인 불이문. 일반적인 전각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돌기둥에 지붕을 얹어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불이문 현판. 일제강점기에 유명한 서예가인 김규진의 글씨라고 한다.


사찰을 수호하는 사천왕이나 금강역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금강저가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


불이문 천정에 그려진 그림


건봉사 불이문

건봉사 불이문
1920년에 건립된 건봉사 경내 출입문으로, 사찰의 건물 중 한국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건물이다. 1단의 낮은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다듬은 높이 1.61m의 4개 돌기둥 위에 둥근 나무기둥을 세워 지은 건물로, 다포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돌기둥에는 길이 90cm 크기의 도안화된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천왕문을 따로 건립하지 않고 불이문에 사찰 수호의 기능까지 보탠 것을 의미한다. 상당 중앙에 걸려 있는 불이문 현판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매우 단정하면서도 힘이 있다. <출처:고성군청>



고성 건봉사를 들어오는 숲길


건봉사 입구 주차장의 넓은 마당


마당 한편에는 건봉사와 관련된 사명대사 기념관이 있다.


마당을 들어오면 출입문인 불이문을 볼 수 있고 그 옆으로 비석 몇개가 있다.

 

건봉사 불이문 옆에 있는 능파교신창기비.

 


불이문을 지나서 건봉사로 들어가는 숲길


건봉사 옛 건물들이 있었던 절터에는 큰 규모의 범종각이 복원되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린 전각들 중에서 대웅전 주변 전각들이 먼저 복원되어 있다. 대웅전 앞 개천을 건너는 돌다리는 보물로 지정된 건봉사 능파교이다.


건봉사 대웅전에서 개천을 따라서 내려오는 길


멀리 건봉사 능파교가 보인다.

 


개천 너머에 있는 건봉사 불이문


건봉사 전경. 복원된 건물이 그리 많지는 않다.

 



크게 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