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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의 오백년의 왕릉과 신라천년의 왕릉은 대체로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있는 반면에 고려 왕조의 왕릉은 주로 북한지역에 개경부근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재 남한에는 주로 개경과 가까운 파주지역과 고려의 대몽항쟁기 수도였던 강화에 일부 왕릉들이 남아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강화 지역의 왕릉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일부 실시되었는데 수차례의 도굴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려 왕실의 문화와 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려 왕릉은 통일신라 고분 방식과 유사하게 앞트기식 돌방무덤을 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왕릉에 비해서 강화지역의 왕릉은 봉분은 약간 작게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에 담긴 고려 왕실의 문화
몽골과 항쟁하던 시기에 고려는 왕도를 강화로 옮겼다. 강화에 원덕태후의 무덤인 곤릉, 희종의 무덤인 석릉, 순경태후의 무덤이 가릉, 고종의 무덤인 홍릉 등 고려의 왕실 무덤이 남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곤릉, 가릉과 능내리 돌방 등 왕실 무덤이 발굴 조사되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금속장신구.옥장신구.청자.동전.기와 등의 유물을 통해 이 시기 고려왕실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강화의 고려 왕실 무덤
고려가 몽골과 맞서는 동안인 1232년부터 1270년까지 39년간 임시 수도였던 강화에는 왕릉급 무덤이 여럿 만들어졌다. 이 중에서 2001년 석릉, 2004년 곤릉.가릉, 2006년 능내리석실분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 발굴을 통하여 강화 고려 왕릉의 면모를 어느 정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모두 앞트기식 돌방무덤으로서 돌방 입구에 잘 다듬은 장대석을 사용하여 문기둥과 문지방을 설치하고, 바닥 중앙에는 관대를 마련하고 주위에 벽돌을 깔기도 하였다. 천장은 대형 장대석 3매를 덮어 마무리 하고 그 상부에는 8~12매의 호석을 갖춘 봉토를 조성하였다. 호석 외곽에는 다시 난간을 돌리고 사이에 석수를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모두 몇차례의 도굴이 있었으나 금속.옥장식품, 청자류, 기와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청자삼감 넝쿨무늬 뚜껑(청자상감 당초문개), 청자 구름무늬 향로(청자 음각 운문 향로), 청자 꽃무늬 접시(청자 화령 접시), 13세기, 강화 곤릉 출토


금실,직물이 붙어 있는 철제품, 넝쿨무늬 은제도금장식, 은못, 봉황무늬 은제 도금장식,


금동장식품, 원통형 금동장식품, 송곳, 은제 도금 꽃무늬 장식, 은제 경첩, 은제 나비 장식, 유리구슬, 호박 구슬, 옥장식


유리구슬, 자물쇠부속품

* 곤릉 출토 유물: 금실, 직물이 붙어 있는 철제품, 넝쿨무늬 은제도금장식, 은못, 금종장식품, 원통형 금동장식품, 송곳, 유리구슬  
* 가릉 출토 유물: 은제 경첩, 은제 나비 장식, 호박 구슬, 옥장식
* 능내리 석실 출토: 유리구슬, 자물쇠부속품, 봉황무늬 은제 도금장식, 은제 도금 꽃무늬 장식 


용머리(곤릉), 단지(능내리 석실분)



화살촉(능내리 석실분), 동전(가릉)


새와 수레 굴대 부속, 곤릉 출토,


도깨비눈 무늬 암막새, 곤릉 정자각터 출토


강화의 고려 왕실무덤. 발굴모습


강화 곤릉 (사적 371호), 고려 대몽항쟁기 고종의 어머니 원덕태후의 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