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기동 북한산 비봉과 사모바위 아래에 위치한 승가사는 통일신라시대인 756년에 창건한 사찰로 당나라 고종대에 활동한 서역출신 승려 승가대사를 기리기 위해 이름 지어진 사찰이다. 승가사는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불전을 비롯한 전각들 중에 오래된 것은 없지만 사찰 뒷편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시대 승려의 조삭상인 승가대사 석좌상과 사모바위 아래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 남아 있다. 사찰 뒷편 석굴 안에 모셔진 보물 1000호로 지정된 승가대사 석좌상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승려의 모습을 불상처럼 조각상으로 만들 것이다. 조각상은 고려초기 현종대인 102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상제는 길고, 하체는 넓게 표현하고 있어 당시의 불상 조각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승가대사는 서역출신의 승려로 당나라 고종대에 낙양에서 활동하였다고 하는데, 당시 당나라 국왕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승려로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지금도 조각상 바로 옆에 샘물이 흐르고 있으며, 이곳을 찾는 신도들이 영험한 효험을 바라면서 샘물을 받고 있다.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 보물 1000호, 1024년(고려 현종 15),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 상은 삼각산의 석굴안에 모셔져 있는 승가대사의 석상이다. 석상의 광배 뒷면에 1024년(고려 현종15)에 조성되었다는 명문이 있다. 승가대사는 원래 서역의 승려로 7세기에 당나라로 와서 활동하였는데 수행이 뛰어나고 교리에 밝으며 송주에 능하여 많은 신도들이 그를 존승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죽은 뒤에 십일면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숭배되었는데, 비를 내리고 홍수를 다스리며 병을 낫게 하는 영험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통일신라말에 승가대사의 신앙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나라에서 봄, 가을로 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상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몸에는 가사를 입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왼손은 가사 속에 넣었고 오른손은 검지를 펴고 있는데, 이것은 변설을 상징하는 손짓이다. 광배에는 연화문, 당초문, 보상화문, 화염문 등 화려하고 섬세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다. 이 승가대사상은 고려중기에 유행한 승가대사 신앙을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예로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출처:서울시청>
북한산 승가사 경내 뒷편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사찰뒷편에는 승가대사석조좌상이 모셔진 약사전과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 있다.
큰 바위에 석굴사원 형태로 지어전 불전에 승가대사 석상이 모셔져 있다.
보물 1000호로 지정된 승가대사 석상. 고려초인 현종대에 조성된 석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문 승려의 형상을 불상처럼 조각상으로 조성한 것이다. 승가대사는 십일면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졌으며 당시 많은 사람의 숭상을 받았다고 한다. 불상 왼쪽편 뒷쪽으로 샘이 있으며, 이곳을 찾는 신도들이 샘물을 받고 있다.
석굴사원 형태로 모셔진 이곳은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인 약사전이다.
약사전 앞에 있는 석탑 부재
비석형태로 바위에 새겨진 약사전 중건기념비
석굴 앞쪽에 비석이 놓였있던 받침돌을 볼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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