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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경주 양동민속마을,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저택 관가정(보물 442호)

younghwan 2012. 6. 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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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민속마을에서도 입지면에서나 건축형태에 있어서 가장 좋아 보이는 보물 442호로 지정된 관가정이다. 조선 중기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아들이 손중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형산강과 기계천이 흐르는 안강평야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저택이다. 기본적으로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면서도, 왼쪽으로는 누마루가, 오른쪽으로는 살림집이 확장된 형태를 하고 있다. 마당과 넓은 벌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채는 정자형태의 대청마루 2칸과 온돌방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5칸 규모로 가운데 3칸을 대청마루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방들과 대청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안채의 방들도 바깥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문간채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으며, 창문을 열면 양동마을과 주변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 구조이다. 안채에는 다른 집에 비해서 대청마루를 많이 두고 있는데, 후대에 제사 준비를 위해 건물구조가 변형된 것이라 한다. 건물 뒷편에는 손소를 모신 사당이 있으며, 대문과 담은 원래는 없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 관가정으로 올라오는 길에는 큰 정자나무가 있어서 그 아래에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사랑채 앞에는 오래된 향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수목들이 자라고 있다.



보물 442호로 지정된 조선중기때 지어진 저택인 관가정. 마을에서도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관가정 사랑채. 대청마루 2칸, 온돌방 23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청마루는 사실상 누마루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삼면이 개방되어 정자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는 뜻으로 이 곳에 올라서면 형산강 주변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가정'현판이 걸려 있는 누마루 내부


사랑채에는 2칸의 온돌방을 두고 있으며, 난간이 있는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다. 온돌방도 방문을 열면 마을과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채로 들어가는 출입문


안채 출입문 오른쪽으로 문간채라고 할 수 있는데, 살림집 방들이 이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 곳 또한 창문을 열문 마을과 넓은 벌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대문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주변 풍경. 경주에서 포항으로 흘러가는 형산강과 그 지류인 기계천, 주위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마당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며, 가운데 3칸에 큰 대청마루를 두고 그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오른편에도 대청마루 2칸을 두고 있다.


왼쪽편은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서까래


안채 외부. 살림집 뒷마당으로 보인다.


안채 뒷편에는 손소를 모신 사당이 있다.


뒷편에서 본 사랑채 누마루


마을과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사랑채 앞 마당. 수령 수백년된 향나무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수목을 심어 놓고 있다.


수령이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향나무


원래 관가정에는 담장과 대문이 없었으나 최근에 만들었다고 한다.


아래쪽에서 올려다 본 관가정 전경


관가정 아래 전망좋은 자리잡고 있는 정자나무



관가정, 보물 442호
이 집은 조선 중종 때 청백리였던 우재 손중돈(1463~1529년)이 분가하면서 지은 것이다.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뜻으로, 누마루에 올라보면 그 이름에 걸맞게 곡식이 익는 들판과 강의 모습이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대청이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인데, 살림집이 후대로 오면서 제사 때 필요한 공간확보를 위해 변형된 것이다. 본채 뒤쪽에 손소를 모신 사당이 있으며 대문과 담은 원래 없었으나 1981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출처:양동민속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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