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 고서면 교산리에 위치한 창평향교는 조선시대 창평현 관아에서 운영하던 공립 중등교육기관이다. 창평향교는 조선초 정종대에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지며, 성종대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다고 하는데, 그후에도 수차례 중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증암천이 흐르는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경사지에 세워졌으며, 대성전, 내삼문, 명륜당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경사진 언덕에 세워져서 향교마당은 넓지 않은 편이지만 언덕에 세워져서 전망이 꽤 좋은 편이다.
창평현은 담양군 남쪽지역인 창평면.고서면.대덕면.남면.수북면 등을 읍치로 하던 조선시대 지방행정구역으로 일제강점기에 담양도호부와 합쳐서 담양군이 되었다. 주로 영산강 이남 창평천과 증암천 유역의 넓은 농토와 남쪽의 무등산 자락의 빼어난 경치를 함께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양반들이 선호했던 세거지가 많은 지역이다. 창평현은 인근 장성군과 함께 조선시대 양반사회가 크게 발달한 곳이다. 송강 정철, 양산보, 양자징 등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고 특히 이 지방에서 가사문학이 크게 융성했다. 창평현에는 유명한 서원은 없지만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중등교육기관인 수남학구당, 수북학구당을 비롯하여, 문중에서 설립한 글방인 죽림재 등이 있다. 창평향교는 공립교육기관으로 이들 사설교육기관들과 경쟁해서 그런지 다른 향교에 비해서 건물의 규모가 큰 편이다.
창평향교, 전남 담양군 고서면 교산리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방에 설립한 국가교육기관이다. 창평향교는 조선 정종 원년(1399)에 창건하였다고 읍지에 기록되어 있으나 분명치 않다. 그후 성종10년(1479)에 현재의 위치로 옮긴 후 숙종 15년(1689)에 현령 박세웅에 의해 대성전과 명륜당이 대대적으로 수리되었다.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서재, 내.외삼문, 전사청, 고직사 등이 있다. <출처:담양군청>
창평향교 전경.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세워져 크고 웅장해 보인다. 조선초에 처음 세워졌다고 하면, 성종대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평향교 입구 홍살문
향교 들어가는 길
향교 입구에 심어져 있는 노거수
창평향교는 명륜당이 앞에, 대성전이 뒷편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강당 앞 마당은 넓지 않으며, 양쪽에 기숙사 건물인 동.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향교 출입문인 외삼문은 지금은 없고, 강당 건물인 명륜당 옆에 작은 출입문이 있다. 강당건물인 명륜당은 앞면 4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문을 열면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휴식공간인 누각의 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창평향교 기숙사 건물. 앞면 4칸의 건물로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오른편 1칸에 마루를 설치해 놓고 있다.
창평향교 대성전
향교 앞에 세워진 비석들
창평향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 향교 앞으로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지천인 증암천이 흐른다.
향교 앞을 흐르는 증암천
창평향교 전경
창평읍지에 남아 있는 옛 창평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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