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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상주 침천정,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

younghwan 2013. 10. 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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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시 북천 임란전적지에 옮겨져 있는 조선시대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인 침천정이다. 앞면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규모의 정자 건물이다. 관아에서 운영하는 정자는 지방 수령이 중앙에서 방문한 관리나 중요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연회를 베풀거나 전쟁 등의 위급한 상황시 관내 주요 인사들이 회의를 하기 위한 장소이다.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인 정자인 영남루, 죽서루, 촉석루 등이 관아에서 운영하는 정자인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반면에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침천정은 경치좋은 곳에 개인이 세웠던 정자와 비슷한 규모를 하고 있다. 이는 상주목 관아의 중심이 되는 객사건물이 상산관이 그 규모가 크고 웅장했기때문에 손님접대나 회의에는 객사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침천정은 상주목사 개인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지역 유력인사들이 사용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상주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될 정도로 큰 규모의 고을로 고려시대 전국에 지방조직인 12목에 속하며 조선초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낙동강 중.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내륙수운의 중심이며,  영남과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문경새재, 추풍령, 충북 보은군과 연결되는 교통로 등이 상주를 지나가고 있다. 이런 지리적 장점때문에 삼국시대 신라가 중부지역으로 진출하는 거점이 되었던 고장이다.


침천정
이 정자는 조선시대 1577년(선조10)에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이라 이름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정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4)에 상주목사 한술이 중건하고 1614년(광해군6) 상주목사 강복성이 천향정으로 개칭하였으며 1693년(숙종19)에 목사 이항이 연지를 홍백연당으로 고치고 이향정이라고 하였다. 그 후 일제시대인 1914년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상주읍성이 헐릴 때 지방의 뜻있는 유지 여러 명이 정자를 사서 현 위치로 옮기고 군수 심환진이 침천정이란 이름으로 고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상주시청>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인 침천정. 밀양 영남루, 삼척 죽서루 등과는 달리 그 규모가 크지 않고 지방 권세가들이 경치좋은 곳에 세운 정자들과 비슷한 규모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면 1칸은 온돌방, 2칸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침천정 현판. 겹처마 지붕을 하고 있으며 단청을 입혀 놓고 있는데 구한말 이후 건물에 규제가 느슨해졌을때 단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 (?)


건물 기능에 글자를 적어 놓은 주련


앞면 1칸은 온돌이 설치되어 있어 숙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넓은 대청마루. 상주목사가 주최하는 공식적인 연회를 하기에는 좁은편으로 개인적으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천정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며, 그 아래에 글이 적혀 있는 현판들이 걸러 있다.


침전정 천정 아래에 유명인사를 적은 글들이 걸려 있다.


뒷편에서 본 침천정


상주 침천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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