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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_현대 건축

한옥으로 구원의 방주(方舟) 모양을 구현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younghwan 2010. 1. 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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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에는 전등사 가는 길에서 항상 보이는 온수리 성당만 있는줄 알았는데 실제로 더 유서깊은 성공회 성당은 강화읍내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성공회 강화성당은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궁궐 도편사가 이 강화성당의 건축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궁궐 건축의 모습을 느낄 수 있고 완성도가 높은 건물로 여겨집니다. 본당은 2층 건물로 당시에 지어진 덕수궁내 전각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당터와 전체적인 건물의 배치 등은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고 합니다.

강화 성공회 성당은 구원의 방주(方舟)를 형상화하기 위해서 배모양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옥으로 배의 형상을 적절하게 구현하기 위한 건물 배치와 형태가 인상적입니다.

강화읍의 중심지인 동헌이 있던 고려궁지 건너편 언덕의 강화향교 윗쪽에 자리한 성공회 강화성당입니다. 구원의 방주를 상징하려고 한옥으로 배모양을 구현한 건물입니다.
 
현판에 적힌 '천주성전(天主聖殿)'이란 글씨와 한문으로 적힌 각종 팻말이 인상적입니다.


성공회 강화성당의 출입문입니다. 1900년대 초에 궁궐을 짓던 도편수가 성당 건물을 건축했다는 것은 출입문에서 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삼문(三門)은 아니지만 외삼문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입구에 서원이나 향교의 태극문양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십자가를 그려놓고 있습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종루가 있는 내삼문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종각의 모습을 하고 있는 출입문입니다.

성공회 강화성당의 종입니다. 서양식 종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한국적인 종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보신각 종의 사례를 적용한 듯합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성공회 강화성당 건물입니다.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고 적힌 현판이 인상적입니다.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고 적힌 현판과 누각형태의 2층과 1층 출입문입니다. 한문으로 기둥에는 팻말들을 적어 놓고 있습니다.

성당의 정면 모습입니다.

측면과 사제들이 출입하는 뒷쪽 문입니다.

성당 아래쪽에서 올려다 본 성당 건물입니다.

성당 뒷쪽 사제들이 출입하는 문입니다.

성당 뒷쪽에 자리잡고 있는 한옥으로 만든 사제관입니다.

성당 동쪽편에 있는 솟을 대문으로 만든 작은 출입문입니다. 입구에 성공회 관련 인물의 추모비가 있습니다.


 강화 성공회 성당 동쪽편에 서 있는 오래된 고목입니다. 저녁 노을과 잘 어울리는 곳에 심어져 있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에서 본 북쪽편 송악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궁지와 그 주변의 풍경입니다.



본 성성당은 고요한(Charl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사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 중층 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출처: 강화군청>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 11월 15일 건립된 동서길이 10칸, 남북길이 4칸인 한식 중층건물이다. 이 성당은 서양의 바실리카식 교회건축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가구 구조는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점이 특징이다. 구조와 외관을 한국전통 건축양식에 적응시킴으로서 외래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서쪽에 출입문을 배치하여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배(船)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동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다.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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