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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대구 달성 도동서원강당사당부장원(보물 350호), 담장이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강당과 사당

younghwan 2011. 8. 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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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소재한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굉필 선생을 모신 도동서원이다. 낙동강 동안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서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원 중 하나로 건축물로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어서 강당과 사당, 강당을 둘러싼 담장이 보물 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서원은 선조 원년(1568)에 쌍계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어졌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중건한 것으로 선조 40년(1607)에 선조가 직접 도동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린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제외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도동서원은 문루인 수월루, 한주문, 강당인 중정당, 사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과 서원 관리인 숙소인 고직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강당, 사당, 강당을 둘러싼 담장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강당인 중정당은 앞면 5칸 규모의 큰 건물로 가운데 3칸의 대청마루와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의 전형적인 사당건축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동서원 건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강당을 둘러싼 담장으로 기와를 이용해 쌓은 맞담으로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전통 담장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도동서원 강당는 석재로 쌓은 축대 위에 세운 앞면 5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규모가 있는 건축물이다. 건물을 세운 축대나 기둥, 지붕 등을 만든 수법이 상당히 뛰어나며 수준 높은 목수가 지은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축대를 쌓은 석재는 규격화된 크기는 아니지만 잘 다듬어서 쌓았기때문에 안정감이 있고 세련되어 보인다. 축대 앞쪽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동물머리 모양의 석누조 형태의 장식을 하고 있다. 이는 일반 건축물에서는 잘 볼 수 없고 궁궐이나 성곽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래쪽 축대에도 동물머리 모양의 장식을 하고 있다.


도동서원 강당인 중정당 대청마루. 대청마루에 걸려 있는 '도동서원'이라고 적힌 현판은 조선 국왕 중 명필로 알려진 선조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도동서원 강당 처마 아래에 걸려 있는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고 한다.


현판 아래에 있는 작은 현판.


강당 양쪽에 있는 온돌방. 문살이 단정하면서도 깨끗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강당 앞에 돌로 만든 시생대이다. 제사를 올리 제물을 올려놓고 검사를 한다고 한다.


강당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강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기와담장을 얹은 맞담으로 구성이 간결하면서도 매우 아름답다. 


강당 뒷편에 있는 사당 앞 축대에는 여러가지 크고 작은 나무를 심어 놓고 있다.


사당출입문인 내삼문. 다른 사당의 경우 솟을대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동서원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어서 절제된 느낌을 주고 있다.


사당을 올라가는 계단.


계단에서도 돌로만든 짐승머리 장식을 볼 수 있다.


도동서원도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당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판문을 달아 놓고 있다.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도동서원강당사당부장원(道東書院講堂祠堂附墻垣, 보물 350호),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 
 서원이란 훌륭한 사람들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던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교육기관을 말한다. 도동서원은 문경공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 원년(1568) 처음 세워 쌍계서원이라 불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져 선조 37년(1604) 지금 있는 자리에 사당을 다시 지었고 선조 40년(1607)에 임금님이 직접 도동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8년(1871)의 서원철폐령의 대상에서 제외된 47개 서원가운데 하나이다. 행사와 교육의 중심 건물인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있다. 좌우 끝 칸은 온돌방으로 꾸몄고 그 앞면엔 각각 작은 툇마루를 두었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양쪽 툇마루와 통하도록 해 놓았다. 제사지내는 공간의 중심 건물인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김굉필 선생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지붕과 공포를 쌓은 양식은 강당과 마찬가지로 맞배지붕이다. 앞면 3칸에는 각각 2짝씩 널문을 달았다. 강당을 둘러싼 담장은 기와를 이용해 쌓은 맞담으로 구성하여 매우 아름답다. 간결하고 검소하게 지은 전통 깊은 조선 중기 서원 건축물로 잘 보존해야 할 문화재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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