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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마을은 옛 담양과 창평의 경계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뒷쪽으로는 높지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작은 하천과 비교적 풍족한 들판이 나즈막한 산이 있다. 읍치 관아가 있던 창평면 소재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들의 세거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마을에는 조선중기에 지어졌다고 하는 김선기 가옥과 선조대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상황를 기록으로 남긴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을 모신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 양반의 집터를 어떤곳에 집터를 잡는지를 잘 보여주는 담양 장산리마을 뒷편에 위치한 김선기 가옥이다. 이 가옥은 선조 36(1603)에 처음 지어졌으며, 그 이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지만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조선후기 한옥과는 약간 다른 조선중기 건물 특유의 'H'자처럼 보인 'ㄷ'자형을 하고 있다. 안채는 전체적을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양쪽 날개에 방과 부엌을 달아 내어 놓은 형태이다. 사랑채는 조선후기 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된 건물로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누마루처럼 지었다. 한옥건물 중에는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점은 후대에 지어진 한옥들은 마당을 넓게 하면서 건물을 칸수가 많은데 비해서 마당이 넓지 않으면서도 짜임새있게 건물배치를 하고, 마을에서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웅장해 보인다.
담양 김선기 가옥,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이 가옥은 마을의 맨 위체 위치한 전통가옥으로 안채는 현 소유자의 16대조인 김송명에 의해 건립되어지고, 14대조인 만덕 김대기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그 뒤 순조25년(1825) 5대조 김현대가 고쳐지었으며, 1990년 보수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옥의 구성을 보면 안채와 사랑채, 사당 등 3동이 있다. 안채는 좌로부터 부엌, 골방, 큰방, 대청, 작은방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당호를 망인당이라 하고 있다. <출처:담양군청>
담양군 장산리마을 뒷편 높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김선기 가옥. 조선시대 전형적인 양반 가옥의 입지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 경사진 지형에 목재기둥을 세워서 누마루나 정자처럼 지은 건물이다. 앞면 4칸, 옆면 2칸의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마루에 앉으면 마을앞을 오가는 사람들과 주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랑채 마루에는 '망인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마루 가운데 문을을 달아서 안밖을 구분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대산재'라는 현판이 걸린 온돌방. 작은 여닫이문을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경사진 지형에 둥근 목재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아 2층 누각처럼 보인다. 앞쪽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고, 목재를 깍아 만든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사랑채 뒷편 사당
사랑채 앞 마당
안채를 출입하는 문간채. 앞면 5칸의 비교적 큰 건물로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ㄷ'자형을 하고 있는데, 건물 구조 자체가 조선후기 한옥에서는 잘 보기 힘들고, 조선중기 이전 한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다. 후대에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지만, 원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장산리마을 뒷쪽으로 크지는 않지만 울창한 산이 있고, 앞쪽으로 들판이 있고, 작은 개천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수리시설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산과 가까운 높은 고지대에 위치한 논이 가뭄에 피해가 적기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높은 논이었고, 대부분 양반들의 소유였다고 한다. 이 마을은 전형적인 양반들이 선호했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한옥이 '김선기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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