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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서울 풍납동토성(사적11호, 일명 '풍납토성'), 성벽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남쪽과 동쪽 성벽

younghwan 2013. 6. 2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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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납토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일대 한강변에 남아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토성이다. 백제가 한강일대에 도읍을 정한 이래 수백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을 이루고 있는 도성 성격의 토성으로 인근에 있는 몽촌토성과 함께 초기 백제 토성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풍납토성은 둘레가 4km에 이르는 성곽으로 조선시대 읍성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지 않은 편이다. 고조선과 삼한시대 한반도 서남해안에 촌락을 이루면서 형성되었던 읍성국가들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편으로 강을 끼고 있어 물류가 편리하고 적으로부터 방어에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풍납토성 주변에 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원래는 토성바깥쪽으로 물이 흐르면서 자연적인 해자구실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풍납토성은 1925년 홍수 한강변쪽 일부자 잘려나갔지만 약 2.7km 정도의 성곽이 남아 있다.

 이 성은 전체적을 반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백제의 수도였던 하남위례성이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도성이었다는 유물이나 증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풍납토성은 백제의 축성방법을 잘 보여주는 판축식 토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벽은 전구간이 자연지형을 활용하지 않고 평지에 인공적으로 토축을 쌓고 있다. 성벽은 높이가 최대 11m에 이르며, 폭은 43m로 상당히 큰 규모의 토축성이었기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그 원형이 많이 남아 있다. 성벽 바깥쪽으로는 경사가 있는 편이며, 안쪽으로 완만한 편이다. 풍납토성은 흙을 다져서 쌓는 토축식 성벽으로 그 축성법이 상당히 정교하다고 한다. 백제는 이곳에는 장수왕에 의해 함락되었던 475년까지 5백여년간 번성했으며, 광개토왕대 이후 한강 맞은편 아차산성의 고구려군에 의해 심한 압박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광주 풍납리토성, 사적 11호, 백제초기, 서울 송파구 풍납동
이 성은 흙을 다져 쌓은 성으로 원래 경기도 광주에 속하였으나, 서울시에 편입된 후에는 흔히 풍납토성으로 불린다. 1964년 시굴조사에서 백제 초기에 축조된 성으로 밝혀졌으며, 1997년 이후 성 내부와 성벽에 대한 발굴조사가 여러 차례 실시되어 자세한 내용이 알려졌다. 풍납토성은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그 둘레는 원래 3.5km 이상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925년 홍수로 인해 서벽이 유실되어 지금은 2.2km 가량이 남아 있다. 성벽은 모래와 점토를 교대로 다져 쌓는 판축기법으로 축조되었는데, 기저부의 폭은 43m, 높이는 11m가 넘는 거대한 규모다. 성 내부에서 주거지와 의례용 건물터 등이 많이 발굴되었으며, 많은 양의 백제 토기와 철기가 출토되었다. 그 밖에도 기와와 와당, 문자가 새겨진 토기, 중국제 도자기 등이 출토되어 왕성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풍납토성은 3세기 무렵 축조되어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함락될 때까지 백제의 도성이었다. 발굴된 유적과 유물은 고대국가로 성장한 백제의 다양한 모습,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기술수준을 잘 보여준다. <출처:서울시청>


1925년 대홍수로 한강변 서쪽 성벽의 상당부분이 유실되었는데 그 중 남아 있는 성벽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풍납토성은 한성 백제시기에 쌓은 토성으로 조선시대까지 그 형태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70~80년대 개발로 아파트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풍납토성 서쪽 성벽 안쪽


토성 성벽이 시작하는 지점.


백제가 쌓은 토성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 한강변 서쪽편 성벽. 자연지형같은 언덕을 이루고 있지만 인위적을 흙을 쌓고 다져서 만든 토성이다.


남쪽편으로 돌아가는 모서리


풍납토성 서쪽 성벽 바깥쪽


서쪽 성벽 안쪽. 바깥쪽에 비해서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올림픽대교 입구를 바라보고 있는 남쪽편 성벽


남쪽편 성벽 안쪽


흙으로 쌓은 토성이지만 2천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남쪽 성벽에서 동쪽성벽으로 돌아가는 모서리. 대체로 방어에 용이하도록 모서리 성벽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풍남토성 남쪽성벽. 길이 250m 정도로 북쪽 성벽과 함께 짧은 편이다.


풍납토성에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동쪽성벽은 전체 1.4km의 성벽 중 주택이 들어서면서 훼선된 250m 정도와 도로가 개설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지금도 토성 일부를 절개하여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발굴작업 현장


풍납토성 동쪽 성벽(올림픽대교 부근)


풍납토성 동벽 중 토성내 아파트단지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있는 부분


지금은 성문처럼 보이지만 마을로 들어가는 출입통로를 만들면서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풍납토성 남쪽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


마을 입구의 성벽


성벽 안쪽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다.


풍납토성내 아파트단지


북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성벽


토성 안쪽


토성내 남쪽편 마을 입구에서 북쪽편 입구까지의 토성이 그 규모가 웅장하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다.


늪지에 흙을 다져서 쌓는 판축공법을 이용해서 쌓은 성벽. 높이가 10m이르며, 그 폭 또한 상당히 넓은 토성으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토목공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풍납토성 동쪽편 성벽


북쪽편 마을 입구에도 도로개설을 위해 성벽이 끊어진 부분이 보인다.


토성 안쪽에서 본 동쪽 성벽




토성내 마을. 남쪽편과는 달리 단독주택이 많은 것으로 볼 때 토성내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곳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천호대교 입구까지의 성벽은 주택이 들어서면서 많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는 토성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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