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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물관] 비상, 비석에 새긴불상

younghwan 2013. 1. 3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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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은 비석에 불상을 조각한 비석형 불상이다. 중국에서는 6세기 북위 석굴사원에 그 형태가 처음 나타났으며, 서위시대에는 석상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사면불 셩식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비상은 수.당시대까지 크게 유행하였지만 8세기 이후 불교조각이 쇠퇴함에 따라 그 이후에는 많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존하는 것은 연기지방에서 발견 7점뿐으로 '계유'가 새겨진 아마타불(국보106호), '계유'가 새겨진 삼존불(국보108호) 등이 있으며, 연기군 비암사, 연화사, 공주시 정안면과 조치원 서광암에서 발견되었다. 현존하는 7점이 비상이 발견된 현 세종시(연기, 조치원) 지역은 백제의 2번째 수도였던 공주,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와 가까운 지역으로 백제가 멸망한 이후 당과의 교류를 통해 동시 중국에서 유행했단 서방정토신앙과 함께 아미타불상이나 미륵보살상을 새긴 비상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석에 새긴불상,
통일신라 직후, 옛 백제 땅인 충청도 연기 지역에 '불비상'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불상이 나타났다. 형태는 비석인데 그 안에 부처의 모습을 조각하고 기원의 내용을 담았다. 7세기 무렵 연기 지역은 백제 멸망 후 혼란한 상황 속에 당과의 왕래 등을 통하여 당의 문화를 수용하였다. 전쟁과 멸망을 겪은 이 지역의 사람들은 중국에서 유행하던 서방정토신앙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불비상의 명문을 통해 통일된 신라 땅에 살던 백제 유민들이 그들의 조상들과 국왕을 위해 아미타불과 미륵보살상 등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청주박물관>


'계유'가 새겨진 아미타불, 국보 106호, 통일신라, 연기 비암사. 비석모양의 사면에 불상의 모습을 새겼다. 앞면에는 부처와 보살, 신장상 등 9존불을 배치하였다. 앞면과 뒷면에 걸쳐 이 상에 대한 조상기가 적혀져 있는데 계유년에 국왕 및 대신, 칠세부모를 위하여 절을 짓고 아미타상과 관음.대세지보살상을 비롯한 불비상을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출처:청주박물관>


옆면에 새겨진 불상들


미륵보살반가사유 비상, 보물 368호, 통일신라(7세기), 연기 비암사. 앞면에는 반가사유상을 새기고, 배면에는 보탑을 측면과 하단에는 보살상과 공양자상을 배치하였다. 정면에 새겨진 도상은 56억 7천만년 이후에 강림하는 미륵보살로, 통일된 신라 땅에 사는 백제 유민들의 내세를 기원하며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청주박물관>


'기축'이 새겨진 아마타불과 보살, 보물 367호, 통일신라(689년), 연기 비암사, 광배형 불상 앞면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9존불을 배치하였다. 뒷면에 새겨진 명문에는 백제의 유민들이 칠세부모를 위해 불비상을 조성하였음을 적고 있다. 조성기에 보이는 '아마타불'명과 서방정토도상은 연기지역 불상군이 중국 수.당대 아미타신앙의 영향으로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청주박물관>


부처와 보살, 백제, 제천 읍리, 하나의 돌에 불상과 보살상을 함께 새긴 입상이다. 상의 뒷면에는 백제의 산수문전을 연상시키는 산형문이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다.


'건흥5년'이 새겨진 광배, 고구려, 충주 노은면


금동여래입상, 통일신라, 청주


불상대좌, 통일신라, 제천 송계리. 불상을 받치고 있었던 받침 대좌이다. 받침대 위에 촉을 꽂았던 구멍이 세군데가 있어 불입상을 꽂았음을 알 수 있다. 대좌의 구성은 앙린받침의 상대, 복련 연꽃받침의 중대, 안상이 부조되어 있는 하대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성과 비율, 곡선이 조화를 이룬다. <출처:청주박물관>


부처얼굴, 청주


승형 얼굴, 고려, 청주 운천동, 깍은 머리, 감은 두 눈, 입을 꼭 다문 모습이 승려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코 부분이 깨져 있다. 청주 운천동 무심천가에서 다량의 금속유물과 함께 출토되었다.


석조불좌신(왼쪽, 고려, 청주 수동 와우산), 청주의 진산인 와우산 대한불교수도원 근처에서 발견된 불신 네구 중 하나이다. 불두는 없어졌고 불신만 남아있다. 양 어깨를 덮은 불의 옷자락이 유려하다. 석조보살좌상(오른쪽, 고려, 영동 누교리), 얼굴앞면이 완전히 박락되었다. 얼굴 옆면을 통해 관을 쓴 흔적과 보발이 귀를 감은 모습이 남아 있다. 가슴에는 목걸이 장식을 하고 두 손은 모아서 연꽃봉우리를 받들고 있다. 무른 돌인 납석으로 조각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감과 석탑중수기, 조선, 괴산 봉학사터. 1967년 괴산 봉학사터에 무너진 5층 석탑을 조사하였는데, 2층 지붕돌의 원형 사리공에서 붓글씨로 쓰여진 석탑의 중수기록과 청동불감, 그리고 향목이 수습되었다. 불감 안에는 감실을 마련하고 부처와 호위하는 신장상을 모셨다.


작은탑, 고려, 청원 백현리, 탑신재 모양의 부재가 5개가 있는 소탑이다. 세우면 하나의 탑이 완성된다. 고려시대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작은 소탑들이 다수 조성되었다. 탑속의 탑으로, 탑에 넣어지거나 건물에 봉안되기도 하였다.


경상, 고려, 진천 용정리, 경상 앞면에는 관음보살이 오른쪽 무릎을 세운 윤왕자의 자세로 염주를 들고 있고, 왼손 옆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있어 수월관음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뒷면에는 연꽃 위에 있는 9층 보탑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금동보살입상(통일신라, 청주 운천동), 금동여래입상(통일신라, 영동 금정리), 금동여래입상(통일신라, 괴산 사담리), 금동관음보살좌상(제천 시곡리)


금동광배조각, 고려, 청주 사뇌사, 금동판에 불꽃 무늬 등을 투조하여 만든 대형 광배조각이다. 화불을 연치한 것으로 보이는 화염판과 주변에 불꽃무늬를 배치한 모양도 보인다. 사뇌사 발견 유물 가운데 불상과 관련된 유물은 이 금동광배조각이 유일한다, 크리로 보아 불상의 규모는 무척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석가여래좌상, 고려, 11세기, 청원 영하리. 이 돌부처는 불상을 비롯한 인왕상.신장상 등 많은 불교 조각품이 있었던 충북 청원군 흥복사지의 남쪽에 있는 암자에서 옮겨 온 것이다. 불상의 오른손은 두려움을 없애주는 시무외인을, 왼손은 중생의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원인을 하고 있다. 부처의 얼굴은 살이 올라 통통하고 입술은 작은 편이며, 곱슬머리 위에 높은 상투가 있다. 법의는 U자형으로 흘러 내려 무릎까지 덮었다. 연꽃으로 장식된 받침은 2개가 한 판을 이루는데, 한쪽 부분이 없어져 모두 복원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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