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한성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래로 백제의 영역이었으나,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한성백제를 공격하고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는 등 그 세력을 남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했고, 장수왕이 427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면서 백제를 몰아내고 한강유역을 차지하게 된다. 경기도의 고구려 유적은 주로 한강과 임진강을 중심으로 주요 교통로에 구축한 주요 군사시설들로 서울의 아차산성, 연천 임진강변의 호로고루 등이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한강유역에서 고구려 유물들이 아차산성을 중심으로 여러곳에서 출토되고 있지만 실제 유물들은 발굴을 주관한 서울대박물관이나 한국 박물관을 대표하는 중앙박물관에 대부분 전시되어 있고 경기도 박물관에는 일부만이 전시되어 있다. 신라는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차지한 이래로 통일신라시대까지 이 지역을 통치했는데 신라가 남긴 유적은 지배계층의 고분이나 성곽, 마을 유적들을 들 수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하남의 이성산성이다. 신라의 유적들은 고구려와는 달리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경기도 전역에 걸쳐서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고분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의 고구려
소수림왕(재위 371~384)의 뒤를 이은 광개토대왕(재위 391~413)은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고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면서 그 세력을 더욱 확장하였다. 북으로는 후연을 쳐서 요동을 차지하고, 숙신과 동부여 지역을 정복하여 만주의 대부부을 차지하였다. 장수왕(재위 413~491)은 제도의 정비와 외교 정책의 확대 등으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427년에는 수도를 평양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백제, 신라 방면으로 진출하고자 하였다. 고구려가 삼국시대에 한강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국력의 융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백제는 먼저 경기도 지역을 차지해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에 의해 영토를 빼앗겨 고구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경기도의 고구려 유적
임진강 및 한강 유역을 포함하는 경기도는 하천 유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고대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고구려 성곽은 하천과 교통로를 중심으로 치밀한 계획 아래 축조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남한지역의 고구려 유적은 60곳이 넘는데, 대부분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다. 경기도의 고구려 유적은 성, 보루 등 군사활동과 관련된 것이 많으며 임진강 유역, 양주분지, 서울 아차산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유적으로는 몽촌토성.아차산 일원의 보루. 구의동 보루. 연천 호로고루 등이 있고 이들 유적에서는 무기.농기구 등 다양한 철기와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연천 호로고루는 임진강에 접한 현무암 천연 절벽 위에 위치한 고구려 성곽으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 사이의 치열한 전투 기록이 '삼국사기'에 자주 등장한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수막새, 고구려, 중국 길림성 집안. 막새는 평기와의 끝에 연결되어 처마와 추녀 끝에 놓이는 기와이다. 고구려 기와는 붉은색을 띠는 것이 많고, 무늬가 힘차고 활달한 특징을 가진다. 원형돌기무늬는 연꽃무늬와 구슬무늬가 간략하게 변화된 것으로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 새로 나타난 무늬이다. 중국 문헌인 '신당서'의 고구려전에는 '고구려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에 기와를 사용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연화문수막새.돌기문수막새.인동문수막새, 고구려, 중국 길림성 집안
장동호, 고구려, 파주 주월리 유적(육계토성), 암갈색을 띄며 동체부는 완만한 원통형으로 고구려 토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닥은 평평하며 표면은 매끈하게 마연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탄화조, 고구려, 연천 호로고루 유적, 호로고루 성벽의 잘려진 토층 단면에서 불탄 채로 발견된 곡물로 당시 고구려 군사의 군량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호태왕비, 1909년. 광개토대왕비 탁본의 글자 윤곽을 가는 선으로 그린 자료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중국 청나라의 금석학자 양수경의 글이 실려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경기도의 신라.통일신라
신라 진흥왕(재위 540~676)은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영토확장을 활발하게 추진하였다. 무열왕은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통합하였고 그의 아들인 문무왕은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 세력까지 몰아내어 결국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에 이르는 지역을 통일하게 된다. 한강 유역의 주인으로 등장한 신라는 중국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옛 고구려, 백제 지역의 문화를 수용하며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는 지배계층의 대표적인 무덤인 돌무지덧널무덤이 돌방무덤인 화장묘로 변하였고, 토기도 굽다리접시의 다리가 낮아지고 굽구명 역시 형식화되는 등 신라 토기 양식이 확립되었다. 통일신라시대로 들어서면 불교는 더욱 융성해져 8세기에 이르러 극치를 이루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경기도의 신라.통일신라 유적
경기도에 신라.통일신라 사람들이 남긴 유적은 고분과 성곽, 그리고 마을 유적을 들 수 있다. 가장 많이 조사된 유적은 고분군으로 여주 상리.매룡리 고분을 중심으로 한 여주지역의 고분군과 용인 보정리 고분군을 중심으로 한 용인지역고분군, 한강 남안의 하남지역 고분군, 안성지역 고분군 등으로 나눌 수 있고 통일신라의 고분군은 경기도 전지역에 산발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성곽은 남한강 수계와 임진강 수계, 안성지역 등 고구려와 백제와의 접경 혹은 중요 교통로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마을 유적은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시기를 전후한 시기의 유적들이 용인 마북동.흥덕지구, 포천 성동리, 오산 가수동 등에서 보고 되고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이성산성.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에 쌓은 포곡형의 석축 산성이다. 한강에 접해 있는 여러 성을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측면과 성 안에서 발견되는 삼국시대 유물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성산성과 인접한 풍납토성.몽촌토성과 관련하여 한성백제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져 왔던 곳이다. 1988년부터 2006년까지 20년 동안 11차에 걸친 발굴조사결과, 이성산성은 주로 통일신라시대에 활용된 산성으로 밝혀졌다. 이성산성내부에는 건물지, 저수지, 신앙유적, 성벽 등 다양한 생활 용구들이 출토되어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특히 묵서로 쓰인 목간의 출토로 산성의 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굽달린 긴목 토기항아리.굽다리접시, 신라, 출토지 미상
기와, 신라, 연천 당포성 유적. 기와는 가옥의 지붕을 덮는 옥개용의 건축부재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한다. 신라에는 특별히 와당 만을 제조하는 와기전이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철제갑옷, 삼국시대, 출토지 미상. 삼국시대의 갑옷은 크게 여러 가지 모양의 철판을 이어 만든 판갑옷과 작은 철판을 가죽으로 엮어 비늘처럼 만든 비늘갑옷으로 나누어진다. 여기 전시된 갑옷은 황장판판갑옷으로 여러 매의 삼각형 지판을 이은 형태에서 횡으로 긴 장방형 철판을 인체의 곡선에 맞춰 이은 7단 구성의 정형화된 판갑옷이다. 이와 유사한 유물은 고령 지산동 32호분과 합천 옥천 28호분 출토품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묻혀 파손된 갑옷을 보존처리하여 복원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주전자, 손잡이달린 토기항아리, 굽달린 토기잔
뚜껑이 있는 토기합,
띠고리 달린 뼈 항아리, 통일신라, 화장된 사람의 뼈를 담은 토기 항아리로 표면에 인화문을 시문하였다. 불교가 신라에 전파되면서부터 화장이 성행하면서 뼈 항아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칼자루 끝장식, 금동여래입상
삼국시대의 이형토기
오리나 말 등의 동물모양의 이형토기는 주로 경상도에서 발견된다. 황남동 고분에서 나온 토우 일괄품은 고배에 장식되어 있던 것으로 사람, 짐승 등 그 형태가 다양하다. 말탄 사람이나 오리모양의 이형토기들이 출현한 후 토우와는 달리 수레나 배 모양 혹은 집 모양의 명기들이 나온다. 계림로 25호 고분 출토의 수레모양토기는 출토지가 확실한 이형토기의 대표적 존재이다. 6세기 초에 속하는 층에서는 용기로 보이는 기마인물현토기 1쌍과 배 모양 토기와 같은 이형토기가 나왔다. 미추왕릉지구 C지구 3호분에서는 몸통은 거북이고 용을 형상화한 신구형토기가 출토되었다. 또 굽다리 접시 다리 위에 말 만을 얹은 예도 나오며, 초기의 말 모양 토우가 발전하여 말모양 토기나 목긴항아리에 말 무늬를 그려 넣은 토기 등도 보인다. 신라 중기 이후 이러한 토우 장식토기나 이형토기들은 자취를 감춘다. 이형토기는 삼국시대 우리 선조들의 토기 공예기술의 발달을 잘 알려주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이형토기병. 인형모양 이형토기.뿔잔, 삼국시대, 이형토기병은 토기의 몸통에 5단으로 나선형 모양이 볼록하게 나온 보기드문 형태로 특수한 용도에 쓰인 토기이다. 인형모양 이형토기는 바닥은 평평하며 토기의 입구가 위쪽에 달려있지 않고 한쪽면을 바라보게 만들어진 특이한 이형토기이다. 뿔잔은 제사장이 기름을 부을 때 쓰는 잔으로 우리나라의 신라.가야 지역에서 주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이스라엘 등지에서도 발견되는 토기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부뚜막모양토기.배모양토기, 삼국시대, 부뚜막모양토기는 부뚜막위에 토기 2개가 솥처럼 올려져 있는 이형토기이다. 다리는 2개가 달려 있고 토기 목부분에는 두 줄의 돋을대가 둘러져 있다. 배모양토기는 선박 모양의 토기로 4개의 다리가 부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오리모양 손잡이 달린 토기잔은 손잡이 위에 오리가 앉아 있는 잔으로 신라.가야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토기이다. 신선로모양 토기는 고배 내부에 신선로처럼 원통형 기둥이 융기되었으며 몸통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굽다리에는 직사각형의 투장이 있다. 동물모양토기는 네발 달린 짐승을 본 따 만든 재미있는 모양의 토기로 용변을 받는 호자처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출처:경기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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