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시대에 접어들 무렵에 독일의 루터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프로테스탄트라 불리는 신교도와 로마카톨릭이 유럽전역이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 큰 갈등과 대립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초기 종교개혁운동은 독일을 중심으로 크게 일어났으며, 칼비과 츠빙글리로 대표되는 스위스는 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네바가 칼빈의 종교개혁의 중심지라면, 취리히는 츠빙글리와 불링거로 대표되는 종교개혁 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취리히 호수 북안 리마트 강변에 세워준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양식의 교회인 그로스뮌스터(Grossmunster)는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츠빙글리가 16세기에 설교하던 대성당이었다. 이 교회는 취리히에 있는 중요한 4개의 교회 중 하나로 가장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이 교회는 1220년경에 사를마뉴대제가 세운 성당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지금은 개신교 교회로서 외부의 장식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로스뮌스터에는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2개의 첨탑이 있는데 취리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교회는 중세시대를 끝낸 종교개혁의 발상지라 할 수 있다.
취리히호수 북안 리마트강변에 세워진 그로스민스터(Grossmunster). 취리히에서 가장 큰 대성당이었으며, 종교개혁가 츠빙글리가 설교하던 곳으로 지금은 개신교 교회로 바뀌었다.
취리히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두개의 첨탑
그로스뮌스터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3~4층 규모의 건물이다. 개신교회로 사용해서 그런지 외부에 장식이 많지는 않다.
그로스뮌스터 출입문
성당 출입문 앞에서 올려다 본 첨탑
출입문의 청동 부조상
그로스뮌스터 전면부에는 츠빙글리 함께 스위스의 취리히 지역의 종교개혁을 이끈 불링거(Heinrich Bullinger)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츠빙글리의 신학을 받아 들여 개신교 목사가 되었으며, 츠빙글리 사후에 취리히에서 목사가 되었다. 영국 헨리8세 등 유럽의 군주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개신교 전판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부조상
측면에서 본 그로스뮌스터. 이탈리아 카톨릭대성당 들에 비해서는 건물의 규모가 크지는 않은 편이다.
교회 창문
교회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글로스뮌스터 내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로 돔과 창문이 없어 내부는 어두운 편이다.
글로스뮌스터 주변 주택들
주택가 작은 광장의 공동 수도
주택가 골목길
민스트강을 건너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취리히를 대표하는 3개의 교회가 모여 있다.
글로스뮌스터 앞에는 물의 교회라는 뜻을 가진 Wasserkirche(Water Church)가 있다. 1250년에 세워진 이 교회는 원레 리마트강에 있던 작은 섬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로스민스터와 리마트강변
* 자료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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