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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연천 호로고루, 임진강변에 쌓은 고구려군의 요새

younghwan 2012. 8. 2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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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 호로고루성은 임진강 중류에 위치한 고구려군의 요새이다. 임진강이 지천과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삼각형 모양의 지형에 쌓은 강안평지성이다. 이 곳은 동쪽을 제외하고는 약 20~30m 정도의 현무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천연의 요새라 할 수 있다. 성벽전체의 둘레는 400여m, 면적은 600여㎡로 큰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남벽과 북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삼아 상단부에 1~2m의 토축을 쌓고 목책을 설치하였고, 성안으로 출입하는 동쪽에 토축과 석축이 섞여 있는 높이 10여m의 성벽을 쌓았으며, 동벽에 성문을 두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북측 성벽에는 작은 암문을 두어 성벽 아래쪽 임진강으로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임진강 유역은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고구려,백제, 신라 삼국이 치열안 각축전을 벌인 곳으로 삼국이 쌓은 군사시설이 주변에 많이 남아 있다. 고구려는 2차례에 걸쳐서 임진강 유역에 군사 요새를 구축하였는데 첫번째는 백제와 한강유역을 쟁탈했던 시기이고, 두번째는 신라.백제연합군에 의해 한강유역에서 밀려났던 시기이다. 고구려가 임진강변에 구축한 요새중 남아 있는 것은 임진강변을 따라서 덕진산성, 은대리성, 당포성, 호로고루가 있으며, 그 중 호로고루가 다른 요새에 비해서 위상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천 호로고루는 고랑포라는 나루터가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형적으로 큰배가 운행할 수 있는 임진강 수운의 종착점에 해당되는 물류의 중심지이자, 여울목이 있어 배를 이용하지 않고 임진강을 도하할 수 있는 첫번째 지점으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은 개성과 한양을 연결하는 주요 육로 중 하나로 장단군 읍처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한강유역 쟁탈전이 치열했던 시기에 고구려와의 국경선 역할을 했던 임진강변에 구축해 놓은 고구려군의 요새 중 하나인 연천호로 고루. 임진강과 지천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강안대지에 쌓은 강안평지성이다. 내부는 그리 넓지 않은편으로 군사들이 주둔한 숙영지의 성격이 강한 성곽이라 할 수 있다.

호로고루성의 구조
호로고루는 삼각형 강안 평지성이라고하는 전국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형태의 성곽이다. 임진강.한탄강 유역에는 두께 10~30m 정도의 용암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강물이 흐르면서 용암대지를 침식하였다. 용암은 주상절리라고 하는 물리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침식이 이루어지면 수직기둥모양으로 돌이 떨어져 나가면서 강의 양안에는 수십킬로미터에 걸쳐 높이 10~15m 정도의 수직절벽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군데군데 이러한 석벽이 사라지는 곳이 있는데,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지류가 석벽을 뚫어 출입구를 만들어 놓은 곳이다. 이처럼 수직단애가 사라져 방어가 취약한 지점에는 성곽이 구축되어 있다. 호로고루 역시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샛강으로 인하여 석벽이 끊어진 지점에 구축되어 있다. 임진강과 샛강이 예각을 이루며 만나게 됨으로써 동-서방향으로 좁고 길쭉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정상부의 동쪽부분을 남-북으로 막아 삼각형의 성곽을 구축하였다. 동벽은 높이 10m에 지나지 않지만 정상에 올라가면 부변에 높은 지형이 없어 사방으로 넓게 조망된다. 동벽과 남벽은 수직단애를 이루고 있으므로 성안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는 이 동벽의 남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벽과 북벽은 높이 15m 정도의 단애로 인하여 이미 천연의 성벽이 구축된 상태지만, 방어력의 보강을 위하여 암반위부터 지표면에 이르는 2~3m 두께의 점토퇴적층에도 판축식의 성벽을 구축하였음이 확인된다. 또한 북벽의 중간부분에는 남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암문이 있어 밧줄을 타지 않고 강변으로 내려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남벽과 북벽의 지상에는 동벽과 같은 지상성벽은 당초에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경우 성내부가 강의 남쪽이나 서쪽에서 쉽게 조망되므로 남벽과 북벽 윗부분에는 목책이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출처:연천군청>



호로고루성은 출입통로에 해당되는 동쪽을 제외하고는 강안절벽을 천연성벽으로 삼았으며, 동쪽에만 높이 10여m의 석축성을 쌓고 성문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로고루의 동벽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성벽에 올라서면 주변에 장애물이 없어 상류쪽의 백제 육계토성과 칠중성이 있는 지역과 하류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망루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성벽이다.


2009년 모습


동벽에서는 고구려군의 독특한 축성방법이 잘 드러나 있다. 기단부에는 판축기법을 이용한 흙으로 쌓은 토축성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위쪽으로는 중간크기의 돌로 단단히 쌓은 고구려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곳이 정비되기전인 2009년 모습


고구려 산성의 석축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호로고루 동벽.


중간크기의 돌로 견고하게 쌓은 동벽의 석축


작은돌을 겹겹히 쌓아 올린 모습이 전형적인 고구려 산성의 성벽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의 아차산성이나 강화의 정족산성에서 비슷한 형태를 볼 수 있다.


한쪽편에 떨어져 나와 있는 성벽의 흔적으로 출입문 부근의 석축으로 보였는데, 2009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호로고루 성으로 연결되는 통로인 동벽바깥쪽 모습


동벽 바깥쪽의 2009년 모습


최근에 복원한 부분.


동벽 남쪽편에 성벽 안으로 들어오는 성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


강안 절벽이 천연의 성벽 역할을 했기때문에 동벽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성벽을 쌓을 필요는 없었지만, 외부에서 성안을 볼 수 없도록 목책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쪽 성벽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임진강. 절벽의 높이가 20~30m 정도로 꽤 높은 편이다.


임진강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현무암대지가 있는 지역으로 임진강 주변에는 물이 흐르면서 형성된 높이 20~30m의 절벽들이 절경을 이룬다. 호로고루 주변의 성벽 또한 비슷한 형태의 절벽이다.


동벽 위에서 내려다 본 남벽 위에 구축한 목책


호로고루 성안의 평지. 면적이 그리 넓지 않아서 군사들의 숙영지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출토된 불에 탄 쌀


동벽은 10여m로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지만 성벽위에 올라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망루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벽 위에서 내려다 본 임진강 하류 방향. 임진강 수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랑포 나루터가 있다.


동벽위에서 내려다 본 임진강 상류 방향. 비가 온 직후라 임진강에 물이 많지만, 이곳에 여울목이 형성되어 걸어서 임진강을 도하할 수 있는 첫번째 지점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동쪽편으로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감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감악산 아래로는 백제가 임진강 방어를 위해 쌓은 육계토성과 신라가 삼국통일 후 당나라와 일전을 벌렸던 칠중성이 있다.


호로고루 북쪽편으로 흐르는 임진강 지천.


호로고루성 북벽은 지천으로 형성된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편에 임진강으로 내려갈 수 있는 작은 암문이 있었다고 한다.


지천이 임전강으로 흘러드는 지점


호로고루 주차장에서 보이는 호로고루 동벽


연천 호로고루 들어오는 길


연천 호로고루

연천 호로고루, 사적 467호
임진강은 구간에 따라 정파강, 구연강, 조강 등 수십 여 개의 이름이 있는데 호로고루가 있는 부근은 과천, 호로하, 표강 등으로 불리었다. <삼국사기>에는 이 호로하 부근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의 전투기록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호로고루의 지정학적인 위치를 보면 임진강 하류에서 고랑포까지는 조수간만의 영향으로 수심이 깊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하지만, 호로고루 부근은 배를 타지 않고 도하할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이 있어 육로를 통해 평양지역에서 한성으로 가는 최단거리상의 요충지에 해당한다. 따라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국경방어 사령부가 있었고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주변의 행정과 군사를 주관하는 장단군의 읍치가 있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도 이 지역은 호로탄이라 하여 개성으로 가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호로고루에서는 두시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첫번째 시기는 고구려 남진 초기의 유구이다. 호로고루에 목책을 중심으로 하는 방어시설이 구축되었으며, 아직 동벽과 기와 건물은 조성되지 않았다. 두번째 시기는 6세기 중엽 이후 고구려 멸망시기까지의 유구이다. 551년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에 밀려 임진강 유역으로 후퇴한 고구려는 임진강을 따라 새로운 방어체계를 구축하게 되는데 덕진산성부터,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 임진강을 따라가며 많은 성들이 새로 신축되거나 재정비 되었다. 이때 호로고루에서는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실시하여 성 내부를 평탄하게 조성하였으며, 높이 10m에 달하는 동벽을 구추가는 한편, 성내부에는 여러동의 기와건물과 지하식 벽체 건물을 신축하였다.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나 유물의 질이나 양적인 면을 고려할 때 호로고루는 주변의 고구려성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위계가 높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호로고루는 6세기 중엽부터 고구려가 멸망하는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 동안 임진강 유역을 방어하는 고구려의 국경방어 사령부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연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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