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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후기 유학자이자 노론을 대표하는 송시열이 건립을 추진하였고, 그의 제자들이 전국적으로 강릉, 제천, 화성(수원)과 이곳 논산의 노성현에 세웠는데 현재는 노성 궐리사만 남아 있다고 한다. 궐리사는 중국 명나라에 대한 의리론을 주찬하였던 송시열이 취한 여러 조치 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궐리사는 공자를 모신다는 점에서 기존의 공자를 모신 사당이라는 향교의 대성전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사당과 강당으로 이루어진 건물배치 등에서도 큰 차이점을 찾을 수는 없다.

 노성 궐리사는 옛 노성현 관아 소재지가 있는 노성산은 공자가 자란 마을인 궐리촌과 지형이 비슷하다고 하여 이구산이라고 불리웠으며, 고장의 명칭도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와 연관지어 정조대에 노성현으로 바꿨다고 한다. 궐리사는 노성산 자락 아래에 노성향교, 소론의 영수인 윤증의 고택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건물은 향교와 마찬가지로 홍살문, 외삼문, 강당인 현송동, 내삼문, 사우인 궐리사가 일자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조선후기 당시 노론의 영수의 우암 송시열이 소론의 영수인 윤증이 살던 곳에 향교 대성전과 별도로 공자의 사당을 세웠던 모습에서 당시의 치열했던 이념논쟁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노성현에는 윤증을 모신 노강서원, 공립 교육기관인 향교와 별도로 궐리사를 두고 있으며, 인근 연산현에 김장생을 모신 큰 서원인 돈암서원을 비롯하여 많은 서원이 있었으며 지역내에서도 학문적 전통과 당시 사회를 반영한 많은 논쟁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노성 궐리사 입구에 나무로 세워진 홍살문. 오래된 홍살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성 궐리사 출입문인 솟을대문 형식의 삼문. 궐리사는 외형에서도 향교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노성 궐리사 강당.180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규모도 다른 향교나 서원에 비해서 큰 편이다.


현송당이라고 이름 붙여진 강당건물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중앙에 넓은 대청마루에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 일반적인 서원이나 향교의 강당과는 달리 중앙부처 관아건물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공자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인 궐리사.


궐리사 관리인이 사는 집


궐리사 동쪽편에 공자와 제자들의 석상을 세워 놓고 있다. 아마도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 용도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는 '궐리'라는 글자가 음각된 돌기둥


노성 궐리사 전경


노성 궐리사에서 본 노성면 일대


공자가 자란 마을인 궐리촌과 비슷한 지형을 하고 있다고 하여 그 이름도 노성현으로 바뀐 옛 노성현 관아가 있던 노성면 소재지 전경. 뒷편 노성산에는 백제시대에 쌓은 산성인 노성산성과 그 아래에 노성향교, 명재고택, 노성 궐리사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윤증도 공자가 자란 궐리촌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 곳에 자리잡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성 궐리사, 노성면 교촌리 301
궐리사는 공자가 자란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을 말한다. 궐리사는 강릉, 제천, 화성(수원) 등에 있었으나 현재는 화성과 이곳 노성에만 남아 있다. 1687년(숙종13)에 송시열이 건립을 추진하였고, 권상하 등 송시열의 제자들이 1716년(숙종42)에 노성 이구산에 세웠다. 그 후 중국에 가는 사신 편에 공자의 영정을 부탁하여 숙종 44년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791년(정조 15)에는 송조 호현(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주희)의 영정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05년(순조5) 관찰사 박윤수 등이 지금의 위치에 옮겨 세웠다. 현재의 규모는 당시 규모보다 축소된 것으로, 일명 춘추사라 한다. 건물 배치는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고 외삼문, 강당인 현송당, 내삼문, 사우인 궐리사 그리고 모성재와 관리사, 문간채 등이 있다. 궐리사의 남쪽에 석주가 있는데, 사용 목적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네모난 기단 위에 배흘림의 각주석을 세우고 탑의 지붕돌을 그 위에 올려 놓은 모습과 '궐리'라는 글자를 새긴 것으로 보아 아마 궐리사의 표시물로 이용된 듯 하다. <출처:논산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