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절터

경주 황복사지, 낭산 북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신라 왕실과 밀접했던 황복사 옛 절터

younghwan 2011. 10. 20. 12:56
반응형


 국보 37호로 지정된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예전에는 '경주 구황리삼층석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웠다. 원래 이곳에는 삼국시대에 세워진 황복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나 삼층석탑을 제외하고는 옛절터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지명을 따서 불렀던 것 같다. 황복사는 652년 의상대사가 출가한 사찰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절의 내력을 보면 신라황실과 관련이 많은 사찰이었던 것 같다. 황복사는 불교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숲에 세워진 흥륜사, 황룡사, 분황사 등과 함께 낭산 북동쪽 끝 자락에 세워졌던 사찰로 보인다. 낭산에는 북쪽편에는 황복사, 미탄사, 남쪽편에는 사천왕사, 망덕사가 있었고 중앙에는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되는 능지탑과 남쪽편 정상부에 선덕여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황복사 절터에는 옛 사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은 많이 보이지 않지만, 삼층석탑에서는 국보 80호 지정된 구황동 금제여래입상과 79호로 지정된 구황동 금제여래좌상을 비롯하여 삼층석탑으로 조성한 내력을 기록한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으며, 효소왕이 죽자 아우 성덕왕이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불상과 보물등을 탑의 2층에 넣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황복사가 신라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사찰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주 낭산 복동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황복사지. '구황리 삼층석탑'으로 잘 알려진 국보 37호로 지정된 '황복사지삼층석탑'만이 홀로 남아 있다. 이전에 조사발굴은 했던 것으로 보이나, 아마도 다른 절터와 마찬가지로 새로이 조사.발굴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건물터의 흔적도 별로 남아 있는 것 같지 않다.


맞은편 진평왕릉에서 바라본 낭산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황복사 옛 절터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옛 경주시가지 모형을 보면 황복사는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낭산 끝자락 동쪽편에는 황복사가, 서쪽편에는 미탄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황복사지삼층석탑 조성 내력이 자세히 적혀 있는 사리함 뚜겅. 성덕왕이 부왕인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상 2구를 비롯하여 사리 등을 넣었음을 기록해 두고 있다.


사리함 외함


성덕왕이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넣었다는 불상 2구. 국보 79호인 금제여래좌상과 국보 80호인 금제여래입상이다.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함 내함과 사리갖춤.


사리엄장구와 같이 봉안된 고배와 유리구슬


황복사지 삼층석탑.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