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중요한 교통로인 임진강 나루터 뒷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인 화석정이다. 지금은 북녁땅으로 오고가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북쪽지방, 중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중요한 나루터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로 조선중기 대학자인 율곡선생이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이 정자는 율곡선생의 5대조인 이명신 건립한 정자라고 하며, 율곡선생의 명성과 함께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곳이다.
원래 정자는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현종때인 1673년에 복원하였다고 하며,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버린것을 1966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정자에 올라서면 임진강 중하류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며, 멀리 판문점이 있는 넓은 평야가 서쪽편으로, 골짜기를 이루면서 흘러내려오는 동쪽편 파평면 일대가 보인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규모가 있는 정자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원래 형태와 같이 복원하였다고 하는데, 율곡선생이 조선시대에 존경을 받던 대학자여서 그런지 궁궐건물에서만 쓰는 겹처마에 단청을 사용하고 있다.
화석정,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가에 세워져 있는 정자로 조선 중기 대학자 율곡 이이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원래 고려 말의 문신인 야은 길재의 유지가 있던 곳에 세종 25년(1443)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이 정자를 건립하였는데, 성종 9년(1478)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이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80여년간 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후손들이 복원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버리고 말았다.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출처:파주시청>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언덕위에 세워진 정자인 화석정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약간 넓은 규모의 정자로 임진강을 건너는 임진나루터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진강을 건너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렀던 명소라 할 수 있다.
화석정 현판.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글씨로 보인다.
넓은 대청마루에서 임진강 나루터를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으로 보인다.
화석정 내부 천정
화석정 너머로 보이는 임진강 풍경
화석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임진강 하류방향. 서울과 개성을 연결해주던 임진나루터를 오가는 사람들이 내려다 보인다.
임진강 너머 옛 장단군 지역. 동쪽으로는 산악지대가, 서쪽으로는 개성까지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화석정에서 내려다 보인는 임진강 상류방향.
화석정
화석중 주위로 이곳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는 고목이 우뚝 서 있다.
화석정이 있는 언덕은 임진강변을 따라서 연결되는 능선 위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임진강이, 남쪽으로는 파주 율곡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울창한 고목 사이에 세워진 화석정
화석정 아래로 지나가는 국도
화석정 들어오는 길
화석정 남쪽 율곡리 마을
화석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율곡 이이 선생을 모시는 서원인 자운서원과 율곡 선생 일가의 묘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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