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성곽(산성_읍성)

광주 남한산성 행궁, 비상시 종묘와 사직 역할을 하는 좌전과 우실

younghwan 2012. 8. 12. 00:46
반응형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격전의 현장으로 조선후기에는 한양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적 거점으로 여겼기때문에 인조대 이후에 성벽을 쌓고 광주부 관아를 옮기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한산성에 행궁이 처음 설치된 것은 이곳에 산성을 크게 보강했던 인조3년이다. 조선시대에 전국 주요 거점에 행궁이 설치되었는데, 비상시 국왕이 피난하는 것을 전제로 지어진 남한산성 행궁에는 종묘와 사직을 옮길 수 있는 좌전과 우실이 유일하게 설치되어 있다.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어져서 그 터만 남아 있던 것을 2012년에 행궁 건물의 복원을 완성하여 산성도시로서의 옛모습을 조금이나마 다시 보여주고 있다. 남한산성 행궁 뒷편에 설치된 좌전은 종묘의 위패를 비상시에 옮겨놓을 수 있는 건물이며, 우실은 사직을 옮겨 놓는 곳이다. 행궁에서 임시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기때문에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나 건물의 형태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종며 정전을 축소한 형태라 할 수 있다.



2012년 복원된 남한산성 행궁. 행궁은 국왕의 임시거처이자 광주부관아가 있던 곳으로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행궁 뒷편에 위치한 종묘와 사직에 해당되는 좌전과 우실.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종묘 정전의 축소판 같은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삼문의 형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 출입문. 문살을 두어서 신이 지나다닐수 있도록 하고 있다.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그 형태는 종묘정전과 비슷하다.


사직에 해당되는 우실.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좌전보다는 약간 작아 보인다.


우실 출입문


남한산성 행궁 뒷편 담장 너머로 보이는 좌전과 우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