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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

경주 천군동사지 (사적 82호), 보문관광단지 근처에 남아 있는 절터

younghwan 2012. 6. 1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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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보문관광단지 동쪽편 입구에 있는 작은 마을인 천군동 마을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인 사적 82호로 지정된 천군동 절터이다. 현재는 보물 186호로 지정된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인 천군동 동.서삼층석탑과 주춧돌 등이 절터에 남아 있다. 문헌이나 자료에 이절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지명을 따서 천군동사지라고 부른다. 이 사찰의 가람배치는 2개의 탑을 중심으로 중문, 금당, 강당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쌍탑1금당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금당.강당.중문의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출토 유물은 건축부재 외에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천군동사지가 있는 천군동 마을은 지금도 경주와 동해안 감포, 포항 등을 연결해 주는 4번국도가 있고, 보문관광단지에서 불국사를 거쳐 울산지역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이 마을 부근에서 4번국도가 만나고 있는 육로교통의 요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토함산에서 발원하여 경주 도심 북쪽을 흘러 형산강과 만나는 북천(알천)이 흐르는 계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인근에는 원효대사와 관련된 고선사가 지금은 수몰된 덕동댐 안에 있었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삼층석탑의 양식에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경주에 세워졌던 많은 사찰들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절터는 대부분 논밭으로 이용하고 있어서 그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사적 82호로 지정된 경주 천군동사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의 형식을 하고 있는 천군동 동.서삼층석탑이 절터에 남아 있다. 절터 동쪽편으로는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리는 세계문화엑스포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천군동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 168호로 지정된 천군동 동.서삼층석탑


삼층석탑 부근에 남아 있는 건축부재들


천군동사지 절터 대부분은 현재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절터 너머로 경주 보문관광단지 위락시설이 보인다.



옛 건물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을 비롯한 건축부재들. 농경지로 오랜 기간 사용되어서 그런지 출토된 건축부재들이 많지는 않지면 여러곳에서 전시해 놓고 있다.


농경지 바깥쪽에 건축부재들이 놓여 있다.


농경지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삼층석탑. 현재도 건물터를 구분해 놓고 있지 않다.


천군동사지 절터와 그 너머로 보이는 보문관광단지 위락시설


천군동사지 동.서삼층석탑


절터가 있는 천군동 마을. 남쪽으로 불국사를 통해 울산지역으로 연결되는 큰 길이 있는데, 옛날부터 이 마을 경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천군동사지와 천군동마을. 마을 안쪽으로 황룡사 목탑과 비슷한 높이로 만들었다는 경주 엑스포전망대가 보인다.


보문관광단지에서 보이는 천군동 마을 주변.

경주 천군동사지, 사적 82호, 경주시 천군동
이 절터는 여기에 있던 절의 이름을 알 수 없어 동리이름을 따서 천군동 절터라고 부른다. 무너집 탑재와 주춧돌만 흩어져 있었는데, 1938년 일본인들의 발굴조사에 의해 중문.금당.강당자리가 확인되었다. 가람배치는 통일신라시대의 쌍탑 1금당식이다. 앞에는 중문이 있고 그 안쪽 동서에 두탑이 있으며, 그 뒤로 금당터와 강당터가 자리하고 둘레에는 회랑터가 있다. 중문터는앞면 3칸에 옆면 2칸이고, 금당은 앞면과 옆면이 각각 5칸, 강당은 앞면 8칸에 옆면 3칸 규모였음이 밝혀졌다. 중문에서 강당까지의 남북 길이는 79m, 동서 길이는 61m 정도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은 대부분 기와와 벽돌 종류로 지붕 맨 윗부분(용마루)의 양쪽 끝을 장식하였던 치미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 양식인 쌍탑식 절 배치를 따랐지만 금당 좌우에 회랑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이 절터는 현재 논밭으로 변하여 원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동.서탑을 1939년 다시 세워 보존하고 있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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