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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는 삼국시대 상당기간 동안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고대 국가입니다. 당시에 철이 많이 생산되었고 중국, 한국, 일본과 교역에서 아주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높은 문화.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입니다. 부족연맹체로서 낙동강을 따라서 주요 거점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가야의 맹주였던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구 김해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금도 우리나라 최대의 성씨인 김해김씨의 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가야는 낙동강 중류의 고령.합천지역에 있었고 그외에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이 존재했었습니다. 그외에 해상교역의 중심지였던 삼천포항 앞에 자리한 작은 섬인 늑도에도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 가야 유적지 탐방
  (금관가야)   1.가야탄생 설화 구지봉,   2.수로왕릉,  3.허황후릉,   
                   
4.파사석탑    5.봉황동 유적  6.김해박물관

  (대가야)     7.고령 지산동 고분군(입구)      8.고령 지산동 고분군(능선)    
                 
9.고령박물관    10.알터마을 암각화

  (아라가야)  11.도항리.말산리 고분군
  (기타)        12. 사천 늑도유적지

한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가야 유적지입니다. 낙동강과 남해안 연안항로의 주요 거점에 6가야 연맹체의 수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넓은 평야와 교통로를 장악하고 있던 금관가야와 철을 생산하던 고령의 대가야가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김해 시내에서 약간 북쪽에 자리한 구지봉은 가야 건국 설화의 무대이자, 수 많은 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배워야만 하는 '구지가'의 무대이기도 하다. 구지봉은 김해박물관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뒷동산이자 수로왕비릉을 통해서도 올라 갈 수 있다. 구지봉의 생김새는 구지봉 뒷산과 연결하여 거북이의 머리 부분과 비슷하고 목부분에 수로왕비릉이 자리잡고 있고, 지금은 도로가 있어 꼭 목이 잘린 것 처럼 보인다. 구지봉 정상에 올라서면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이 '구지봉석'이라고 끌씨를 적어놓은 고인돌과 중간 누가 세워 놓은 지는 알 수 없는 바윗돌이 서있다.


경남 김해에 자리잡고 있는 수로왕릉입니다.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을 모신 왕릉인데 가야시대의 고분의 모습이 아니라 조선시대 왕릉을 보는 것 같습니다. 왕릉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인도와 관계되었다는 쌍어문과 파사탑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성씨인 김해김씨의 시조답게 관리가 아주 잘 되고 있어 신이 다니는 삼도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하고, 왕릉 안쪽으로는 출입을 할 수 없게되어 있습니다.


김해 북단에 자리잡은 김해 허씨의 시조이자 가야를 건국한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의 능입니다. 위치를 잘보면 가야 건국설 의 "구지가"와 관련된 구지봉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멀리서 보면 구지봉이 거북의 머리라고 보면 수로왕비릉이 자리한 위치가 목부분에 있습니다.(순전히 개인생각임) 남쪽의 수로왕릉과는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김해 수로왕비릉 우측편에 자리잡고 있는 파사석탑입니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건너올 때 바다 신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싣고 왔다는 돌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종류의 돌이라고 합니다. 원래 다른 사찰에 있던 돌을 옮겨서 현재의 자리에 있습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김해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김수롱왕릉 정면에 위치한 봉황대라고 불리우는 구릉과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한 대규모 생활.생산유적입니다. 이 일대는 일찍이 청동기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생산과 주거의 거점지역이었으며, 이후 대규모의 주거지, 고상건물지, 방어시설, 한국 최대 깊이의 패총 등이 발굴되는 점 등으로 보아 금관가야 지배층 집단의 중심 거주지역으로 발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서 가야시대의 주거시설 등을 재현해 놓고 있습니다. 사적2호로 지정되어 있는 유서깊은 지역입니다.

김해시 주촌면에 위치한 양동리 고분군은 1969년 처음으로 알려진 이래, 1996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되었다. 목관묘, 목곽묘,석곽묘 등 500여기의 무덤에서 토기.청동기.철기 등 5,000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와 김해지역의 고대문화를 밝히는데 좋은 자료를 제공하였다.


김해 대성동 유물을 중심으로 금관가야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령 지역은 낙동강 중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남과 경북의 경계가 되는 곳입니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철이 많이 생산되어 철의 왕국 가야의 중심을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가야 박물관은 대표적인 대가야 유적지인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이 있는 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곳은 박물관이 의미를 가지기 보다는 뒷산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고분산을 연상시키는 지산동 고분군의 입구라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령은 낙동강이 대구를 지나서 경남지역으로 흘러가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옛날 낙동강 내륙수운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령토로 유명하며 철이 많이 생산되어 대가야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고령읍 서쪽편 산자락에는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인 지산동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에 등장하는 고분산을 연상시키는 곳입니다.


철의 왕국 대가야 고분산에서 내려다 보면 정면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고 낙동강 하류방향에 선사시대 유적인 양전리 암각화가 있는 알터마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양전리 암각화는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 다양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암각화는 북방민족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 민족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고 당시 사람들의 신앙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유적입니다. 역사적 가치가 높아서인지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김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대가야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입니다.


가야 연맹체의 하나인 아라가야 유적지가 있는 경남 함안에는 군청이 있는 가야읍 도항리, 말산리에 수십기의 가야시대 고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넓은 평지 지역에 속하는 함안군의 중심지 낮은 야산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고분군에서는 가야를 대표하는 '수레바퀴모양 토기'를 포함하여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고령 대가야 고분군에 비해 낮은 야산에 고분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야를 상징하는 유물인 수레바퀴모양토기입니다.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입니다.


마갑총은 1992년 6월, 함안 도항리.말이산 고분군의 북쪽 능선상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발견되었다. 길이 6.9m, 너비 2.8m, 깊이 1.1m 의 구덩이를 파고 목곽을 넣어 만든 이 무덤 안에서 말갑옷이 출토되었다. 말갑옷은 전투 때 적의 공격으로부터 말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크게 목가리개와 몸통가리개로 이루어져 있다. 목가리개는 긴 철판을 여러 매 이어 제작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되어 있는 말갑옷의 실물은 가야의 무덤에서만 이부분씩 확인되었는데, 마갑총 출토품을 통하여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남해안 삼천포항 앞 바다에 위치하고 있는 사천 늑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대 한.중.일간의 중요한 무역로 위치하고 있어 고대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주로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뀌어가는 초기 철기시대 유물들이 주로 발굴되고 있는데 일본 야요이시대 토기, 중국계 유물인 낙랑토기, 중국 진(秦)나라 화폐인 반량전(半兩錢)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주남저수지에 인접한 창원 다호리 유적은 사적 제327호. 해발 20m 정도의 야트막한 구릉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적이 알려진 것은 1980년이었으나 발굴은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지방 유력자의 무덤으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김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된 철의 왕국 가야의 철제 무기류입니다.


김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야 시대 장신구와 청동거울입니다.


가야의 소국들은 2~3세기경에 김해부근에 있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전기 가야 연맹을 구성했다. 그러나 가야 연맹을 고구려가 공격하면서 쇠락기에 들어섰다. 5~6세기경, 고령부근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 연맹이 구성되었다. 후기 가야 연맹은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압박을 받으며 차례로 무너졌고,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게 병합되며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부락국가를 이룬 마을이 차츰 확대되어 작은 부족국가가 되어 6가야를 형성하였다. 6가야는 금관가야(金官伽耶)[1], 아라가야(阿羅伽耶)[2], 고령가야(高寧伽耶)[3], 대가야(大伽倻)[4], 성산가야(星山伽耶)[5], 소가야(小伽倻)[6]를 가리킨다. 6가야 중에서 금관가야의 세력이 제일 강대하여 다른 5가야는 이 금관가야를 맹주(盟主)로 삼았다. 금관가야는 수로(首露) 또는 수릉(首陵)이라는 사람이 세운 나라로 491년 동안 존속되었으며,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게 멸망할 때까지 여러 차례의 전란을 겪었다. 대가야는 이진아시왕에서 도설지왕에 이르는 500년 동안 존속하였으며, 562년(신라 진흥왕 23)에 신라에 완전히 병합되고 말았다. 이로써 512년(백제 무령왕 12년) 하다리·사타(娑陀)·모루(牟婁) 등의 4현(縣)을 백제에 빼앗기면서부터 이웃 나라의 압력을 받기 시작한 육가야는 금관가야가 멸망한 후, 낙동강 중류 서쪽 고지대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가 멸망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여러 나라들도 신라에 병합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남부에서 큰 세력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백제와 직접 국경 충돌을 자주 일으켰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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