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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인의 예술과 풍류

younghwan 2012. 6. 2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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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는 남북조시대를 통일한 수나라를 이어 618년 이연이 건국하여 907년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중국대륙을 통치한 왕조이다. 한나라와 함께 중국 역사상 이민족인이 아닌 한족 왕조로서 가장 번성했던 왕조이기도 하다. 당나라는 남북조 혼란기를 통일한 왕조로서 중국 한족 고유의 문화도 발전했지만, 이민족과의 적극적인 교류로 국제적인 성격을 가진 대표적인 왕조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제도, 문물, 사회체제 등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는 유교문화가 사회의 주류을 이루었던 송나라를 비롯하여 후대의 중국 왕조와는 달리 국제적이며 개방적인 성격을 많이 갖고 있었던 왕조로 남북조대에 처음 전래된 불교를 비롯하여 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대이다. 이 시대 당나라인들은 실크로드를 비롯한 국제인 교역을 통해 경제력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놀이문화와 예술이 발달하였다. 당삼채와 도자기, 금은제 그릇 등 화려한 사치품들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음악과 놀이에 있어서도 후대에 비해서 화려하고 국제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예술과 풍류
삶을 즐겼던 당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예술과 놀이는 매우 다양했습니다. 음악과 무용 등은 물론이거니와 놀이 문화는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바둑, 투호, 쌍륙 등 놀이 종류도 적지 않았습니다. 바둑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아스타나 지역의 무덤 벽화 등에서 바둑을 즐기는 장면이 확인됩니다. 장회태자 무덤의 묘도 서쪽 벽에는 말을 타고 막대로 공을 쳐서 점수를 내는 폴로 경기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폴로 경기는 격구, 타구, 격국 등으로 불렸던 운동입니다. 벽화를 보면 이 경기를 문관들과 여성들까지도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는 도용, 중국 1급 문물, 섬서성 정인태묘 출토, 당 664년경. 당나라 시대 궁정악단을 묘사한 도자로 만든 인형으로 서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악기들을 사용하고 있다.

소규모의 궁정악무단을 묘사한 것이다. 전통적인 한족의 악무이지만 악기로 볼 때 서북지방 소수민족 음악의 특색도 눈에 띤다. 7명가운데 6명은 머리를 양쪽으로 묶어 올렸고 나머지 1명은 하나로 틀어 올렸다. 얼굴에는 지분을 발랐으며 표정은 온화하고 부드럽다. 2명은 춤을 추는 사람이고 5명은 악사인데 손에 서로 다른 악기를 들고 반주하고 있다. <출처:경주박물관>


비파를 연주하는 채색 여인상, 서안시 한삼채 출토, 당 8세기. 머리를 높게 올려 묶고 둥근 깃에 넓은 소매의 옷을 입었으며 품에 비파를 안고 있다. 당대의 악무활동은 이미 각계각층에 퍼져 있었다. 궁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기념일이나 주연이 있을 때 악무공연이 빠지지 않았다. <출처:경주박물관>


소를 부는 기마 인물상, 섬서성 소릉 출토, 당 639년경

당태종의 능인 소릉에서 나온 이 상은 머리에 풍모를 쓰고 소매가 넓은 붉은색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있다. 두 손으로 팬플룻과 비슷한 악기인 배소를 쥐고 부는 자세이다. 배소는 중국 고대의 관악기로 주나라 때 이미 모습을 갖추었고 한대에 유행하였으나 당나라 궁중아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출처:경주박물관>


채색무관용, 출토지 미상, 당 8세기. 통일신라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비슷한 형태인 무인상을 볼 수 있는데, 통일신라에 비해서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머리에 관을 쓰고 소매통이 넓은 붉은 색 상의에 양당을 입었다.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모습이 위엄있어 보인다. <구당서> <여복지>에 복식의 색에 대해 '삼품 이상은 자색, 사품은 짙은 붉은색, 오품은 옅은 붉은색, 육품은 짙은 녹색, 칠품은 옅은 녹색, 팔품은 짙은 청색, 구품은 옅은 청색을 입고 평민은 황색을 입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붉은 색을 띠는 도용의 복식으로 볼 때 품계가 높은 관리를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경주박물관>


채색무사상, 섬서성 장무현 출토, 당 8세기. 당나라 무사의 복장을 잘 보여주고 있는 토용이다.

머리에 투구를 쓰고 명광개 갑옷을 입었다. 양쪽 어깨에는 파박을 걸쳤으며 앞쪽 옷자락이 신발 부분까지 늘어져 있다. 전형적인 당나라 무사의 복장이다. 중국 고대의 군복 스타일은 진한 시기에 이미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룬 상태였고, 남북조시기에 장기간의 전쟁을 거친 후 당대에 들어서 더욱 발전하였다. 당나라 때 갑옷은 종류와 재료도 다양했으며 명광개는 특히 보호 효과가 좋아 많이 사용되었다. <출처:경주박물관>


바둑알, 서안시 출토. 바둑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공자 이전부터 바둑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바둑은 그 이후에도 많이 즐겼던 오락이지만 특히 당나라때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바둑을 사용했으며, 상당히 즐겼던 오락이라고 한다.


말재갈(출토지 미상), 금도금된 S자 모양의 말재갈(왼쪽)이다. 말재갈 중에서도 좌우의 봉상 재갈멈추개 부분에 해당된다. 재갈쇠나 고삐이음쇠와 연결되는 고리부분이 마련되어 있다.


용무늬 마구장식(섬서성 출토). 용무늬 마구장식(오른쪽)은 윗부분이 둥근 판에 S자 형의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나는 용 두마리를 좌우대칭을 장식하였다. 용의 주변에는 물고기알무늬를 채워 넣었다. 또 다른 금도판에 표현되 용 두마리는 앞발을 머리 위로 치켜 든 역동적인 자세를 하고 있다. 용의 주변에는 상서로운 구름무늬가 가득하다.


금동장식, 섬서성 영태공주묘 출토, 706년 이전. 가죽이나 비단으로 된 허리띠에 끼워 사용했던 것이다. 장신구를 보면 허리띠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으며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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