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은 삼국시대 가야연맹체 중 하나인 성산가야국이 있었던 신라시대에는 벽진군 또는 본피현이 설치되었다가 후삼국시대 지방 호족인 이충언이 태조왕건을 도운 공으로 경산부가 설치되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성주목이 설치되었으며, 경상감영인 대구와 가까이 있었던 까닭에 성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도 많았다. 조선시대 큰 행정단위인 목이 설치되었지만 고을의 규모가 크지 않고 대구의 감영과 가까이 있었기때문에 실질적으로 작은 고을 인 현이 설치된 곳으로 볼 수 있다.
성주 성산관은 고을 수령이 근무하던 동헌이다. 조선시대 큰 고을의 수령인 목사가 근무했던 곳이라고는 하는 다른 지역의 목사가 근무했던 동헌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은편이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주목 관아가 있었던 자리에는 군청이 들어서 있으며, 관아건물들은 동헌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다.
성주목 관아 동헌 건물이었던 성주성산관. 원래 군청건물이 있는 곳에 있었으나 군청사를 신축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5칸으로 다른 지역 관아의 동헌에 비해서 작은 편이다. 마루바닥이 지면에서 높게 되어 있는데 지기가 다습한 까닭이라고 한다.
왼쪽편 3칸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는데, 마루 앞에 난간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오른편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는 동헌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데 성주 성산관은 한쪽에만 온돌방을 두고 있다.
출입문인 솟을 대문은 건물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임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뒷쪽에서 본 성주 성산관
성산관 앞쪽에는 성주를 대표하는 인물인 일제강점기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성주 성산관,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286
이 건물은 조선시대에 성주목의 목사가 공적인 일을 처리하던 관아 건물이다. 처음에는 성주 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것을 조선 효종 8년 (1657)에 목사 최계훈이 현재의 군청사 자리로 옮겨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으며, 1994년 현 군청사 신축공사로 인하여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언덕 위에 남향으로 지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오른쪽에 2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 방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건물 정면의 주춧돌이 기둥모양으로 나열되어 있다. 마루바닥이 지면에서 높게 되어 있는데 지기가 다습한 까닭이라 하며, 습기에 대비한 지혜가 돋보인다. <출처:성주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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