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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시계(Sundial)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나는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측정하던 시계로 가장 원초적이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시계이다. 해시계는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었지만 현재까지 가장 먼저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메소포나미아에 폴로스라는 해시계이며,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또한 기념비의 성격을 갖지만 해시계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구약성서에도 해시계의 사용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스.로마시대에는 대리석에 1/4구면을 우묵하게 파고 눈금을 새겨 시간을 알 수 있게 한 해시계를 제작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해시계는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로 사라진 도시인 헤르쿨라네움에서 출토된 것으로 나폴리 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해시계는 삼한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에 세웠던 솟대가 해시계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삼국시대에 사용한 해시계의 일부로 보이는 돌 파편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해시계는 조선 세종대에 만들어어진 앙부,현주,천평,정남 등의 다양한 이름을 가진 일구들이며 가장 보편적으로 쓰였던 것은 앙부일구라고 할 수 있다. 앙부일구는 그 형태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세종대에는 정밀한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하기 위한 별시계의 기능을 추가한 일성정시의, 24절기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규표, 휴대용 시계인 천평일구와 현주일구 등이 장영실과 이천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정밀한 시간과 절기의 관측을 위해서 서양역법과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서 명나라에서 평면해시계인 신법지평일구를 도입하여 사용하였다.


오벨리스크(Obelisk),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념비이자 공중해시계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태양신 신앙과 관계가 있는 파라오의 권위를 나타내는 기념비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주로 신전 입구에 1쌍으로 세워졌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아스완에서 산출되는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어지며 단면은 사각형으로 위로 갈수로 뾰족해지는 첨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것은 헬리오폴리스에 남아 있는 높이 20.7m이다. 대표적인 오벨리스크로는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오벨리스크는 로마시대부터 많은 관심을 끌어서 인지, 로마를 비롯하여 프랑스 파리, 터어키 이스탄불, 미국 워싱턴 D.C등으로 반출되어 도심 광장에 세워져 있다.


이집트 룩소르의 룩소르신전 탑문 앞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왼편)와 카르나크 신전에 세워진 카르나크 신전 하트셉투스2세의 오벨리스크.


로마 바티칸의 성베드로대성당 앞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는 후대 사람들이 오벨르스크를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서기 64년 로마황제 칼리굴라가 원형경기장을 꾸미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에서 로마로 가져온 것이라고 하는데, 오벨리스크 자체가 권위를 상징하며, 광장에 나타난 그림자로 시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공중 시계의 의미도 같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태양신 신앙과 관련된 기념비이지만 종교적인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로마시대의 해시계(Sundial)

그리스.로마시대에는 공중해시계로 오벨리스크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우리의 앙부일구와 비슷한 형태의 오목해시계를 사용하였다. 하얀 대리석에 1/1의 구면을 오목하게 파고 눈금을 15˚간격으로 새겨 놓아 1시간 간격으로 눈금선을 통화하도록 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해시계는 폼페이 인근 헤르쿨라네움에서 출토된 것으로 현재 나폴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폼페이 유적지의 태양신이라고도 불리는 아폴론 신전 제단 앞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오목해시계를 볼 수 있다.


폼페이 포럼광장의 아폴론신전 제단 앞에 세워진 대리석으로 만든 로마시대의 해시계(Sundial)


솟대와 선돌

솟대는 한반도를 비롯하여 만주, 몽골, 시베리아,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물새를 장대위에 세운 것은 것으로 마을의 성역과 같은 곳에 세워 그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풍요를 바라는 성기 숭배 신앙의 형태의 선돌과 함께 동북아시아 민간신앙 중 하나이며, 아마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마찬가지로 그림자로 시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기능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속촌에 재현해 놓고 있는 마을 입구임을 알려주는 선돌과 솟대


앙부일구(仰釜日晷), 조선 세종대 장영실이 창안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독창적인 해시계

앙부일구는 1434년(세종16)에 장영실이 처음 만든 것으로 종로 혜정교와 종묘 남가에 설치하여 공중 시계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보물 845호인 고궁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앙부 일구는 조선 정조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앙부일구는 반구형의 대접모양에 네발이 달려 있고,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의 13선을 그려 놓아 계절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수직으로 7개의 시각선을 그려 놓았다. 앙부일구는 후에 궁궐의 전각이난 주요 공공시설물 등에 설치하여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서원 등에서 해시계를 올려놓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앙부일구는 그 제작수법의 용이함과 시간.절기를 알 수 있는 편리함으로 후대에 다양한 형태의 휴대용 앙부일구가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조선시대의 보편적인 해시계라고 할 수 있다.


고궁박물관에서 소장.전시 중인 오목해시계인 앙부일구, 보물 8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8세기 정조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동으로 만든 반구 안에 은선을 박아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를 13개의 계절선으로 나타내고 수직으로 시각선을 그었다.


경복궁 사정전과 덕수궁 석조전 앞에 설치된 해시계에 앙부일구. 국왕이 주로 집무를 보던 건물 앞에 시계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중시계로서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는 종묘 앞에서 설치된 앙부일구. 원래 설치되었던 앙부일구는 일영대만 남아 현재는 종로 탑공공원내로 옮겨져 있고 종묘 앞에는 복원된 앙부일구(가운데)가 놓여 있다. 영주 소수서원에 해시계를 설치했던 일영대(오른편)


조선후기 민간에서 만들어 사용했던 다양한 형태의 휴대용 앙부일구(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그 원리는 공식적으로 사용했던 앙부일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이 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둥근 지구 모양을 표현한 것이고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 계절선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다. 큰 것은 시계의 지름이 35.2㎝, 높이가 14㎝이고,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며, 작은 것은 시계의 지름이 24.3㎝이며 18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태양에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특히 세종실록에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 그림으로 그려서 시간을 알게 했다는 기록이 있어 주목할 만 하다. 또한 이것은 대궐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종로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시계였다는 점에도 의의가 크다. 2개의 해시계는 작고 오목한 가마솥 모양에 네발이 있는 우아한 모습을 가진 것으로 작풍과 제작기법이 같다. 청동으로 몸통을 만든 뒤, 검은 칠을 하고 글자와 선을 은상감으로 새겨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정확한 수평을 잡기 위한 십자형의 다리가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며, 과학 문화재로서도 가치가 큰 유물이다. <출처:문화재청>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

일성정시의는 조선 세종 19년(1437)에 이천, 장영실이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모아서 만든 천문관측시계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해시계 중 격이 높은 편으로 당시 4개을 만들어 국왕의 집무공간인 만춘전과 천문관측기구인 서운관, 평안도와 함경도의 병영에 설치했다고 한다. 일성정시의는 해시계의 원리와 항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별시계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이 시계는 한양의 위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구조는 원형의 의기를 세겹의 원으로 갈라 바깥쪽에는 천제의 공전을 재는 주천도분환, 가운데에는 낮의 시간을 재는 일구백각환, 안쪽에는 밤의 시간을 재는 성구백각환을 배치하였다. 세종대에 만들어진 일성정시의는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없어지고 현재는 실물은 남아 있지 않다. 일성정의의는 세종대왕 영릉 야외전시장에서 실록에 근거하여 복원된 것을 볼 수 있다.


여주 세종대왕 영릉 야외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복원된 일성정시의

일성정시의는 조선 세종 19년(1437년)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천,장영실이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모아 고안하여 낮과 밤의 시각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천체관측의기이다. 이는 태양시와 항성시를 측정하는 주야겸용의 측시기로 해시계의 원리와 항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규칙적으로 돈다는 별시계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 구조는 십자거, 주천도분환, 일구백각환, 성구백각환, 정극환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양의 북극고도(위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세종시대에 모두 4개의 일성정시의가 만들어졌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될 때 함께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 일성정시의는 세종실록에 근거하여 복원된 것이다. <출처:세종대왕 영릉>


천평일구.현주일구(天平日晷.懸珠日晷), 세종대 장영실.이천이 만든 휴대용 해시계

천평일구와 현주일구는 세종 19년에 만들어진 여러 해시계 중 하나로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해시계이다. 그 원리는 남북을 잇는 가는 줄을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일치하도록 추를 달아 팽팽하게 당기도록 설치하여 이 줄의 그림자를 둥근 시반에 나타나게 하는 해시계로 일종의 평면해시계로 당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해시계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비슷한 원리를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휴대용 해시계를 볼 수 있다.


세종대왕 영릉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천평일구(왼편)와 현주일구(오른편).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실제 모습보다 확대하여 만들어 놓고 있다.

 천평일구는 세종19년(1437년)에 창제한 해시계 중의 하나이다. 용기둥으로부터 남쪽 못까지 연결된 실은 하늘의 적도면과 일치하도록 설치되어있는 시반면 중앙을 수직으로 통과하며, 태양 빛에 의해 시반면 위에 맺힌 실 그림자로 그 때의 시간을 알 수 있다. 시반에는 하루를 12시로 매 시를 초.정 눈금(2등분)으로 나누어 사용하였는데, 시반 앞면은 하절기에 뒷면은 동절기에 사용하였다. 천평일구의 구조는 시반, 용주, 남북을 잇는 가는줄, 받침대, 남.북쪽의 못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주일구는 세종19년에 창제한 해시계 중 하나이다. 남북을 잇는 가는 줄을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일치하도록 추를 달아 팽팽하게 당기도록 설치하여 이 줄의 그림자를 둥근 시반에 나타나게 하여 그 가리키는 눈금을 보고 하루의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시반은 양면에 눈금이 새겨져 있다. 시반에 나타나는 가는 줄의 그림자가 여름철에는 시반의 윗면에 나타나고 겨울철에는 시반의 밑면에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윗면의 눈금은 춘분에서 추분까지 사용하고 밑면은 추분에서 춘분까지 사용한다. 현주일구는 세종 당시에는 휴대용 해시계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 크기가 손바닥만한 것이었다. <출처:세종대왕 영릉>


조선후기에 사용된 휴대용해시계(왼편,경기도박물관 소장)로 방위를 가리키는 나침반인 윤도가 함께 있다. 기울기를 조절할 수 있는 받침대와 절기가 함께 표시되어 있는데, 세종대의 천평일과.현주일구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1849년)에 민간에서 나무로 만들어 사용했던 단순한 형태의 휴대용시계인 일영시계 (오른편, 고려대박물관 소장)


규표(圭表), 방위와 절기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기

 규표는 1년의 절기를 측정하기 위한 천문관측기기로 지상에 수직으로 세운 막대인 표(表)와 북쪽방향으로 수평으로 누인 측정자인 규(圭)로 구성되어 있다. 수직으로 세운 막대인 표는 오벨리스크와 마찬가지로 가장 오래된 해시계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중국 주나라때부터 사용되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표는 동한시대의 묘에서 출토된 동규표하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대에 경복궁 경회루 간의대 동쪽편에 동표를 세웠다고 하며 그 높이는 40척으로 원나라때 천문학자인 곽수경이 만든 동표를 기준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규표는 일년의 길이와 24절기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로 수직으로 세운 막대의 정오때 그림자가 가장 긴 날을 동지로, 가장 짧은 날을 하지로 정했고, 그 가운데는 춘분과 추분, 4절기를 뺀 나머지는 15일 간격으로 하고 있다. 세종대에 만들어진 규표 또한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고 문헌 고증을 통해 복원한 규표를 세종대왕 영릉 야외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데 원래의 모습과 같은지는 알 수 없다.


여주 세종대왕 영릉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복원된 규표.

신법지평일구(新法 地平日晷), 중국으로 부터 도입한 서양의 영향을 받은 평면해시계

평면해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형태의 해시계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평면해시계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서양 역법의 영향을 받은 평면해시계를 도입한 것은 조선중기 명나라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서양식 평면해시계는 보물 839호로 지정된 중국 명나라의 이천경이 북경을 기준으로 제작한 신법지평일구와 숙종대에 이를 모방해서 만든 보물 840호로 지정된 신법지평일구가 있다. 이 지평일구는 명나라때 선교사 아담샬의 시헌력법에 의해 명나라의 이천경이 북경을 기준으로 제작한 해시계로 1645년경 소현세자에 의해 도입되어 관삼감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숙종대에 이를 모방하여 서울을 기준으로 제작한 것이 보물 840호로 지정된 신법지평일구이다. 이들 해시계는장구모양으로 선을 새겨 세로선은 시각, 가로선은 24절기를 나타내고 있는데, 앙부일구에 비해 정밀하게 시간과 절기를 관측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궁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1645년 소현세자가 도입한 명의 평면해시계인 신법지평일구(왼쪽, 보물839호)와 이를 모방해서 한양을 기준으로 숙종대인 1713~1730년경에 관상감에서 만든 신법지평일구(오른쪽, 보물 840호).

신법지평일구(보물839호)
대부분의 해시계가 반원모양인데 비해 이 해시계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는 면인 시반(時盤)이 수평을 이루고 있어 지평일구(地平日晷)란 이름이 붙었다.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가로 120.3㎝, 세로 57.5㎝, 두께 16.5㎝이고 무게가 310㎏이나 된다. 시반면은 잘 연마된 평면으로 그 위에 시각선과 절기선이 매우 조밀하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시각선은 한시간을 4각(角)으로 나누고 1각마다 시각선을 하나씩 그어 오전 5시45분부터 오후 6시15분까지 알 수 있게 하였다. 절기선은 하지에서 동지까지 13개선으로 이루어 졌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가운데 삼각형의 시표(時表)가 있었다. 『증보문헌비고』에 보면 인조 14년(1636) 시헌력법에 의해 이천경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해시계가 만들어진 표준 위도를 계산했는데 30°54′N으로 중국 북경의 위도와 같아, 이 지평일구는 북경을 관측지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1645년 우리나라에 돌아오면서 그 일행이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신법지평일구(보물840호)
해시계의 일종으로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가로 58.9㎝, 세로 38.2㎝, 두께 16.3㎝이다. 원리는 그래프 용지에 1㎝ 간격으로 동심원과 10°간격의 방사선을 그어놓고, 그 중심에 막대를 세워 시각에 따른 그림자의 변화를 보는 형태로, 이것은 반구형을 한 해시계 앙부일구를 전개하여 평면에 옮겨 놓은 것과 똑같은 모양이다. 측면에 새겨져 있는 글을 통해 18세기 초에 제작된 것이고 구조와 평면에 그려진 시각선, 절기를 나타낸 선이 중국의 것과 같아 그것을 본 떠 관상감(觀象監)에서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는 이들 신법지평일구와 같은 휴대용 해시계가 있다. 가로 16.8㎝, 세로 12.4㎝ 크기의 놋쇠로 만든 이 해시계는 자석으로 된 침이 들어 있어서, 휴대할 때 남북을 정하여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했다. 현재 덕수궁 궁중 유물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간평일구.혼개일구(簡平日晷·渾蓋日晷), 2개의 해시계를 하나의 돌에 새긴 해시계

정조대에 만들어진 이 해시계는 하나의 돌에 새긴 매우 도특한 형태의 해시계로 서울의 위도, 황도와 적도의 거리를 측정기준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간평일구는 앙부일구를 평면으로 만든 것으로 북극을 기준으로 태양의 운행과 시간을 알 수 있게 만들었고 혼개일구는 남극을 중심으로 가로,세로로 줄을 새겨 놓고 있으며 가운데 바늘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시간과 24절기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청과의 문물교류과 활발했던 정조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2개의 시계를 비교하여 측정할 수 있는 정밀한 해시계로 서양의 영향을 많아 받아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고공박물간에 소장.전시 중인 간평해시계와 혼개해시계(간평일구.혼개일구), 1786년(정조9), 보물 841호

 2개의 해시계를 하나의 돌에 새긴 매우 독특한 형태의 해시계이다. 서울의 위도 37도 39분 15초와 황도와 적도의 극거리 23도 29분을 측정기준으로 하여 1785년에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간평일구는 앙부일구를 그대로 수평면 위에 투영한 것과 같으며 길이 129㎝, 넓이 52.2㎝, 두께 12.3㎝이다. 해시계 면의 지름은 43㎝이며, 평면 원의 중심을 천정(天頂)이라 새기고 시각선의 복사점을 북극이라 새겼는데, 이 북극에 맞춰 보아 상공의 태양운행과 시간을 알 수 있게 고안한 것이다. 혼개일구는 해시계 면의 지름 46㎝이며 2구 모두 원안에 곡선으로 이루어진 세로선과 가로선들이 그어져 있는데, 세로선은 시간을 가로선은 계절을 나타낸다. 가운데 바늘의 길이는 원지름의 반이고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정오에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이 2구의 해시계는 시계면의 선들이 정확하고 정교하며 또 섬세한 선들을 음각하여 돌에 새긴 솜씨가 뛰어나다. 품위가 있고 구조가 독특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출처:문화재청>


강윤의 해시계, 서양의 영향을 받아 구한말에 만들어진 해시계

이 해시계는 구한말 강윤이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서 제작한 해시계로 앙부일구와는 달리 평면의 반원에 주시각이 새겨져 있고 중앙에 세워진 삼각형 동표의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는 전통적인 평면해시계이다. 이 시계는 중국식 12시각제에서 24시간제로 바뀐 형태로 시간을 표시하고 있으며 시간을나타내는 13개의 선이 그려져 있다. 고대이후 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형태의 해시계가 중국에 도입되면서 개량된 것으로 중국의 것을 모방해서 만든 마지막 해시계라고 한다.



고궁박물관에 전시중인 19세기 강윤이 제작한 평면해시계(왼쪽), 고려대 박물관에서 전시중인 19세기에 만든 지평일구. 동일인이 만들었거나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자금성 태화전 월대에 세워진 평면해시계(왼쪽), 북경 국자감 마당에 세워진 평면해시계(오른쪽). 서양식 해시계를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며 하얀 대리석 원판과 중앙에 바늘을 꽂아 시간을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 자료출처: 1. 고궁박물관, 고려대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중앙박물관, 경기도박물관
                 2. 네이버백과, 위키백과, 사이언스올 과학용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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