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은 인천사 남구 문학동에 위치한 해발 312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인천항 주변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문학산의 이런 지형적인 잇점으로 정상부에서는 남쪽으로는 안면도와 시화호 바깥쪽 바다가, 서쪽으로는 인천항을 지나 강화해협으로 연결되는 해로가, 동쪽으로는 시흥, 북쪽으로는 부평을 지나 김포공항 주변의 한강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국방상 요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문학산 북쪽편 문학경기장 부근은 백제 시조 온조왕의 형이자, 고구려 동명왕의 둘째아들인 비류가 이끄는 세력이 정착한 미추홀이 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한.중.일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곳으로 백제 세력이 이곳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해상무역에 관여했던 세력이 정착해 있던 지역으로 보인다. 주변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을 비롯하여 신석기시대 유물인 돌도끼.돌화살 등이 출토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이곳이 바닷가이고 땅이 습하여 살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주변에 김포평야를 비롯하여 넓은 농토가 많았던 것으로 볼 때 실제로는 이곳이 한.중.일 연안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위치였기때문에 초기 백제세력이 주변의 공격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성백제 이후에도 고구려, 신라, 통일신라,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지역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로 인천도호부 관아가 있었던 곳이다. 인천이라는 지명도 이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문학산성은 문학산 정상부를 석축으로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원래 백제가 쌓은 토성이 있던 곳에 고구려 또는 삼국시대말 신라가 석축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남아 있는 석축의 형태로 볼 때 삼국시대 신라가 쌓은 석축과 비슷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석축은 아래쪽에는 무겁고 긴돌을, 위쪽으로는 작고 가벼운 돌을 촘촘히 쌓고 있다. 문학산성 서쪽편의 옛 인천의 뱃나루인 한나루가 있던 연경산 사이에는 사모지고개가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가 백제와 중국간의 육상교통로를 차단했들때 중국으로 떠나는 백제의 사신들이 배를 타기 위해 넘었던 고개라고 한다. 아마도 광개토대왕이 한강하구 교동도와 강화도를 장악했을 때의 일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 이곳도 고구려군이 장악하게되어 한성백제는 부득히 공주로 수도를 옮길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학산의 이름과 역사
고을 관아인 문학도호부청사의 남쪽에 있다하여 남산, 위에서 볼 때 봉우리와 능선의 모양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양'같다고 학산, 산성이 있는 산이라 성산으로 불리다가 18세기 이후, 향교와 도호부가 있는 학모양의 산이라 하여 문학산이란 이름으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 문학산 주변지역은 인천이 역사에 처음 나온 곳이고 조선시대까지 인천의 중심지였다. 고구려 동명왕의 둘째 아들이고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형 되는 비류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미추홀'이란 이름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출처:인천시청>
문학산은 인천시 남쪽에 학이 날개를 뻗은것처럼 길게 퍼져 있는 산으로 정상을 오를 수 있는 길은 여러곳 있지만 그 중 문학산 정상 남쪽에 조성한 장미공원에서 출발해 보았다. 이 공원은 인천 연수동에 조성된 주택가 뒷편에 위치한 작은 도심공원이다.
장미공원은 최근에 조성된 공원으로 큰 나무는 많지 않고 장미를 비롯하여 많은 꽃들을 심어놓고 있는 도심공원이다.
공원에서 올려다 보이는 문학산 정상.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가파른 절벽이며, 옆쪽 능선을 따라서 올라갈 수 있다.
운학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문학산 등산로를 오르는 중간에 내려다 보이는 문한산 남쪽편 연구수와 송도신도시.
문학산성, 인천시 남구 문학동
문학산성의 축조형식은 봉우리를 둘러쌓아 성을 축조하는 테뫼식으로 되어 있다. 성은 내.왜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둘레는 총 577m로 현존하는 부분은 399m이고 면적은 20,000㎡이다. 전 구간을 일정한 크기로 자른 돌로 다듬지 않고 쌓았으며, 아래는 무겁고 긴 돌을, 위로 갈수록 작고 가벼운 돌을 뒤로 물려가며 쌓은 전통방식을 사용하였다. 문학산성은 처음에는 흙으로 쌓아 올린 성이었지만 삼국시대 말이나 통일신라시대에 돌로 다시 쌓아 올린 성일 가능성이 높다. 성을 쌓은 시기를 삼국시대 말이나 통일 신라 시대로 보는 것은 이곳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파사형을 이룬 바닥 부분, 심석이라 하는 긴 석재를 사이사이 넣은 뒤 막돌을 물린 축성 기법 때문이다. <출처:인천시청>
문학산 정상부 부근에 최근에 복원해 놓은 성벽을 볼 수 있다. 문학산성은 원래 백제가 토성을 쌓았던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이후로 고구려와 신라가 석축성 형태로 정상부 주위로 산성을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현재 남아 있는 산성의 석축은 고구려가 쌓은 것을 삼국시대말 신라가 크게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산성을 쌓은 석축의 형태가 다른 지역에서 신라가 쌓은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복원한 성벽 아래쪽에는 오래된 석축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문학산성은 임진왜란때도 인천지역민들이 농성을 하며 싸웠던 곳이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산성은 상당히 강력한 요새로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공략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왔던 것으로 보인다.
석축이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형태로 볼 때 석축이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축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문학산 남쪽편 인천 연수구 지역과 최근에 갯벌을 매립하여 조성한 송도신도시. 멀리 시화호 부근에 위치한 작은 섬이었던 오이도와 안면도, 영흥도 등이 보인다. 이 산성이 인천 앞바다를 장악하는데 얼마나 중요했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문학산성 주변으로 나무데크로 산책로를 조성하여 쉽게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산책로에서 일부 복원된 성벽의 석축을 볼 수 있다. 석축 아래로 상당히 경사진 지형을 이루고 있어 이 산성을 공략하기는 쉽지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능선을 따라 성벽 아래로 이어지는 산책로.
산책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문학산 남쪽 소래포구 바깥쪽에 있는 남동공단과 시화공단 지역. 두 공단 사이에 있는 수로 안쪽에 소래포구가 위치하고 있다.
문학산 정상부 동쪽편에 있는 전망이 좋은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
이 곳이 현재는 문학산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으로 전망대처럼 꾸며놓고 있다.
문학산 동쪽편 인천 앞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과 영동도와 인천을 연결해 주는 연육교인 인천대교가 보인다. 인천대교 북쪽편에 위치한 한나루가 원래 서해안 연안 항로의 중요한 나루터로 고대 이래로 한.중.일 무역의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학산 남쪽편은 인천에서도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중산층 주택지역인 연수구와 대형공단인 남동공단, 갯벌을 매립하여 조성한 송도신도시 등이 들어서 있다.
동쪽으로는 멀리 소래포구와 주변에 형성된 아파트단지, 시흥시와 안산시까지 보인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서 문학산성이 인천 앞바다 연안항로를 장악하는 중요한 군사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능선너머로 북쪽편으로 보이는 인천시가지. 구도심의 중심인 수봉산을 비롯하여 그 너머로 영종대교 부근 청라지구의 고층아파트까지 보인다.
문학산 정상 아래에 위치한 장미공원
옛날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문학산 정상부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다.
동쪽편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동쪽편 능선을 따라서 걸어가면 또다른 봉우리를 만난다.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문학산 남쪽편 지역
문학산 정상에서 서쪽편 사모지고개로 내려가는 등산로
등산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인천대교.
멀리 사모지고개와 문학산 서쪽편 연경산이 보인다.
사모지 고개 근처 등산로
세번 이름을 부르고 이별하던 가슴 아픈 삼호현
문학동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문학산과 연경산 사이에 있는 고갯길을 삼호현. 삼해주현. 사모현이라 한다. 발음에 따라 사모지 고개. 사모재 고개 등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은 부평의 별리현(비류고개)를 거쳐 이 고개를 넘어 능허대로 갔다. 배웅하러 왔던 가족들은 별리현에서 이별을 했고, 사신들도 삼호현에 오르면 그때까지 별리현에 서 있던 가족들에게 큰 소리로 이별 인사를 세 번 하고 이 고개를 넘어갔다하여 고개를 삼호현이라 불렀다. 고개 위에 있는 큰 바위를 삼해주바위. 중바위 등으로 부른다. <출처:인천시청>
사모지고개, 4세기경 전성기를 이룬 백제의 근초고왕은 영토전쟁 중에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죽이는 바람에 고구려와 원수지간이 된다. 따라서 중국과 교역 길이 막히게 되어 바닷길로 중국으로 가곤 했는데, 이 고개는 한나루(능허대)로 가는 주요 교통로였다. 세번 부르며 마지막으로 작별한다 하여 '삼호현'이라 부르다가 사모지고개로 바뀌었다고 한다. <출처:인천시청>
사모지고개 아래로는 인천도심과 연수구 및 송도신도시를 연결해주는 문학터널이 지나가고 있다.
문학산 선쪽편 연경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연경산 정상부 부근에 세워진 정자. 연경산 서쪽편에는 한나루(능허대)가 있는데, 지금과는 달리 고대 이래로 서해안 연안항로에서 중요한 나루터로 문학산과 함께 인천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던 곳이다. 서해안 지역은 갯벌이 넓어서 배가 정박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으며, 문학산 서쪽편이 하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지점으로 배가 정박하기에 좋은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연경산 정상부의 표지석
문학터널 부근에서 보이는 연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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