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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

경주 장항리사지 (사적 45호), 토함산 동쪽 자락에 자리잡은 옛 절터

younghwan 2011. 10. 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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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토함산 불국사에서 석굴암을 지나 감은사지와 대왕암이 있는 감포해안으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45호로 지정된 장항리 절터이다. 사찰의 내력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지 것이 없어서 양북면 장항리라는 지명을 따서 장항리사지라고 부른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동쪽편 기슭에서 있으며, 토함산에서 발원하여 감은사지 앞을 지나서 동해로 흐르는 대종천 상류 계곡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은 계곡 사이의 좁은 공간에 두개의 탑을 세우고 그 뒤쪽 중앙에 금당을 배치한 쌍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으며, 감은사지와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석조불대좌가 있는 금당터는 확인되고 있으나, 강당과 회랑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절터에는 국보 236호로 지정된 서오층석탑과 일제강점기에 도굴로 파괴된 동오층석탑의 석재들이 남아 있다. 금당터에는 석조불대좌와 금당 건물 초석 등이 남아 있으며, 이 곳에 있던 석불상은 경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불상이 놓여 있던 석조불대좌는 아랫단에 팔각형으로 동물상과 신장상이 새겨져 있으며, 윗단에는 연꽃을 조각해 놓은 원형이다.



경주에서 감은사지와 대왕암이 있는 감포해변으로 가는 도로변 언덕에 위치한 장항리사지. 멀리 도로에서 우뚝 서 있는 오층석탑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곳에 절터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감포해변으로 가는 여정이 급해서 쉽게 접근하지는 않는 곳이기도 하다.


장항리사지 절터로 올라오는 계단길


절터는 서쪽편에 2개의 탑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편에 석조불대좌가 놓여 있는 금당터가 있다. 현재의 모습으로 볼 때는 전형적인 쌍탑, 1금당의 가람배치와는 약간 차이가 있어 보인다.


석조불대좌가 놓여 있는 금당터. 축대르로 비롯하여 건물초석과 석조불대좌가 잘 남아 있는데,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다.


금당터 중앙에 놓여져 있는 석조불대좌. 윗단은 원형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아랫단에는 동물상과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이 대좌위에 놓여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은 현재 경주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석조불상이 놓여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윗단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 아랫단에는 신장상과 동물상이 교대로 새겨져 있다.


아랫단에 새겨진 동물상


신장장.


신장상과 동물상


석조불 입상, 경주 장항리 절터 출토, 통일신라 8세기
경주 양북면 장항리의 한 절터에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한 것입니다. 장항리 절터에는 오층석탑 2기와 불상대좌가 남아 있습니다. 이 불상은 하반신은 없는데도 서 있는 불상이라고 부르는 근거는 불상대좌에 불상을 세우기 위한 촉 구멍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크기는 대략 4.8m로 옛날 척도로는 1장6척에 달하는 매우 큰 불상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공들여 불상을 크게 만든 이유는 불교 경전에 석가모니부처의 키가 1장 6척이라고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만들었을까요? 불상이 언제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개의 불상은 언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불상은 연대를 알 수 있는 불상과 얼마나 같고 다른가에 따라서 대체로 시기를 결정합니다. 어느 한 시기, 특정 지역에서는 비슷비슷한 불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지요. 이 불상과 비교할 수 있는 불상은 바로 8세기 중엽에 만든 석굴암 본존불입니다. 근엄한 얼굴, 건강한 신체, 사실적인 옷 주름 등 어디지 모르게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출처:경주박물관>



금당 건물 기둥을 올려놓았던 초석들은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금당터 초석


금당터 축대는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장항리사지 금당터


절터 중앙에는 국보 236호로 지정된 서오층석탑과 석재들을 쌓아 놓은 동오층석탑이 있다.


석탑은 동일한 양식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2층의 기단부에 5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형태로 전체적인 균형미가 빼어나며, 불국사 삼층석탑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 1층 몸돌 4면에는 도깨비형태의 쇠고리가 장식된 문을 조각하고 그 양쪽에 인왕상을 새겨놓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도굴꾼에 의해 파괴되어 석재만 일부 남아 있는 동오층석탑


동오층석탑 뒤에는 파괴된 기단부 석재들이 놓여져 있다.


금당터 동쪽편에도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실제 건물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두개의 탑 뒷편에도 강당이 들어설 수 있을 정도의 터가 있다.


장항리사지 전경


토함산 석굴암에서 넘어오는 도로. 멀리 토함산 고개 부근이 보인다.



경주 장항리 사지 (사적 45호),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1
이 절터는 토함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두 계곡과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계곡물은 대종천을 따라 흘러 감은사지를 지나 대왕암 근처에서 동해에 이른다. 계곡의 높은 절벽 위에 터를 닦고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기 위한 금당을 마련하였다. 잘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만들고 위에 덮개돌을 얹었던 흔적이 있으며 건물의 앞쪽으로 계단을 마련하였다. 불상을 놓았던 대좌가 남아 있는데 아래.위 두개로 되어 있다. 아래 돌은 여덞 방향에 창 모양의 안상을 만들어 네 곳에는 동물을, 다른 네 곳에는 신장을 조각하였다. 이 곳에 깨어진 불상이 있었는데 1932년 서탑을 복원하면서 국립경주박물관 정원에 옮겨 일부를 붙여 세웠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절 배치에서 보이는 금당 앞의 중문이나 뒤의 강당, 화랑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이 절터에 있는 동.서 5층석탑은 1932년에 도굴꾼들이 무너뜨린 것을 9년뒤인 1932년에 복원.정비한 것이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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