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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박물관

[청주박물관] 백제, 중원을 선점하다.

younghwan 2013. 1. 2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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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 중류의 청주지역과 남한강 중류지역의 충주지역을 포함한 충북지역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큰강과 내륙교통로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서 고대 이래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한.중.일 해상교역로가 중요시 되었던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변방지역으로 천안부근에 있었던 목지국의 영향하에 있었은 작은 성읍국가들로 주요 교통로로 들판에 자리잡고 있다. 마한의 주도국이라 할 수 있었던 목지국이 낙랑과의 투쟁으로 그 세력이 약해지면서 한강하류에 자리잡았던 백제가 마한의 주도 세력이 되면서 마한 전체에 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백제가 한강유역에 확고한 세력을 갖추었던 4세기 충북지역은 백제의 세력권에 있었지만, 5세기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남한강 유역은 당대 최대의 격전장이 되었고, 백제는 점차 이지역에서 고구려, 신라에 밀려나게 되었다.

 원래 마한은 기마병을 전쟁에 사용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실제로 충북지역에서는 백제가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보했던 4세기에 기병용 마구인 재갈, 발걸이 등이 출토되고 있다. 백제는 마한의 작은 세력이었지만, 그 기원은 토착세력이라기보다는 북방 고구려의 일파가 남하한 세력으로 강력한 철기제작기술과 기마병 운용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서남지역에 해당하는 마한지역을 복속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중원을 선점하다.
한강유역에서 성장한 백제는 3세기 중엽 이후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의 충주방면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한편, 차령산맥을 넘어 진천.청주.청원 방면으로도 세력을 키워나갔다. 4세기 무렵, 충북 지역 대부분이 백제의 세력권 안에 들게 되었으며, 백제가 한반도 중서부를 아우르는 고대국가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거점지역이 되었다. 이후 백제는 남쪽으로 계속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5세기에는 남하하는 고구려 세력에 밀려 그 영역이 축소되었으며, 6세기에는 고구려 세력에 대한 공동 방어를 명분으로 소백산맥을 넘은 신라와 청주.청원 일대를 중심으로 각축을 벌였으나 점차 신라 세력에 밀려 나갔다. <출처: 청주박물관>


기승용 마구,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마한 사람들은 '우마를 탈 줄 모르고 오로지 장례 때에만 사용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한이 자리하였던 충북지역에서는 발걸이나 재갈과 같은 기승용 마구가 4세기에 이르러서 출현하여 위 기록과 합치한다. 이는 당시 마한 사람들이 소나 말을 탈 것이 아니라, 오로지 희생용이나 짐을 실어나르는데 사용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충북지역에서 4세기 이후 기승용 마구의 출토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금공품의 출현과 함꼐 백제 세력의 확산과 관련하여 주목된다. <출처: 청주박물관>


쇠화살촉 다발, 쇠투겁창, 쇠화살촉(Iron Arrowheads), 백제는 마한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많은 대외전쟁을 치뤘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특정 무기의 기능분화 등 무기체계도 변화하였다. 이 시기 보다 예리하고 관통력을 높인 화살촉이 등장하는 등 화살촉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출처: 청주박물관>

고리자루칼, 청주 신봉동, 칼 손잡이 끝이 둥근 고리가 달린 것으로 고리안에는 용, 봉황 등이 장식되기도 한다.


쇠칼, 백제, 청주 신봉동


덩이쇠(백제, 충주 탄금대토성), 백제 덩이쇠, 덩이쇠는 철제품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교역시 화폐로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주로 4~6세기 가야와 신라 고분에서 많이 별견된다.

철기가공,
철광석을 질 좋은 쇠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광석 속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쇠만을 뽑아낼 수 있는 고온의 화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제련로에 숯과 잘게 부순 철광석을 넣고 1,000℃이상의 높은 열을 가하면 질 좋은 쇠와 찌꺼기인 쇠똥(Slag)이 따로 배출된다. 제련도 안에서 뽑아낸 쇠는 선철이다. 이선철을 다시 용해로에 넣어서 쇳물로 녹인 다음에 거푸집에 넣어서 원하는 형태의 철기를 만드는데, 주로 농기구나 솥 등 대량 생산에 이용되었다. 한편으로 반쯤만 녹였다가 망치로 두들기고 담금질해서 철기를 만들기도 하는데, 주로 견고성이 요구되은 무기 제작에 사용되었다.  단조시 사용되는 도구로는 집게, 망치, 끌, 정, 받침모루, 숫돌 등이 있다. <출처: 청주박물관>


도가니(Mellting Pot, 백제, 진천 석장리), 송풍관(Tuyere, 백제, 진천 석장리), 철광석을 녹이기 위해서는 노 안에 오랜 시간 동안 강한 바람을 넣어 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바람을 넣는 풀무와 노를 연결하는 도구가 송풍관이다.


돌절구공이(백제, 진천 구산리), 철광석

 

숫돌(Wheststone, 백제, 청주 명암동, 청주 봉명동), 도끼거푸집 속심(Cores, 백제, 진천 석장리)


쇠도끼(Axes, 백제, 충북지역), 쇠솥(Iron Cauldron, 백제, 청주 신봉동)


1) 쇠낫, 2) 쇠못, 3), 소형철기, 4)쇠끌, 5)凹모양철기, 청주 신봉리, 6)살포, 청원 주성리, 7) 살포,청원 주성리, 8) 쇠도끼, 청주 신봉동, 9)쇠손칼, 진천 석장리, 10)쇠손칼, 청주 신봉동, 11) 쇠손칼,청주 가경동, 12)쇠손칼, 청주 신봉동



은비녀(Ornamental hair-pin, 백제, 청주 신봉동), 구슬


금귀걸이(Gold Earring, 백제, 청원 주성리, 청원 신봉동)


굽다리접시(Mounted Dishes), 세발토기(Tripod Potteries), 청주 석소동


독(Jaro), 백제, 청주 석소동, 독 안에서 세발토기 6점, 굽다리접시 9점 등 5세기대로 추정되는 백제토기가 출토되었다. 청주 신봉동구분군과 더불어 한성 백제기 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그릇받침(Pottery Stand, 백제, 청주 봉평동), 구멍단지(Jar with hole, 백제, 청주 서촌동), 절구(Mortar, 백제, 청주 가경동)


목단지(Long necked jar, 백제, 진천 석장리), 입큰단지(Jar, 백제, 청원 주성리), 이형병(Unusual Shaped Bottle, 백제, 청원 주성리)

청주 신봉동유적 출토 토기, 백제
신봉동무덤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범마한계의 토기와 한성백제의 영향을 받은 백제토기가 주를 이룬다. 더하여 영산강 지역이나 가야.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기종이 섞여 있고, 드물게 신라 기종의 영향을 받은 것도 확인된다. <출처: 청주박물관>


1)굽다리단지, 2)단지, 3) 단지, 4) 바리, 5) 굽다리접시, 6) 세발토기, 7)뚜껑접시, 8) 보시기,


9) 단지, 10) 손잡이단지, 11) 단지, 12)병, 13) 새발무늬 항아리, 14) 단지, 15) 단지

손잡이잔(Cup with handle), 손잡이잔은 전국적으로 출토되고 있지만, 청주 신봉동을 중심으로 충북지역에서 출토되는 대형의 손잡이잔은 그 용도를 곡물 등을 재는 도량형 용기로 보기도 한다. 청주 신봉동 출토손잡이잔은 그 용량이 2,400~2,600㎖인 것과 3,400~3,600㎖의 두 종류가 있다. 중국 양나라의 1말(2,456~2,612㎖) 용량과 비교하면, 이들은 1말과 1말5되의 부피 측정 용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손잡이잔 외면의 가로방향의 돌대나 횡침선은 용량을 표시하기 위한 눈금으로 보기도 한다. <출처: 청주박물관>


1~7) 청주 신봉동, 8) 청원 송대리, 9) 청주 가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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