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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박물관] 낙동강유역의 선사문화, 신석기와 구석기 시대

younghwan 2012. 4. 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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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하류 지역은 해안가 삼각주 지역을 중심으로 비옥한 평야와 습지가 고루 발달되어 있는 지역으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후기 구석기시대로 몸돌석기와 좀돌날몸들.슴베찌르개 등이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밀양 고례리, 진주 집현 등을 들 수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이지역에 초보적인 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사냥과 채집, 고기잡이 등 다양한 형태의 생활을 하였다. 신석기시대의 유물들은 주로 조개껍질을 버리던 패총에서 생활용구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김해 수가리 패총, 통영의 욕지도와 연대도 등 연안지역의 섬지역, 우포늪으로 유명한 늡지대가 발달한 창녕 비봉리 등을 들 수 있다. 신석기인들은 식량을 구하기 쉬운 연안 섬지역이나 낙동강 유역의 습지가 발달된 곳에서 채집,사냥,농경을 병행하면서 생활하였다. 김해박물관에서는 경남지역에서 출토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유물들을 다양하게 발굴.전시하고 있다.

 낙동강 유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이다. 구석기인들은 편석기와 나무와 뼈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였다. 사냥과 채집을 위하여 이동하면서 생활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이 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후기 구석기 시대(B.C 35,000 ~ B.C. 10,000)에 해당하여 석영암으로 만든 몽돌석기와 종돌날몽돌, 숨베찌르게 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신석기시대(B.C. 10,000 ~ B.C.1,000)에는 새로이 토기와 간석기가 출현하고 정착생활을 시작하였다. 신석기인들은 사냥과 채집, 고기잡이를 하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농사도 지었다. 이 지역에서는 대규모 패총과 생활유적은 물론, 무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청동기시대(B.C. 1000 ~ B.C. 100)에는 사람들이 청동기와 여러가지 간석기. 민무늬토기를 사용하였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논농사를 지었으며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이 시기의 주된 무덤은 고인돌과 석관묘이다. <출처:김해박물관>

수렵생활, 돌로 사냥을 하다
인간이 두발로 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손을 사용하여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게 되었다. 도구제작은 인류가 자연을 극복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꾸려나가게 되는 첫 발걸음이었다. 인간은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과 염분을 섭취하기 위해 동물 사냥에 나서게 되었다. 돌을 깨뜨려 끝을 날카롭게 만들거나 한쪽 면에 날을 세운 석기로 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고기와 뼈를 분리하여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주된 사냥감은 사슴.노루.멧돼지 등이었다. 몸집이 작고 빠른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활과 화살이 등장하는 등 도구는 점차 발전하였다. <출처:김해박물관>


찍개(Choppong Tool, 사천 이금동), 돌날몸날(Blade Core, 밀량 고례리), 구석기시대


좀돌날몸돌(진주 집현), 구석기시대



돌날(Blade, 밀양 고례리), 글개(Scrapers), 밀개(End Scrapers, 진주 집현), 구석기시대


돼지모양토우(Wild Boar-shaped clay Figurine, 통영 욕지도), 장식옥(Ornamental Jade, 통영 연대도), 뼈치레걸이(Bone ornament, 통영 연대도), 신석기시대


맨돌화살촉, 흑요석촉(Obsidian-stone Arrowhead), 신석기시대, 통영 연대도


흑요석 원석(Obsidian), 흑요석 격지(Obsidian Flakes)

채집생활, 자연에서 먹을 거리를 모으다.
인류가 가장 손쉽게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주변에 있는 풀이나 나무줄기, 열매 등을 채집하는 것이다. 식물 채집에는 특별한 기술이나 별다른 도구가 필요 없이 맨손이나 나뭇가지 등을 사용하여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고학 조사에서 식물 채집과 관련된 증거가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다. 민족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에 거주하는 수렵.채집인의 경우 식물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70% 이상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식물 자료는 도토리, 가래와 같은 견과류가 가장 많다. <출처:김해박물관>


간돌도끼(Polished stone axe), 신석기시대, 창녕 비봉리 外


갈돌.갈판(Stone Grinding Pestle & Saddle Quern), 신석기시대, 창녕 비봉리
도토리같은 딱딱한 견과류를 가루로 만들거나 곡물의 껍질을 벗기는 데 사용한 것이다. 넓은 갈판 위에 도토리 등을 놓고 양손으로 갈돌을 밀고 당겨 사용하였다. <출처:김해박물관>


겹입술토기(Pottery with double mouth rim, 부산 금곡동), 붉은칠토기(Red-line painting pottery, 통영 연대도), 신석기시대


작은 토기(Small potteries), 신석기시대, 김해 수가리


새김무늬토기(Incised pattern pottery, 김해 수가리), 톱니입술무늬토기(Notched-rim vessel, 통영 연대도),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토기 겉면에 빗살무늬를 새겨놓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어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토기 겉면에는 뾰족한 도구로 누르거나 찍어서 손톱무늬, 톱니무늬, 문살무늬, 생선뼈무늬, 점무늬 등 여러가지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겼습니다. 빗살무늬토기는 시기에 따라 무늬모양, 무늬가 들어가는 면적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출처:김해박물관>


덧무늬 토기(Pottery with applique decoration), 신석기시대, 통영 연대도, 김해 수가리


눌러찍은 무늬토기(Impressed pattern pottery), 신석기시대, 통영 욕지도

고기잡이
신석기시대에는 본격정인 농경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냥과 고기잡이, 채집으로 주요 식량자원을 획득하였다. 특히 고기잡이에 사용된 작살, 낚시바늘, 그물추 등이 조개더미에서 많이 확인된다. 낚시바늘은 갈고리와 몸체가 하나로 된 것과 따로 만들어서 끈으로 묶어 이은 것이 있다. 그물은 한꺼번에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로 그물 자체는 부식되지만, 그물에 매단 그물추나 토기에 찍힌 그물 흔적이 확인된다. <출처:김해박물관>


조가비팔찌(Shell Bracelets),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의 팔찌는 조개나 옥을 사용하였지만, 삼국시대가 되면 금속으로 재질이 변한다. 금이나 은, 청동으로 고리를 만들고 표면에 무늬를 새긴 것이 많지만, 은사슬에 장식품을 매단 것도 있다. <출처:김해박물관>


작살(Harpoons),
돌칼(Stone Knife), 신석기시대, 통영 욕지도


낚시바늘(Fishhook, 가야, 창원 다호리),
뼈낚시바늘(Bone Fishhook, 신석기시대, 통영 연대도)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도구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출토됩니다. 낚시바늘은 결합식 낚시와 단식 낚시로 나누어집니다. 결합식낚시는 돌로 만든 축에 사슴뿔, 멧돼지이빨, 짐승 뼈 등으로 비늘을 만들어 사용합니다. 단식낚시는 뼈를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청동기시대에 청동제 낚시바늘이 출토된 예는 없으나, 낚시바늘 거푸집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청동제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철기사용이 일반화되는 삼한때에는 초대형 낚시바늘이 출토됩니다. 삼국시대에는 소형화된 낚시바늘이 전국적으로 나타납니다. <출처:김해박물관>


그물추(Fishing Net Sinker), 신석기시대, 창녕 비봉리


동물무늬토기(Animal-designed Pottery), 창녕 비봉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그림이다. 등 부분에는 뾰족한 털이, 앞부분에는 두 다리가 표현되어 있어 멧돼지 종류의 네 발 짐승으로 추정된다. <출처:김해박물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비봉리유적 나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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