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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국가적인 행사를 기록한 의궤는 구한말 고종대에도 꾸준히 편찬되었으며, 기존 조선왕실에서 행했던 전통전인 의례는 물론 대한제국 선포이후 새롭게 정비된 황제국의 의례를 포함하여 이전에 비해서 다양한 모습을 담은 의궤가 많이 제작되었다. 1998년 대한제국의 선포 이후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의례로 선대 국왕을 황제로 추승하고 왕자들을 '친왕'으로 격상시키고, 왕후를 황후를 겨상시키는 등 많은 제도적 정비가 필요했기때문에 오랜 기간에 걸쳐서 다양한 의례가 거행되었으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를 기록한 의궤를 편찬하여 오늘날까지 당시의 기록들을 남겨놓고 있다.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의 탄생
1898년 10월 12일 고종은 서구열강의 침입과 압박 속에서 자주독립과 부국강병한 제국의 건설을 꿈꾸며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마침내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이 탄생한 것이다. 고종은 황제로 등극한 이후, 명성왕후를 황후로 책봉하고 황제국의 예로 국장을 치렀으며 왕세자와 왕세자비를 황태자와 황태자비로 책봉하였다. 또 선대 국왕을 황제로 추승하고 두 아들을 황제의 아들과 형제들을 일컫는 '친왕'으로 격상시키는 등 각종 의례를 황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재정비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고종대 의궤
고종 시대 의궤는 전통적인 조선왕조 의례는 물론이고 대한제국 선포이후 자부심을 가지고 거행했던 황제국의 의례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다른 어떤 시기보다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자주독립 국가임을 국내외에 알리고, 각종 의장과 제도 등의 국가 의례를 황제국 위상에 맞게 재정비함에 따라 그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황제국의 위상에 따라 용어와 각종 의식물이 변화되었다. '전하'는 '폐하', '과인'은 '짐', '천세'는 '만세' 등 황제와 관련된 용어로 바뀌었다. 황제 상징물 중에서 어보는 거북이에서 용모양 손잡이로 바뀌었으며 의복과 각종 기물들은 황실을 나타내는 황색을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반차도 행렬에는 서구 문물의 유입을 반영하는 근대식 경찰이 등장하고 있다. 황태자를 위한 예람용 의궤는 따로 제작하여 황태자 교육기관인 시강원에 올렸으며, 장례원, 예식원, 비서원 등 대한제국기에 새롭게 등장한 관청이 새로운 보관처로 등장하여 의궤 편찬 건수가 9~12건으로 늘어났다. <출처:고궁박물관>


고종황제 즉위식 의궤, 대례의궤, 1897년, 오대산사고본
1897년 10월 12일에 조선의 제26대 임금인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고종은 즉위식 이전에 제천단인 환구단을 완성하였으며 국새를 제작하고 국호를 정하였다. 10월12일 새벽에 고종은 신하들과 함께 국새를 싣고 환구단으로 가서 천신과 지신에 제사를 올리고 황색 곤룡포를 입고 금색 의자에 앉아 국새를 받았다. 즉위식을 마친 황제는 경운궁으로 돌아와 태극전(즉조당)에서 백관의 축하를 받고, 이어 12시에 왕비를 황후로 책봉하고, 2시에 세자를 황태자로 책봉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이상의 대한제국 탄생과정을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 '대례의궤'이다. 의궤에는 황제 즉위식에 필요한 어책과 어보(도장)을 싣고 가는 황금색 가마가 환구단으로 가는 행렬을 그린 36쪽의 반차도, 어책, 어보 그리고 각종 의장을 그림으로 설명한 도설이 들어 있다. 이때 만들어진 어보는 모두 13종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대한국새', '황제지새', '황제지보', '칙명지보' 등은 황제를 상징하는 용모양의 손잡이로 제작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고종황제 어새, 1897~1910년
고종황제가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대한제국기에 러시아,이탈리아 등 각국에 일본을 견제하고 대한제국의 지지를 요청하는 친서 전달을 위해 제작.사용하였던 인장이다. 인면에는 '황제어시'가 새겨져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고종황제 어진

황제 추존 의식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의 초대황제로 등극한 고종은 1899년에 직계 4대조인 장조(사도세자), 정조, 순조, 문조(순조의 요절한 아들 의종)와 함께 조선을 개국한 태조를 황제로 추존하고 왕비들도 황후로 격상시켜 황제국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태조는 태고조황제, 장조는 장조의황제, 정조는 정조선황제, 순조는 순조숙황제, 문조는 문조의황제로 추존하고 왕비는 황후로 추존하면서 어보와 어책을 올렸다. 역대 조상들에 대한 황제 추존 의식은 새로운 황제국의 토대를 다지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사로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다. 추존 의식 장면이 그려진 의궤반차도는 지금까지 제작된 반차도 가운데 가장 길며, 이를 통해 당시의 웅장한 행사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고종의 황제 즉위식 장면
하늘과 땅에 고하는 제사를 지냈다.
황태자가 함께 참석하였다
예를 끝내자 의정부 의정 심순택이 백관을 거느리고 아리기를,
"고유제를 지냈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르소서."하였다.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단에 올라 황금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았다.
심순택이 나아가 십이장 곤면(황색의 황제복장)을 성상께 입혀드리고 씌워드렸다.
이어 옥새를 올리 상이 두세 번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왕후 민씨를 황후로 책봉하고 왕태자를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심순택이 백관을 거느리고 국궁(존경의 뜻으로 절을 올림),
삼무도(세번 춤을 춤), 삼고두(세번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함)하고 만세, 만세, 만만세를 창하였다. 
<고종실록> 1897년 10월 12일, <출처:고궁박물관>


태조의 초상화 제작 의궤(태조고황제 영정모사도감의궤), 대한제국, 1899~1900년
1899년 11월부터 1900년 4월에 행해진 태조 어진을 모사하는 과정이 수록된 의궤이다. 의궤에는 영흥에 있는 준원전의 태조 어진을 경운궁 흥덕전으로 모셔와 모사하여 그린 과정과 태조 어진을 봉안하는 27쪽의 채색 <반차도>를 비롯하여 어진을 봉안할 때 소요되는 물품 11가지의 채색도설이 실려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명성황후 장례의례(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1895~98년, 오대산사고본
1895년 10월 8일 경복궁 건청궁에서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의 국장에 대해 기록한 의궤이다. 명성황후의 장례는 2년 정도 연기되었다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 치러졌으며 의궤는 1898년에 제작되었다. 장례식이 2년 이상 미루어졌기 때문에 내용도 많아져서 현존하는 국장도감의궤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다. 어람본과 분상본 포함하여 7건이 제작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명성황후 책봉 금책(명성황후금책), 1897년
1897년 명성왕후 민씨를 황후로 책봉하면서 어보와 함께 제작한 금책이다. '고종실록' 36권, 34년 12월 조 기사에 '왕후 민씨를 황후로 책봉하고 왕태자를 황태자로 책봉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옥책이 제작되었으나,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황후의 격식에 맞추어 금책이 올려졌다. <출처:고궁박물관>


명성황후 책봉 금보와 함(황후지보), 1897년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함과 동시에 먼저 세상을 떠난 명성왕후 민씨를 황후로 책봉하면서 제작한 어보이다. 용형태의 손잡이로 제작된 금보의 인면에는 '황후지보'라고 새겨졌다. '대례의궤'에 이어 어보에 관한 크기, 무게, 모양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명성황후의 위패를 모시던 혼전이 경효전에 금책과 함께 모셔졌다가 1921년 종묘에 봉안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태조.장조.정조.순조.문조 황제 추존의궤, 1899년, 오대산사고본
고종의 황제 즉위 후, 왕조의 창업자인 태조와 왕비, 직계4대조(장조.정조.순조.문조) 및 그 왕비들을 황제로 추존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이 의궤에는 태조고황제의 신위를 모시고 환구단으로 가는 92쪽의 반차도가 실려 있는데 지금까지 제작된 의궤 반차도 중에서 가장 길다. 또한 다른 의궤와는 달리 명치에 '도감'이 빠져 있는데, 행사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임시관청이 도감을 설치하지 않고 장례원이 직접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출처:고궁박물관>


태조황제 추존 옥책, 1899년
1899년 태조를 '태조고황제'로 추존하면서 제작한 옥책이다. 옥보도 같이 제작되었지만,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다.


장조.정조.순조.문조황제 추존 옥보, 1899년
1897년 대한제국 선포이후, 황제국의 예법에 맞게 창업주와 직계 4대조를 추존하자는 논의에 따라 1899년에 장조, 정조, 순조, 문조를 황제로 추존하면서 제작한 옥보들이다. 옥으로 제작되었으며 손잡이는 모두 용의 형태이다. <출처:고궁박물관>


고중 후궁, 순빈 엄씨 황비책봉 의궤 (순비책봉의궤), 1901년
1901년 고종황제의 후궁이자 영친왕 이은의 어머니인 순빈 엄씨를 황제국의 위상에 맞추어 황비로 올려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어람용 또는 예람용 의궤의 내지는 고급 종이인 초주지를 사용하였으며 붉은색 인찰선을 둘렀다. <출처:고궁박물관>


인조.인열왕후.장렬왕후.효종.인선황후.효정왕후.고종.명성황후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식에 관한 의궤, 1900년, 오대산사고본
1900년 1월에 인조, 인조비 인열왕후, 인조계비 장열왕후, 효종, 효종비 인선왕후, 헌종계비 효정왕후, 고종, 고종비 명성황후 등 8명에게 존호를 올린 것을 기록한 의궤이다. 이 의궤는 대한제국의 수립과 함께 진행된 왕실 추승사업의 일면을 보여준다. 의궤도설편에는 황제국 선포 이후 거북이 모양에서 용모양 손잡이로 바뀐 어보의 그림이 실려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신정왕후.효정왕후.철인왕후.고종.명성왕후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식에 관한 의궤, 1873년, 정족산사고본
1873년 4월에 고종과 고종비 명성황후에게 존호를 올리면서, 익종비 신정왕후, 헌종계비 효정왕후, 철종비 철인왕후에게 존호를 더하여 올린 것을 기록한 의궤이다. 의궤도설편에는 왕과 왕비에게 올려진 거북이 손잡이 모양의 어보가 그려져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의왕.영왕 친왕 책봉의궤, 1900년, 오대산사고본
1900년 7월 고종황제의 두왕자인 '강'과 '은'을 황제국의 법도에 맞게 '친왕'으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황제의 아들과 형제를 친왕으로 일컫는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두왕자의 호칭을 격상시켰으며, 명나라 때 친왕을 왕으로 약칭하여 부르던 전통을 따라 '의왕', '영왕'으로 줄여 부르기도 하였다. 의궤에는 두왕자를 책봉했다는 내용과 채색 도설, 영왕의 책인을 궁으로 전달하는 반차도 등이 실려 있다. 어람본을 비롯한 총 10건이 제작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