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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반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라시아대륙은 중앙아시아의 험한 지형 등으로 서구와 동아시아는 상호 교류가 쉽지는 않았지만,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두지역간에는 끊임없는 교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인류의 고대문명이 시작한 이후에도 양지역간에는 끊임없는 교류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한(漢)나라가 개척한 비단길을 이름을 따서 보통 실크로드라고 부른다. 이 실크로드는 실제로 3개의 경로가 있는데, 그 중 유라시아대륙 북부의 스텝기후지역의 초원로를 따라 형성된 유목민들의 교역로인 초원실크로드, 중앙아시아 사막을 통한 대상들의 교류였던 실크로드, 동남아 연안 항로를 따라 형성되었던 해상실크로드를 들 수 있다.

 그 중 초원실크로는 유라시아대륙 사막 북쪽의 초원지대를 연결하는 교역로로 흑해북안의 우크라이나에서 카스피해와 아랄해북단, 몽골초원과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이어지는 교역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원전 7세기경에 크게 번성하였던 흑해북안의 스키타이문명은 알타이산맥의 파지락, 몽골을 흉노를 거쳐서 중국과 한반도의 고대국가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초원실크로드를 통한 유목민 문화의 교류는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이는 한반도인의 복식과 고조선과 삼한시대의 동물문양과 각배, 시베리아 샤먼의 청동방울, 황금문화를 누렸던 마립간시기의 신라 금관과 돌무지덧널무덤 등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12년초에 실시된 <스키타이 황금문명전>에서는 한반도와 유라시아유목민간의 교류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많은 유물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전국의 박물관에는 이런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대충 중요한 것들을 모아서 정리를 해 보았다. 실제로는 이런 교류의 형태를 보여주는 유물들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유라시아 초원의 길

 유라시아 초원이라고 함은 북반구 유라시아대륙의 사막지역 북쪽으로 흑해북안의 우크라이나에서 카스피해 북안 카자흐스탄, 몽골초원을 지나 만주까지 이어지는 넓은 대평원에 초원이 끝없이 이어지는 스텝지역을 일컫는다. 유라시아 초원길은 기원전 3500년경 세계 4대문명이 시작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의 유라시아 초원에서는 목축이 시작되고 넓고 광활한 초원은 거내한 문명교류의 고속도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4대문명이 왕성하게 발전하던 기원전 10세기 이전에 흑해북안에서 거주하던 유목민들인 아리안족은 수차례에 걸쳐서 민족대이동이 일어나서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문명의 주역으로 등장했으며 초원을 이동하기 위해 바퀴와 마차를 발명하여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중국으로 전했다. 기원전 7~8세기 이후에는 또다른 유목민족인 스키타이계통의 유목민족이 기마무사가 지배하는 유라시아 초원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유라시아 초원문화는 스키타이 시대에 들어와서 가장 크게 발전했고 흑해북안은 물론이고 멀리 중앙아시아를 넘어 시베리아와 알타이, 그리고 한반도에까지 이어진다. 스키타이족이 남긴 문화는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를 건너 중국 북방의 흉노, 선비족에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 민족의 기원인 고조선, 부여에까지 전하여졌다. 그래서 초원의 길로 이어진 이 선사문화를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라고 한다. <출처:스키타이황금문명전>

 



스키타이 세계의 고고학 문화들

'스키타이 세계'란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들이 확인되는 기원전 8/7~3세기 초기 철기시대 흑해북안에서 중국 북방 오르도스지역까지의 북방유라시아대륙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세계에는 흑해북안의 스키타이 문화, 볼가-우랄 강 유역의 사르마트 문화, 중앙아시아의 사카 문화,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 투바의 우육 문화, 서몽골의 울람곰 문화, 오르도스의 모경구 문화 등이 있다. 이 문화들은 기본적으로 초원 지대에 분포하지만 파미라나 알타이 등 일부 산악지역에 위치하기도 한다.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와는 그리스 세계가, 중앙아시아 사카 문화와는 페르시아 세계가, 오르도스의 모경구 문화와는 춘추 말-전국 시대의 열국들 및 고조선의 비파형동검문화가 각각 인접하고 있었다. <출처:스키타이황금문명전>

오르도스 지역의 청동기 문화와 스키타이 문화
내몽고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오르도스 지역은 스키타이문화 만큼이나 세계에 널리 알려 있는 오르도스 청동기문화와 흉노문화가 번영하던 곳이다. 오르도스 청동기문화는 동북아시아 지역 북방문화의 중요한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문화를 매개로 서쪽의 중앙아시아와 동쪽의 하북성 북부 내몽고 동남부 등지가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스키타이문화의 각종 청동과 황금으로 만든 독특한  동물양식이 약간의 변형을 거치면서 멀게는 중국 동부지역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오르도스 지역의 초기 철기문화 집단을 통해 재확산된 것들이다. 이와 반대로 미누신스크분지와 중앙아시아, 멀리 흑해 연안에서 발견되는 오르도스문화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청동기 문화 기원의 유물들 가운데 상당수 바로 이 오르도스 청동기문화를 통해 확산된 것들이다. 또한 오르도스 지역의 청동기~초기 철기문화는 기후와 생태환경의 변화에 따라 경제 형태와 문화성격 또한 계속적으로 변모해 갔는데, 크게 보아 북방문화권과 중국문화권, 농업경제와 유목경제가 끊임없이 교체 변동되는 역동적인 지역이었다. <출처:스키타이황금문명전>


내몽고 영성현의 소흑석구 유적.


아시아의 진주, 알타이 파지릭 문화
알타이는 수려한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높은 산악지대는 마년설로 덮여있는 성산이다. 계곡에는 고대 투르크인들이 남긴 석상, 암각화 등 수많은 유적들이 숨어 있어서 '아시아의 진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파지릭문화는 바로 알타이의 스키토-시베리아문화를 대표한다. '파지릭'은 고분 근처의 자그마한 마을 이름을 따서 파지릭 고분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파지릭문화에서 번성한 알타이의 황금기술은 흉노와 중앙아시아로도 전파되었다. 흉노인들은 파지릭문화로부터 전수받은 화려한 황금공예 기술을 가일층 발전시켰고, 다시 동아시아의 선비, 오환, 그리고 고구려 등에 전해 주었다. 신라의 황금문화 역시 이러한 수백년간에 유라시아 초원을 가로지르는 초원의 황금공예기술의 확산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출처:스키타이황금문명전>


초원실크로상에 등장했던 유목민족들과 한반도


각배(角杯, rhyton), 북방유목민과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

각배는 황소의 뿔로 만든 잔과 이를 본떠서 만든 토기.도기.금속기 등을 말하며, 기원전 3000년대에 크레타섬에서 만들어져  전해진 대표적인 동.서 문명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그리스를 비롯하여 유럽에서는 금속제 각배가 많이 만들어졌고, 초원실크로드를 형성했던 스키타이인들의 무덤에서 많이 출토된다. 동아시아에서는 소의 뿔로 만든 잔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출토되는 유물은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중국의 각배는 주로 수.당시대에 서양으로부터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신라와 가야의 고분에서 각배가 출토되는데 그 크기나 형태면가 매우 다양하며, 이들 지역과 중앙아시아 흉노를 거쳐 스키타이와 교류한 흔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크레타섬에서 출토된 미케네문명의 유물인 각배(대영박물관 전시). 각배는 기원전 3000녀대에 황소의 뿔을 본 떠서 만든 것으로 에게해 문명권에 성행하였으며, 메소피타미아, 이집트에도 전해졌다.


각배(Rhyton),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금.유기물질

우정맹세와 의형제 풍습 - 각배
스키타이인들의 우정 맹세는 커다란 토기 그릇에 맹세자들의 피가 섞인 술을 따르고 그 술에 검,화살,전투용도끼,창을 담갔고, 다음에는 길게 주문을 외우고, 맹세자들과 참관자 중 가장 존경받는 이들이 그 술을 마심으로서 이루어졌다. 또한 의형제를 맺는 의식을 치러 삶과 죽음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4세기 크리 반도의 쿨-오버 쿠르간에서 출토된 황금유물에 두명의 스키타이인이 뿔잔으로 함께 술을 마시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아마도 의형제 결의를 맺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출처: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말탄무사모양뿔잔(국보275호), 가야 5세기. 나팔처럼 아래로 벌어진 굽다리 위에 사실적으로 표현된 말이 올료져 있고 그 위에 무사가 타고 있다. 무사는 갑옷에 투구를 쓰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창과 같은 긴 무기를 비껴 들었고,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다.

포항냉수로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뿔잔(왼쪽)과 신라 황금문화의 전성기 고분인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동제 뿔잔(오른쪽).


경주 미추왕릉 지구에서 출토된 뿔잔형 토기와 경주에서 출토된 의례용 토기이다.

뿔모양 잔(왼쪽, 5~6세기) 굽받침 위에 말이 서 있고 말 등에 긴 뿔모양 잔이 붙어 있다. 뿔모양 잔(오른쪽, 보물 598호, 5세기) 부산 복천동 무덤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각배로 말 머리가 달린 뿔모양 잔이다.

스키타이의 상상의 동물 그리핀(Griffin)과 동물투쟁도

 스키타이는 흑해북안의 초원지대에 활약했던 유목민으로 동물을 소재로 한 금속제품 등을 많이 담겼다. 그 대상은 그들이 사냥감으로 삼았던 야생 양이나 사슴, 멧돼지, 호랑, 사자 등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중 맹수가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동물투쟁도를 많이 묘사하고 있다. 동물투쟁도는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를 비롯하여 그리스, 페르시아 등에도 많은 작품들이 유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동물들의 생생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동물투쟁도는 인간의 본성적인 면도 있지만, 초원실크로드를 통한 메소포타미아에서 스키타이를 거쳐 동아시아로 전해지는 대표적인 문명교류의 형태라고도 한다. 동물투쟁도와 함께 문명교류의 흔적으로 보는 유물의 형태 중 하나는 상상속의 동물인 '그리핀'을 들 수 있다. 그리핀은 지상의 맹수인 사의 몸에 하늘의 맹수인 독수리의 날개를 하고 있는 동물로 기원전 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나타났으며, 지중해와 북유럽,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동아시아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중국 후한대 사자형 석상과 수당대의 진묘수, 백제 무녕왕릉의 진묘수나 서울의 상징인 해치 또한 그리핀의 또다른 형태라 할 수 있다.

북방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기마유목민족 스키타이는 동물을 소재로 장식한 금속제품 등 여러 도구를 남겼다. 그것들은 스키타이가 수렵대상으로 삼았던 야생 양이나 사슴, 멧돼지, 호랑이, 사자 등을 단독으로 묘사하거나 혹은 맹수가 초식동물을 덮치는 약육강식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동물문양 가운데 유일하게 실재하지 않는 '그리핀'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핀은 지상의 가장 용맹스러운 맹수 사자의 몸에, 하늘의 왕자 독수리의 날개를 합성한 것으로, 이미 기원전 3천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나타나고 있다. 지상과 하늘을 지배하는 수호신으로서의 상상의 동물 그리핀은,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기원전559~330년)시대에 왕궁을 지키고 절대자의 권력을 수호하는 요소로서 왕궁의 기둥 끝 장식 등으로 묘사되며, 이 도상은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어 갔다. 즉 스키타이 미술의 동물모양 가운데 간두장식(pole top)이나 칼(아키나케스 검) 손잡이, 칼집, 화살통 등에 묘사되어 있는 그리핀이 바로 그것이다. 중앙아시아, 천산산맥, 알타이 지역에서도 아케메네스 풍의 그리핀이 다수 출토되고 있으며, 몽골고원에서는 그리핀 문양이 흉노 제국에 의해 수용되어 이후 동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 후한대의 사자형 석상과 수당대의 진묘수에는 그리핀의 모습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으며, 백제의 무녕왕릉 진묘수나 서울시의 상징동물 해치에 날개가 달려있는 것 역시 그리핀 문양을 중심으로 한 동서문화교류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출처: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대표적인 그리핀의 형태인 사람얼굴, 사자의 몸, 독수리 날개를 달고 있는 앗시리아를 대표하는 유물 중의 하나인 '사람의 머리를 한 날개달린 사자 석상"이다.


그리핀이 새겨진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시대의 칼집과 잔.

백제 무녕왕릉의 석수와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 앞에 세워진 해치상. 그리핀의 변형된 형식으로 중국 후한대에 흉노로부터 전해져서 수.당대를 거쳐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강서대묘 북벽의 현무의 모습을 그린 벽화이다. 강서대묘의 사신도를 비롯하여 고구려 벽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통털어서 가장 대표적인 벽화라 할 수 있다. 서방세계에서 사자가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동물투쟁도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으며, 서역과의 문화적 교류의 한단편으로도 많이 소개되는 벽화이다.

 

동물의장(animal style)

 동물의장(animal style)은 동물문양으로 구성한 장식의장으로 스키타이를 중심으로 고대 유라시아대륙의 초원지대에서 활약했던 기마민족 계통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장식이다. 동물의장도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생겨난 것으로 보이지만 스키타이를 중심으로 기마민족들이 많이 사용한 금, 은, 동 등의 금속세공방식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주로 그들의 소지품인 무기, 마구, 복장장식, 그릇 등에 다양한 형태의 동물문양을 장식하였다. 스키타이의 동물의장은 동유럽과 북유럽, 페르시아, 중국과 동북아시아로 전파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철기시대 고조선이나 삼한 지역에서 동물의장을 하고 있는 청동제품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스키타이 동물양식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주요 소재는 굽동물, 맹수, 맹금, 그리고 환상동물이었다. 이 동물들은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 혹은 다른 동물과 함꼐 표현하였다. 2마리 이상의 동물로 이루어진 화면구성은 굽동물과 맹수, 굽동물과 환상동물이 싸우는 투쟁장면이 많다. 이 경우 동물의 눈은 원 혹은 동심원으로 귀는 하트형으로, 코는 두개의 원으로 일정하게 정형화되어 있고, 실물보다 크게 과장되었다. 동물의 신체에 다른 동물을 삽입하거나, 혹은 특정 신체부위를 다른 동물의 형상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굽동물은 흔히 머리를 앞이나 뒤로 향한 상태에서 두 다리를 서로 포개어 접어 넣은 자세를 취한다. 맹수는 서 있거나 원형으로 웅크린 자세를 취하며, 맹수와 굽동물 모두 몸을 180도로 비틀은 경우도 많다. 신체를 면과 면들로 이루어진 능선으로 처리하거나 둥그스름한 원통모양으로 처리한 경우도 있다. 동물이 정면보다는 측면으로 표현된 경우가 월등하게 많은데 이 역시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스키타이의 동물의장을 한 금속장식판

스키타이와 알타이, 흉노 등을 거쳐서 전해지는 동물의장을 하고 있는 금속제 장식품

고조선의 영역으로 들어온 동물장식
기원전 9세기경부터 만주와 한반도 지역은 비파형 동검문화를 대표로 하는 청동기문화로 재편된다. 이때는 중국의 역사기록에 '고조선'이라는 실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는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큰 촌락을 이루며 고인돌을 만들었다. 만주와 한국의 청동기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무늬를 새기고, 마구와 무기대신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도구인 청동거울을 쓰는 샤면들이 우두머리인 시기였다.


경주 사라리 무덤과 영천 어은동에서 출토된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동물문양(호랑이)의 허리띠고리이다.


충남 천안 청당동 무덤(2~3세기)과 경주 죽동리무덤(기원1세기)에서 출토된 말모양의 허리띠고리이다.


스키타이의 동물모양장식(왼쪽)과 영천 어은동 유적지에서 출토된 삼한시대인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만든 동물모양장식(오른쪽)


스키타이를 비롯한 북방계의 영향을 받은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은잔이다. 스키타이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장식을 하고 있으며 사람은 코가 높은 서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금동 신, 5세기, 경주 식리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신발의 바닥으로, 거북등무늬 안에 짐승얼굴무늬와 새가 있고 그 둘레에 가릉빈가(새 몸에 사람 얼굴).새.기린.날개달린 물고기 등이 새겨져 있다. 새겨진 문늬는 중국 한나라시대에서 거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며, 새겨진 무늬 중 새 몸에 사람얼굴을 한 무늬는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 샤먼의 도구인 청동방울(간두장식)과 청동거울


 샤먼이라는 시베리아 퉁구스어로 인간계와 영계, 죽은자와 산자, 인간과 동물간의 매개자이자 이들로부터 힘을 받아 예언, 질병 치료, 꿈의 해성 등을 하는 종교적 능력자를 말하며,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북아시아 지역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종교형태이다. 이런 종교와 유사한 형태가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주로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북아시아 특유의 종교형태로 보고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 샤먼이 매개자로 역할을 하는 도구로 청동방울을 들 수 있는데 스키타이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청동방울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고대이래로 많은 청동방울이 출토되고 있으며, 지금도 샤먼이라고 할 수 있는 무속신앙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도구이다.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초원 민족과의 문화교류는 샤머니즘이라는 종교형태와 함께 신라의 금관 및 무덤의 매장방식인 적석목곽분 등 특히 신라의 유물에서 많은 교류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신라의 금관은 세계적으로도 신라에서 가장 많이 발굴되고 있으며, 그 형태에서 시베리아 샤먼의 관이나 스키타이에서 출토되는 청동방울이 달린 간두장식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신라의 적석목곽분은 그 형태에 있어서 흑해북안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인 쿠르간과 연결시켜서 해석하는 의견이 많은 편이며, 비슷한 형태의 무덤이 몽골지역의 흉노족 무덤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형태인 고인돌이 발전한 형태라고도 하지만 외관적인 형태에서도 차이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동물머리 형상을 붙인 스키타이의 간두장식, 기원전 5세기


삼한시대 예기로 샤먼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형태의 청동방울. 청동방울은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제례의식에 했던 것으로 팔주령, 쌍두령, 조합식 쌍두령, 간두령 등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 중 간두령은 포타모양으로 위쪽으로 방울부분과 네개의 길쭉한 구멍이 있고 자루에 꽂을 수 있도로 아랫부분에 돌기가 있다. 이런 청동방울은 청동거울과 함께 우두머리급 무덤의 부장품으로 출토되고 있는데, 제사장의 역할을 겸했던 군장의 위치를 보여준다.


우즈베키스탄 사팔리테파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거울(기원전 17~16세기,왼쪽)과 스키타이의 청동거울(기원전 5~6세기, 오른쪽)



동경은 유리대신 청동으로 만든 거울로 고대사회에서는 권력을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예기 역할을 했다. 동경은 손잡이가 있는 유럽계 계통의 것과 손잡이가 없는 중국 형식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동경은 대체로 중국에서 전해진 손잡이가 없는 형태가 많다.

고조선의 멸망과 흉노계문화의 유입
기원전 4~3세기에 연나라가 팽창하고 흉노세력이 발흥하면서 비파형동검 문화권은 그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당시 고조선의 북쪽에는 흉노가 있었는데, 중국은 고조선을 '흉노의 왼쪽어깨'라고 했으니 아마도 고조선과 흉노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영향인지 이 시기에 초원계통의 동물장식과 동검이 만주와 한국에서 발견된다. <출처:스키타이황금문명전>

황경남도 신천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고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요령식동검(왼쪽)과 기원전 1세기경에 만들어진 창원 다호리 무덤에서 출토된 한국형 동검(오른쪽)이다. 요령식 동검은 검몸과 칼자루를 따로 만드는 요령식 동검 특유의 형식으로 비파를 닮은 검몸과 세련되게 장식된 칼자루에서 권위를 상징하는 청동기시대 동검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기마유목민인 스키타이의 검(왼쪽,기원전 4~5세기)과 사르마트인의 고리달린 검(기원전 1~2세기)


고구려와 신라, 가야 등에서 볼 수 있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무기인 환두대도. 기마병이 걸고 다니기 좋게 고리가 칼자루 끝에 달려 있다.


다양형 형태의 안테나형 검.

신라의 금관

 20세기초 금관총 금관 발굴 이후 화려한 장식의 금관이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금령총에서 총5개의 금관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셰계의 금관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숫자라고 한다. 금관은 사슴뿔을 형상화한 출(出)자 형상의장식을 하고 있는 외관과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스키타이를 비롯한 초원실크로드를 통해서 전해전 고깔형의 모자가 변형된 형태를 하고 있는 관모형태의 내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관은 그 양식에 있어서 여러가지 견해가 있지만 대체로 시베리아 샤먼들이 쓰던 관을 본 뜬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라고 한다. 이는 사슴뿔을 통해 하늘과 교류하는 메신저로서 시베리아 샤먼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황금을 좋아했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사람들
초원의 유목민은 약 4천여년 전부터 황금제 장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황금은 비교적 늦게 도입되어서 중국은 기원전 10세기에, 한국은 그보다도 더 늦어져 기원 전후한 시기에 들어왔다. 중국과 한국에게 황금의 찬란함을 전해준 사람들은 유라시아의 초원민족이었다. 중국은 서쪽에 있었던 사키인(스키타이족의 일파)의 선조로부터 황금을 전래받았고, 한국의 황금유물에는 중국 북방에서 제국을 이룬 흉노의 영향이 강하다. 정착문명과 초원의 예술은 서로 교류하면서 서쪽에서는 그리스와 스키타이문화가 통합되었고 동쪽에서는 중국북방의 흉노와 중국의 예술이 결합되어서 찬란한 황금문화를 이루어 내었다.  <출처:스키타이황금문명전>

시베리아 샤면의 도구인 청동 방울에는 하늘의 뜻을 전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믿었습니다. 방울 장식에 사람의 형상이 보이는데 이는 파파이오스라는 신입니다. 파파는 그리스 말로 아버지라는 뜻으로서 제우스 신에게 영향을 받은 스키타이족의 아버지 신입니다. 파파이오스가 나무형상 위에 있는 것은 하늘의 뜻이 나무를 타고 전해진다고 믿었기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전하는 전령사가 바로 나무 위에 앉은 새들입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나무를 형상화해서 장식하고 있는 스키타이의 간두장식, 기원전 5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외형에 있어서 시베리아 샤먼의 관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금관과 시베리아 샤먼의 관

금령총 금관(왼쪽)과 서봉총 금관(오른쪽)

황남대총 금관(왼쪽)과 금관총 금관(오른쪽)

신라의 황금문화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신라의 적석목곽분과 황금문화는 서기 4세기경 갑자기 등장해서 200여년간 존속하다 홀연히 사라졌다. 알타이의 파지릭고분은 신라의 적석목곽분과 매우 유사한 구조여서 유라시아를 통틀어서도 이렇게 비슷한 고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알타이 파지릭문화는 기원전 7~2세기에 주로 만들어졌고 신라의 적석목곽분은 서기 4세기 경에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적어도 500년의 공백, 그리고 수천킬로미터의 지리적 거리가 있다. 이 시기 초원지역을 보면, 유라시아 초원에는 기원전 3세기에서 서기 1세기까지 세계사의 중심에 섰던 초원유목국가 흉노가 있다. 흉노는 서기 1세기 말 중국에 의해 망했는데 그 일파들은 동서로 흩어지면서 주변지역으로 확산했다. 서기 4세기 게르만조의 대이동을 야기한 훈족의 대이동이 그 좋은 예다., 전 유라시아적 관점에서 본다면 신라의 적석목곽분도 이러한 초원문화의 광범위한 파급과 맞물려 해석할 수 있다. 신라 적석목곽분에서는 북방지역과의 교류를 암시하는 자료로 천마도, 금관 및 황금장식, 각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유물들은 특히 흉노의 일파인 모용 선비문화와의 문화적 교류 또는 인적 교류의 실질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출처:스키타이황금문명전>

신라의 북방계유물
신라의 적석목곽분에서는 북방지역과의 교류를 암시하는 자료로는 계림로 출토 보검, 동복, 로만 글라스, 천마도, 금관 및 황금장식, 각배 등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들은 북방지역과의 문화교류 또는 인적교류의 실질적인 증거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북방 또는 중앙아시아는 매우 광활한 지역으로서, 이들 유물들의 주요 산지들은 서로 흩어져 있다. 신라의 북방계 문물은 주민이 이동하거나 기마민족이 정복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신라가 능동적으로 북방계문물을 흡수하는 서기 4~5세기의 동아시아의 전반적인 정세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삼국중에서 고구려와 백제에는 북방계 유물이 거의 없는 반면에 신라에 집중적으로 출토된다는 점은 신라가 국력 성장하면서 원거리의 위신재와 고총고분의 축조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 맥락에서 북방계 유물들이 대량으로 유입되고 또 일부는 자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출처:스키타이황금문명전>



스키타이의 화려한 금.은제 장식품(기원전 6세기경)


신라의 금.은 장신구


스키타이의 목걸이(기원전 6세기),  우즈베키스탄의 사팔리테파 유적에서 출토된 목걸이(기원전 17~16세기)

신라의 목걸이(5~6세기),


스키타이의 상감유리 목걸이와 천마총에서 출토된 상감유리구슬과 경주에서 출토된 유리구슬이 있는 목걸이. 상감유리구슬은 그리스,로마,페르시아 등에서 많이 만들어 실크로드를 통해서 교류되었던 물품이라고 할 수 있다.


1세기 중앙아시아 사르마트 지역에서 출토된 보석이 박힌 팔찌(왼쪽)와 경주 황남대총에 출토된 팔찌(오른쪽, 금.옥 팔찌, 보물 623호). 황남대총출토 팔찌는 표면에 녹색의 터어키석과 회색.흑색의 보석을 박아 넣고 금 알갱이를 붙여 장식하였다. 이런 형태의 팔찌는 특정지역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니고 페르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기보다는 수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보석장식이 박혀있는 흉노의 칼과 경주 계림로에서 발굴된 황금보검(6세기초), 서역을 통해서 직접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

 돌무지 덧널무덤은 한반도에서는 신라에서만 볼 수 있는 무덤의 형태로 지하에 굴을 파고 그 위에 나무덧널을 넣은 뒤 돌로 덮은 다음 흙으로 봉문을 씌우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하나의 덧널만 있는 외널묘와 여러개의 덧널이 있는 여러널묘로 구분된다. 이 돌무지 덧물무덤의 유래에 대해서는 자생설과 북방유목민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이 있는데 대체로 후자의 의견이 많은 것 같다. 돌무지덧널무덤에는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껴묻거리를 함께 묻는데 4세기 전반에 나타났다가 6세기에 없어진 무덤의 형태이다. 스키타이에서 유래한 북방유목민의 무덤은 알타이 파지릭과 흉노를 거쳐서 한반도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면, 그 무덤의 형태나 껴묻거리의 종류 등에서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신라의 적석목곽분의 유래
신라의 적석목곽분과 황금문화는 한국 고대문화에서 초원지역과의 관련성을 논의 할 때에 거론되는 대표적인 문화이다. 알타이의 파지릭고분은 신라의 적석목곽분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유사한 구조여서 유라시아를 통틀어도 이렇게 비슷한 고분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알타이 파지릭문화만을 따로 떼어서 놓고 본다면 기원전 7~2세기대까지이며, 신라의 적석목곽분은 서기 4세기이다. 적어도 500년의 공백, 그리고 수천 킬로미터의 지리적 거리가 있다. 유라시아 초원에는 기원전 3세기에서 서기 1세기때까지 세계사의 중심에 섰던 초원유목국가 흉노가 있다. 알타이의 적석목곽분을 만들었던 파지릭문화도 흉노에 의해서 망했다. 흉노라는 제국은 거대한 문화의 용광로로 유라시아 전 지역에 초원계 문화를 퍼뜨렸으며, 또 정착농경민의 문화요소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거대한 무덤을 만드는 흉노의 풍습은 주변지역에도 영향을 주었다. 흉노가 서기 1세기말 중국에 의해서 망하면서 그 일파들은 동서로 흩어지면서 주변지역으로 확산됐다. 전유라시아적 관점에서 본다면 신라의 적석목곽분도 이러한 초원 문화의 광범위한 파급과 맞물려 해석할 수 있다. <출처:스키타이황금문명전>



알타이 파지릭문화의 적석목곽분. 평지에 돌로 쌓은 거대한 고분의 형태를 하고 있다.


신라의 수도 경주 도심부에는 4~6세기에 조성된 귀족들의 무덤인 적석목곽분이 많이 남아 있다. 노서리고분군 중 최초로 금관이 발견된 금관총에서는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금.은제 세공품 등이 껴묻거리로 묻혀있었다.


우리나라 복식에 나타난 초원 유목민들의 복식

 한복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전통 복식은 바지.저고리.포(겉옷)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트임 형태의 윗옷과 관모는 역사에 나타난 한반도 사람의 변하지 않는 복식 형태이다.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바도 있지만 북방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또한 움직임을 편하게 하기 위한 가죽이나 섬유로 만든 허리띠와 동물문양 등이 들어간 허리띠를 조이는 대구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까지는목걸이, 팔찌, 반지 등의 장식을 많이 하고 있는 편으로 중국을 영향을 받으면서 복식이 변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 중 머리에 쓰는 관모는 중앙아시아 초원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복식이다. 고구려의 절풍관 또는 조우관이라고 불렸던 고깔모자형태의 관모는 역사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한반도의 관모형식이다. 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고깔모자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스키타이와 흉노 등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은 형태로 구한말까지 사용되었던 관,모,갓.건 의 형태로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의 관모는 고구려 고분벽화,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에 나타나는 고구려사신 등의 그림에 나타나고 있으며, 환두대도와 함께 고구려인을 구분하는 주요한 복식 중 하나이다. 또한 금관이 출토된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도 관모와 관장식들이 출토되고 있다.

 

스키타이인의 복식. 고깔형 모자와 많은 귀금속 장식, 앞트임복식 등 우리나라 복식과 비슷한 형태를 많이 볼 수 있다.


쿠샨왕자의 머리. 달레진테파 유적지에서 발견된 상으로 '쿠샨왕자'라고 불린다. 지배층의 복식으로 보이는 원추형 모자는 고대  중동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쿠샨조는 한무제때 흉노의 압력을 받아서 박트리아지역으로 남하한 월지국을 말하며, 실크로드 개척의 원인이 되었던 국가이다


말탄 사람이 그려진 벽화편(왼쪽, 5세기)은 평남 남포 쌍영총에 출토된 것으로 말을 타고 있는 고구려 무사를 묘사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번성했던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유적 벽화에서 묘사된 고구려 사신(오른쪽, 5~6세기)에서도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금관모 (국보 189호), 6세기, 천마총. 천마총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금관과 함께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국보 189호로 지정된 금관모이다. 이는 당시 실제로 사용했던 관모를 무덤 껴묻거리용으로 금으로 세밀하게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금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그 원형이 아주 깨끗하게 남아 있어 새로 만들어 놓은 것 처럼 보인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흉노의 허리벨트. 삼국시대 금관과 함께 출토된 금제허리띠 장식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황남대총 금관과 함께 출토된 금제 허리띠 장식. 장식적인 면이 많이 강조되었지만 기본적인 원형은 기마유목민의 허리띠벨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 자료참조: 1. 네이버백과
                 2. 스키타이황금문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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