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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보령 충청수영 객사와 공해관 삼문

younghwan 2011. 6. 2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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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옛 충청수영 관아건물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객사 건물이다. 전라좌수영 객사인 진남관이나 통영의 객사인 세병관은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웅장한 데 비해서 충청수영 객사 건물의 그리 크지 않은 건물로 군현규모 고을의 객사와 비슷한 규모이다. 충청수영은 조선초 왜구의 침입을 견제하기 위해 설치된 이래 구한말 폐영될때까 존재했던 충청지역 서해안을 통제했던 해군기지로 해안을 따라 쌓은 성곽안에 수십동의 영사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충청수영 객사는 수군절도사가 왕을 상징하는 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던 장소이자, 중앙에서 온 관리들나 충청수영 산하의 장교들이 수영을 들렀을때 묵었던 숙소이기도 하다. 앞면 4칸, 옆면 2칸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왼쪽편 3칸을 대청마로, 오른편 1칸은 방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규모의 객사이다. 원래 건물명은 운주헌이라고 하며, 장교청이라고 부리기도 한다. 원래는 마을에 위치한 오천초등학교에 있었던 것을 지금은 언덕위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객사 앞에는 충청수영 동헌 출입문이었던 삼문이 같이 옮겨져 있다.


충청수영 객사 전경. 원래 이름은 운수당이며, 장교청이라고도 불린다. 객사 건물로는 그리 큰 편은 아니며, 일반 관아의 객사에 비해서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앞면 3칸의 넓은 대청마루. 통제영 객사인 세병관이나 전라좌수영 객사인 여수 진남관도 넓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마도 휘하 장교들과 회의가 많았던 수영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객사 대청마루


대청마루 우물천정. 궐패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객사 오른편 1칸에만 온돌방을 두고 있다.


중앙에서 온 관리들이 묵었을 것으로 보이는 온돌방


지붕을 받치는 공포


충청수영 객사 전경


객사는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다고 하며, 현재는 충청수영 성곽 안쪽 언덕으로 옮겨 놓고 있다.


객사 출입문.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는지는 잘 모르겠음.??



충청수영을 거쳐간 관리들의 공덕비


원래는 수군 절도사가 집무하던 동헌 출입문이었던 공해관 삼문. 현재는 객사와 함께 이곳을 옮겨놓고 있다.


공해관 삼문 현판


옆에서 본 공해관 삼문



충청수영 객사와 공해관 삼문
조선시대 충청수영 안에는 수십 동의 영사가 있었는데, 1895년 폐영과 함께 모두 소실되고 객사, 공해관의 삼문, 진휼청만 남아 있다. 본 건물은 오천초등학교 자리에서 옮겨진 충청수영 객사이다. 수군 절도사가 왕을 상징하는 '전'자를 새긴 패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 건물명은 운수헌이었다. 이 건물 앞에 있는 삼문은 수군 절도사가 집무하던 공해관의 삼문이다. 원래 객사와는 별도 건물인데 한자리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출처:보령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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