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댐은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천미라와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사이를 막은 댐으로 1986년 금강산댐으로도 불리는 북한의 임남댐 건설계획에 대응하여 시급히 만들어진 홍수대응댐이다. 제5공화국 시절 금강산댐을 이용한 북한의 수공으로 한강유역과 서울이 물에 잠길 수 있다는 과장된 홍보로 시작된 이 댐은 초기에 국민성금을 모으는 등 국민적 관심속에 1987년에 착공하여 1988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치적인 환경의 변화로 국민들의 기억속에 잊혀졌다가 국민의 정부시절인 2002년초 북한이 임남댐 보수 등의 이유로 예고없이 물을 대량으로 방류한 사건이 발생해서 그 존재가 부각되기도 했다. 이후 2단계 공사를 통해 참여정부시절인 2005년에 공사를 완공하여 오늘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평화의 댐은 평화의댐은 높이 125m(해발 270m), 길이 601m, 총저수량 26억3천만톤의 댐으로 실제로 물을 가두어 놓고 있거나, 수력발전을 하고 있지는 않고 있으며, 단순히 임남댐 붕괴나 이상 기후에 대응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임남댐에서 24km, 화천댐에서 12km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임남댐에서 흘려내려오는 물을 수로를 통해서 화천댐으로 흘려보내주고 있다. 주변에는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가곡인 '비목'을 기념하는 비목공원이 있고, 마을은 거의 없는 편으로 근처 비수구미계곡에 있는 마을이 친환경생태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화천에서 평화의댐을 가는 길은 상당히 높고 험한 산중턱에 건설된 국도를 통해서 가야하는데, 국도에서 내려다 보는 북한강의 경치가 상당히 아름답다.
평화의 댐은 콘크리이크중력식으로 쌓은 댐으로 그 높이가 125m가 넘는 웅장한 구조물이다. 실제 물을 담수하지 않고 있어서 웅장한 댐의 전경을 댐 안쪽에서 볼 수 있다. 중간에 보이는 경계에 1차로 쌓았던 80m 높이인 것으로 보인다.
평화의 댐 위쪽 해발 250m에는 양구와 화천을 연결해주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전력발전시설이나 수문이 없기때문에 다른 댐과는 달리 아무런 시설도 없다.
평화의 댐에서 보이는 북한강 상류. 단순히 흐르는 강물만 막아놓고 있는 상태로 인공호수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왼편으로는 댐의 물을 화천댐으로 방류하는 수문이 있다. 멀리 북쪽으로는 이곳에서 14km 떨어진 해발 1,179m의 가곡 '비목'의 탄생지인 백암산이 보인다.
댐아래로 보이는 아찔한 모습
평화의댐 하류 방향의 풍경. 화천댐에서 시작된 파로호의 상류에 해당하는 곳으로 강건너편은 양구군에 해당한다.
평화의 댐 아래에는 인공적인 연못처럼 호수가 형성되어 있다.
평화의 댐 동쪽편 언덕 주차장과 작은 전시관이 있다. 아직 이른 봄이라 관광객은 많지 않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화의 댐이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에 세워진 범종
언덕에서 보이는 평화의 댐
언덕 아래쪽에서 올려다 본 범종이 세워진 전망대
평화의 댐 동쪽 언덕 아래로는 화천과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가곡 '비목'을 기념하는 비목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비목공원을 상징하는 비목. 1960년대에 이곳에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백암산에서 발견된 무명용사의 철모와 돌무덤을 재현해 놓고 있다. 전쟁의 쓸쓸한 모습이 가곡 '비목'의 노랫말이 저절로 생각나게 하고 있다.
비목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
비목시비와 DMZ아카데미
비목공원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댐에 위치한 비목공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가곡인 비목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5년에 조성되었다. 비목의 유래는, 1960년대 중반 평화의댐에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백암산(해발 1,179m) 계곡 비무장지대에 배속된 한명희라는 청년장교가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한국전쟁때 전사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고 돌무덤의 주인이 전쟁 당시 자기 또래의 젊은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비목>의 노랫말을 지었으며 그 후 장일남이 곡을 붙여 비목이라는 가곡이 탄생되었다. 1996년부터 매년 호국 보훈의 달 6월에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비목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평화의 댐 앞쪽으로 내려가는 도로와 터널. 비상시 수문 역활을 하는 터널로 보인다.
임남댐에서 흘러내려오는 북한강물을 화천댐으로 내려보내는 수문
평화의 댐
북한은 북한강 상류에 임남댐(금강산댐) 건설계획을 1986년 10월 21일 발표하였고, 이에 우리나라(제5공화국)는 이 댐이 수공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임남댐에 대응하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계획을 1986년 11월 26일 발표, 국민들의 성금과 뜨거운 성원속에 1단계 공사를 1987년 2월 28일 착공하여 1988년 5월 27일 완료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과 기대를 안고 태어났던 평화의 댐은 정치변화를 겪으면서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 버린 댐이 되었다. 평화의 댐은 여느 댐과 달리 물을 채우는 설비나 발전소가 없다. 임남댐을 비롯한 북한측에서 내려온 물은 배수터널을 지나 화천댐으로 조용히 흘러갈 뿐이다. 임남댐 붕괴를 대비했기에 저수기능이나 발전기능을 만들 수 없었다. 평화의 댐은 탄생 배경뿐만 아니라 그 모습에서도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평화의 댐은 1999년 8월 태풍 올가의 위험으로부터 홀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냈으나 국민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한편 임남댐은 2000년부터 담수를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한강으로 유입되는 물의 9.5%인 17억톤이 줄어들어 서울지역의 물부족 현상과 환경문제가 발생되고, 하류 5개댐의 전력량이 감소하는 등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그러던 2002년 1월초, 한 겨울에 평소보다 50배나 많은 물이 평화의 댐으로 유입되는 일이 발생하여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확인한 결과, 원인은 공사중인 임남댐의 훼손부위 보수를 위해 댐에 가둬둔 물을 대량으로 방류한 것으로 밝혀져 임남댐의 안전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 북한당국과 임남댐 안전문제에 대해 수차례 협의를 하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이에 국민의 정부는 평화의 댐 2단계 공사계획을 2002년 7월 19일 발표하고, 2002년 9월 30일 착공하여 2005년 10월 19일에 마침내 평화의 댐 2단계공사를 준공하였다. 5공화국에서 착공한 평화의 댐이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서 준공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지만, 평화의 댐은 임남댐 붕괴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또한 저수량의 조율 등으로 인한 실질적인 댐의 역활과 함께DMZ 평화.안보.생태 보존의 위한 지대한 가치도 지니고 있다. 평화의 댐은 물의 흐름을 바꾸는 것도막는 것도 아니라 단지 성난 물을 잠시 다독여 주기 위해 이자리에 서 있다. 훗날 남북에 평화가 찾아오고 통일이 되면 평화의 댐은 진정한 댐의 모습을 찾게 되리라 우리 국민들은 확신한다. <출처:수자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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