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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향교, 금관가야 중심지 김해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김해도호부 중등교육기관

younghwan 2012. 4. 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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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하구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김해는 옛 금관가야의 도읍지로 고려시대 이래로 종3품의 부사가 수령인 김해도호부 설치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넓은 농토와 함께 조세운송과 물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낙동강 뱃길에서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고을이다. 김해에는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김해읍성을 쌓았고, 가까운 곳에 산성인 분산성을 두고 있다. 옛 김해도호부의 관아건물로는 객사 후원과 교육기관인 김해향교만이 남아 있다.

 김해향교는 관아가 있던 읍성 북문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고을 향교와 비슷한 입지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해향교가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초인 태종대로 화재 등으로 여러차례 이전을 하여 영조대에 현재의 위치에 자라잡고 있다. 김해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을, 뒷쪽에 제향공간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도호부가 설치된 지역의 위상과 규모에 걸맞게 향교의 규모도 큰 편으로 출입문으로 문루이자 정자의 기능을 갖는 풍화루를 두고 있으며, 강당인 명륜당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또한 다른 지역 향교에 비해서 규모가 큰 편이다. 김해향교에 입구에는 별도로 큰 건물의 유림회관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지역 유림의 활동 또한 왕성한 것으로 보인다.


김해향교 출입문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다른 지역 향교와는 달리 홍살문 주위로 담장을 둘러 쌓고 있다.


향교 출입문 문루인 풍화루. 앞면 3칸에 삼문의 형식을 하고 있는 출입문이다. 김해향교가 있는 곳은 김해읍성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문루 누마루에 올라서면 김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인다.


김해향교 강학공간의 중심건물인 대성전이다. 앞면 5칸의 큰 건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는 온돌방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해는 남쪽지방에 위치하여 가운데 3칸 대청마루에 문을 달아놓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중부지방 건물을 참조하여 지으면서, 문을 달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해향교가 중건된 영조대에 향교가 교육기관의 기능을 상실하고 문묘에 제례를 올리는 기능만 남아 있었기때문에 정형화된 향교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향교 입구 마당의 오래된 고목. 다른 향교에 비해서 수령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 하다.


김해향교 들어가는 입구에는 현대식으로 세워진 큰 건물인 유림회관 건물을 볼 수 있다. 이 지역 유림들의 활동이 왕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해향교, 김해시 대성동
향교는 유고의 옛 성현을 받들면서 지역사회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세워진 전통시대의 지방교육기관이다. 김해향교는 태종 8년(1408) 고정에 창건하였다가 그 후 화재 등으로 수차례의 이전을 거쳐 영조 46년(1170)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향교는 교육과 재례의 두 기능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의 하는 동.서재는 교육기능을 담당하고, 공자를 비롯한 25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석전을 봉해하는 대성전과 동.서무는 제례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김해향교는 교육공간을 앞쪽에, 제례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배치의 일반적 형태인 전학후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입구에는 풍화루와 홍살문이 자리잡고 있다. <출처:김해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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