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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

경주 보문동사지(사적390호), 보문사지석조(보물64호)와 당간지주, 금당터가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younghwan 2012. 6. 1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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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보문동 농경지  한가운데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인 보문동사지이다. 절터에서 보문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에 보문사라는 절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문헌상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처음 건립된 연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금당터, 동.서 목탑지 등의 건물 배치와 주춧돌, 축대 등 석제 유물 등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조성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보물 64호로 지정된 물을 담는 그릇인 석조를 비롯하여 출입문 방향으로 추정되는 서쪽편에는 보물 123호로 지정된 보문리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보문동사지가 있는 경주 보문동은 경주도심에서 남동쪽으로 명활산성과 경주 낭산 사이의 들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신라를 건국한 연맹체였던 신라 6촌 중 명활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명활산고야촌이 있던 마을로 신라가 6촌을 6부로 개편할 때 습지부가 되면서 설(薛)씨 성을 받은 지역이다. 이 사찰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낭산 북쪽의 황복사, 낭산 남쪽의 사천왕사와 삼각형을 이루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문헌에 이 절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경주에 있던 많은 사찰 중의 하나로 중요도는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 명활산과 낭산 사이의 들판 한가운데 작은 숲이 보이는데, 보문동 사지 뒷편에 큰 수목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보문동 사지 입구에 남아 있는 목탑지(서탑). 보문사지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가람배치인 2탑1금당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는데,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목탑을 세워 놓았었다.


보문사지 목탑지(동탑). 동탑 너머로 멀리 황복사 삼층석탑이 보인다. 원래는 낭산북쪽으로 황룡사 구층목탑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문사 절터 앞쪽에 남아 있는 동.서 목탑지


보문동사지 금당터. 금당터는 지면에서 약 1m 정도 높게 흙으로 축대를 쌓고 있으며, 그 위에 기단석과 초석 등 건축부재들이 배치되어 있다.


보문동사지 금당터에 남아 있는 기단석


기단석 주변으로 많은 기와조각들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당터 위에 남아 있는 건물 초석들


뒷편에서 본 보문사지 금당터


금당터 앞쪽으로는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겼던 숲인 낭산이 보인다.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보문사당간지주는 금당터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금당터 뒷편에서 볼 수 있는 건물초석


금당터 뒷편에 남아 있는 건물터. 사찰의 가람배치 등으로 볼 때 강당이나 회랑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문사 금당터 뒷편으로는 보물 64호로 지정된 보문사지 석조가 남아 있다.


보문사지석조는 큰돌을 파서 만든 물통이로 사찰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거나 물을 마시는데 주로 사용된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석조는 아랫단에 물을 빼기 위한 구멍이 남아 있어 실제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 보문사지 석조

경주 보문사지석조, 보물 64호, 경주시 보문동
이 곳은 신라시대부터 중요하게 여겨온 낭산과 명활산성 사이에 형성된 들판으로 '보문사'라고 새겨진 기와의 발견을 통해 절 이름이 알려졌다. 부근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터와 동서의 모탑터,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다 이 돌 물통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절에서 물을 담아 사용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로로 놓인 직육면체의 돌 안쪽을 파냈으며 외부와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불국사 안에 있는 4개의 돌 물통을 모두 장식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이 보문리 돌 물통은 뒤편 북쪽 가운데 아랫단에 물을 빼기 위한 구멍이 남아 있어 실제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주변 유물들과 관련지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조 부근에 남아 있는 건물 초석


보문사지 뒷편 숲에서 본 보문사 절터와 그 너머로 보이는 경주 낭산


보문사 절터 뒷편의 숲. 농경지 한 가운데에 숲으로 남겨 놓고 있는 부분이다.


보문사 절터 뒷편의 작은 숲

경주 보문동사지, 사적390호, 경주시 보문동
이 절이 처음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보문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절 이름이 보문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석제 유물이나 건물의 배치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절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금당지.동서 목탑지 등의 건물터와 석조.당간지주.초석.석등부재 등이 남아 있지만, 절터 대부분은 넓은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금당지의 높이는 경작지의 표토에서 1m 정도이며, 흙을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의 기단석과 초석이 배치되어 있다. 목탑지는 금당지 앞의 높은 단 위에 남아 있는데, 서탑지의 중앙에 남아 있는 대형 초석에는 연꽃모늬가 조각되어 있다. 보문리 사지 서쪽에는 보물 123호 보문리 당간지주가 있고, 북쪽으로 62m 지점에는 보문리 연화문 당간지주, 보물 9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석조(보물64호) 를 비롯하여 석등의 지붕돌 및 장대석 등 석조물이 남아 있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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