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향교는 담양도호부에서 운영하던 공립 중등교육기관이다. 담양군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나무숲 죽녹원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지만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 향교가 세워진 것은 조선이 건국되던 시기인 1938년(태조7)이라고 한다. 현재의 향교 건물들은 대체로 숙종대에 다시 지어진것을 여러차례 고쳐지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죽녹원 대나무숲과 함께 담양도호부 관아와 영산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담양향교는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제법 큰 고을이었던 담양도호부의 위상에 걸맞게 대성전에 동.서무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강당 건물도 꽤 큰 편이며, 누마루처럼 문을 열면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의 건물들은 향교의 교육기능이 약해진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들로 제사위주의 건물배치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담양군은 조선시대 담양도호부와 창평현이 일제강점기 합쳐진 곳으로 조선시대 담양군은 영산강 본류 주변과 그 북쪽의 지역을 읍치로 하였다. 담양군은 북쪽과 동쪽으로는 노령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는 무등산이 있어, 영산강이 흐르는 남서쪽 방향으로 틔여 있으며, 창평현과 함께 꽤 넓은 농토를 보유하고 있다. 실제 담양은 고을 규모가 크지 않지만 조선 태조대 교종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승려로 국사를 지낸 조구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고 태종대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호부가 되었다고 한다. 농토가 넓으면서도 주변에 빼어난 산들이 많아 호남지역에서도 양반들이 선호했던 세거지였다
담양향교, 전남 담양군 향교리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방에 설립하나 공립교육기관이다. 이 향교는 광방천이 내려다 보이는 산아래 위치하고 있다. 청건 연대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담양향교지에 의하면 조선 태조 7년(1398)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그후 정조18년(1794) 부사 이헌유가 다시 세웠고, 순조7년(1807)에 부사 안정헌이 고쳐지었으며, 순조때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북으로 된 장방형의 대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경사가 심한 관계로 지형으로 5단으로 정리하여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 순으로 배치하였다.
담양읍 죽녹원 서쪽편 영산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담양향교. 옛 담양도호부 소속 공립 중등교육기관으로 경사진 지형에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담양향교 외삼문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은 경사진 지형에 지어진 건물로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7칸의 큰 건물로 앞에서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쪽에서 보면 단층이다. 현재의 건물들은 향교의 교육기능이 약화된 조선후기에 지은 것으로 주로 제사준비를 하거나 회의를 할 때 사용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보인다.
강학공간으로 들어가는 길.
안쪽에서 본 담양향교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제향공간인 대성전은 강학공간보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이 위패를 모신 대성전,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작은 향교의 경우에는 위패를 모시는 동.서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담양향교는 제대로 갖추고 있는 큰 향교이다.
대성전 앞 동.서무
대성전 앞에서 내려다 본 내삼문과 담양읍
명륜당 옆 향교 관리인 살림집인 고직사 담장
향교 관리인 살림집인 고직사
외삼문 안쪽에 세워진 비석들
향교 입구에 세워진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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