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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한국의 도교문화] 도교(道敎)의 신들

younghwan 2015. 1. 2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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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교(道敎)는 중국의 토착신앙으로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하나인 노자와 장자의 도가(道家)와 신선사상 등의 영향을 받아 후한대에 처음 생겨났다. 도교가 도가사상이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후한대에 도교가 처음 생겨난 이래로 일반민중이나 지식인 층에도 널리 전파되면서 체계적인 교리를 필요성이 제기되어 도가(道家)라 일컫는 노장사상, 전통적인 신선사상, 유교의 주역, 서역에서 전래된 불교의 의례적인 측면 등이 반영되어 남북조시대에 교리(敎理)와 조직을 갖추면서 종교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도교는 하늘과 땅을 숭배한 토착신앙에 출발한 종교로 많은 신들을 존재하며 시대에 따라 생기거나 없어지기도 한다. 초기 도교에서는 노자(老子)를 신격화하여 태상노군이라 부르며 최고의 신으로 여겨졌다. 남북조시대 불교가 전래되면서 그 영향을 받아 도교의 신들로 체계를 갖추게 되고 원신천존(元始天尊)이 최고신으로 신봉되었으며, 이후 송대에는 옥황상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외에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숭배대상인 해와달, 별, 땅의 신, 물의 신 등이 도교의 신으로 자리잡았다.

 

도교의 중요한 요소인 신선사상 등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영향을 주었으며, 도교가 종교로서 체계화되었던 남북조시대에 고구려에 공식적으로 전래되었다. 삼국이 비슷한 시기에 도교를 받아들였지만 고구려에서 국가적차원으로 도교가 크게 성행하였으며, 신라와 백제는 노장사상과 신선사상이 받아들여졌다. 고구려의 계승한 고려에서 도교는 특히 성행하였는데 국가적으로 도교제사인 재초가 행해졌다. 유교국가를 천명한 조선에서 재초 등 국가적인 차원의 의식적인 도교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지만 개인적으로 수련하거나 도가사상을 이해려는 측면의 연구와 생활속의 민간신앙으로서 도교는 그 명맥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도교삼존상(道敎三尊像), 중국 남북조시대 북주(北周)에서 만덜들어 진 것으로 불교 삼존상의 영향을 받아 노자(태상노군)을 주존으로 양쪽에 협시보살형태의 신들이 있다.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묻다, 1700년 김진여가 그린 그림이다. 공자가 노자에게 예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는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도교 인물 모양 주전자, 국보 167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도교의식을 진행하던 도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기린모양 향로, 고려시대 도교 제사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별자리무늬 거울, 고려시대, 도교제사를 지낼때 사용했던 거울이다.

 

향을 피워 하늘에 고하다. 조선후기 공재 윤두서가 그린 그림으로 송나라 관리가 밤마다 하늘에 고하던 것을 그렸다.  

 

도교제사인 재초(齋醮)에 사용했던 제기들.

 

별자리를 새긴 석관 뚜껑, 고려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국보162호,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침입자를 막는 벽사의 의미로 왕릉에 같이 묻은 것으로 보인다.

 

 

무령왕릉 묘지석(왕비),국보163호, 공주 무령왕령에서 출토되었다. 뒷면은 525년 8월12일에 돈 1만매로 사마왕이 지신(地神)에게서 토지를 매입하였다는 내용의 매지권이다.

 

사신이 새겨진 석관, 고려

 

사람모양 목간, 하남 이성산성과 창녕 하왕산성에서 출토되었다. 하왕산성에서 출토된 목간에는 '龍王'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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