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관청이 있던 지방고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남부 해안가지역이기 때문에 평지에 읍성을 쌓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는데, 동.서을 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관청 건물들이 있고 남쪽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객사를 제외한 읍성내 관청 건물들은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관청의 배치나 구성요소들을 잘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낙안읍성의 옥사는 고을내의 죄수들을 수용하였던 건물로 다른 읍성과 다른 점은 관아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읍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남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큰 길은 관아로 연결되며 동쪽편에는 비상시 읍성내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연못들이 있고, 연못안쪽에 옥사터가 있었다. 옛 옥사터에는 조선시대 지방 관아의 옥사를 복원하여 재현해 놓고 있다. 옥사가 관아 건물이 있던 곳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옥사 주변의 연못들이 죄수들의 탈주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가 있다.
낙안읍성 정문격인 남문을 들어서면 동문방향으로는 민가들이 거의 없고 크고 작은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읍성내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비상시를 대비하기 위해서 조성한 연못으로 보인다.
성벽 안쪽에 있는 연못
읍성내 물이 흐르는 하수도. 원래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연못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수도를 만들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 바깥으로 물이 빠지는 배수구. 사람이 통과할 수 없도록 작게 만들어 놓고 있다.
여러개의 연못 중에 제일 큰 연못.
연못 사이에 있는 물레방아. 원래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레방아를 설치해 놓고 있다.
물이 솟아나는 우물.
연못 안쪽에 죄수들을 가두어 두었던 옥사가 있다. 원래 옥사터였던 곳에 옥사를 재현해 놓고 있다.
옥사
우리나라의 감옥제는 멀리 부여에서부터 비롯하였으며, 그 명칭은 '뇌옥' 혹은 '영어'라 하였다. 또한 고려말에는 지방에 설치된 것을 시옥이라 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전옥서를 두었으며 광종때에는 임시로 설치하는 가옥이 있었고 신라시대에는 원형으로 된 구금시설이 있어 이를 환토라 불렀으며 현재 경주.울산.안주에 원형으로 된 옥사의 유허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옥의 구조나 시설은 세종 때에 확종되었다. 세종 8년(1426)에 구금시설의 설치도면을 만들어 수도권 밖의 모든 관사에 도면대로 옥사를 짓도록 하였지만 여러모로 시행되지 못했고, 세종 31년(1439)에 다시 옥사의 도면을 개량하였는데 하옥, 동옥, 남옥, 여옥 등을 구별하여 짓도록 하였다. 옥사시설의 시행방침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모든 옥은 평지보다 높게 짓도록 하며 하옥은 3동을 짓고, 문벽은 두꺼운 판자로 막고 옥사의 외벽에는 창을 내어 통풍을 잘 되게 하였다. 또한 남성의 구금시설 4동과 여성의 구금시설 2동을 짓되 내부에는 가볍고 무거운 죄인을 구금하는 곳을 구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실내에는 판자로 덮고 사면 처마에는 모두 차양을 달아 조인들이 더울 때에 낮에는 처마밑에 앉거나 누을 수 있도록 하게 하고 밤에는 옥안에 들어가게 하여 출입문의 자물쇠를 채우도록 되어 있었다. <출처:순천시청>
옥사는 돌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평지에 축대를 쌓아 약간 높게 마당을 조성해 놓고 있다.
옥사 주변
죄수들을 가두어 두는 옥사는 환기가 잘 되도록 지면보다 약간 높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놓고 있다. 옥사 앞쪽에는 문살과 판문으로 막아 놓고 있으며, 앞쪽에 복도를 두어 이중으로 잠금장치를 하고 있다.
옥사 출입문과 문살.
옥사 내부 문살과 문짝
옥사내부는 마루로 되어 있으며, 죄수들을 가두어 두고 있는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돌담장으로 둘러싸인 옥사.
옥사 마당에 죄인을 심문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곤장 위는 비워놓고 있는데 곤장 맞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느곳이든 관아를 상징하는 모습은 곤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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