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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강화 선원사지(仙源寺址)

younghwan 2010. 10. 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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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를 상징하는 유적지 중의 하나인 선원사지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사찰인 선원사가 있던 이 곳에는 화려한 건물이나 눈에 볼 수 있는 유적은 없지만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곳으로 대몽 항쟁 기간 동안 고려인의 신앙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송광사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던 사찰이었다고 합니다. 강화와 육지사이에 있는 염하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유적지입니다. 강화 선원사지는 전형적인 발굴 현장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으로 아직 발굴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화도에 소재한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선원사지입니다. 선원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입니다.

발굴이 가장 많이 된 것으로 보이는 선원사 입구입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주춧돌을 포함한 선원사의 흔적입니다.

축대가 복원되어 선원사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선원사지의 서쪽편입니다. 많은 전각들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원사지의 동쪽편에는 축대를 복원하지 않고 아직 발굴이 진행되는 것 처럼 보이는 언덕형태를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선원사를 출입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작은 사찰입니다.

선원사지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주변의 모습입니다.

대학 신입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유적답사를 온 모양입니다.

강화역사관에 전시된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는 모습'입니다.

합천 해인사에서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 경판입니다.

안내표지판

선원사지 주변 위성 사진(출처:야후지도)

강화 선원사지는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학술조사단이 강화도 일원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이곳에서 몇 개의 주춧돌을 비롯하여 보상화무늬 전돌, 범자(梵字) 새긴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들을 확인하고, 선원면(仙源面) 도감마을, 도감산에 있는 사지이므로 학술적·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어 지역의 연원을 기초하여 1977년에 사적 제259호 강화선원사지(江華仙源寺址)로 지정되었다. 동 유적에 대하여 1996년부터 4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동국대학교박물관) 결과 건물터, 축대, 배수시설 유구와 연화문 기와, 금동탄생불, 청동나한상, 탄화된 금니사경, 묵서사경 등이 출토되어 절터와 관련된 유적으로 규명되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에서 전하는 고려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선원사(禪源寺)터로 볼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가 확인되지 않아 이에 대하여는 장기적인 조사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로 동 유적에 대한 4차에 걸친 발굴조사(’96년∼’01년) 결과 독립된 건물지 21개소와 부속 행랑지 7개소가 확인되었으며, 건물들은 북고남저의 지형 위에 동서로 긴 4개의 층단을 두고 빼곡히 들어서 있다. 중앙부 대형건물지(기단길이 38m)에는 삼존불을 지탱한 것으로 보이는 불단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5개의 건물지에서 온돌시설이, 그리고 배수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나 탑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은 건물지가 집중돼 있는 중심구역으로 남북길이 180m, 동서너비 180m정도이다. 출토유물은 자기류, 기와류, 소형 청동탄생불, 금동나한상, 탄화된 사경편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자기류(총 2,300여점)의 대부분은 12세기 후반∼1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자편이 대부분(94%)이고, 기와류는 평기와가 가장 많고, 막새, 취두, 잡상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중 막새류는 연화문, 범자문, 귀목문이 대부분이고 ‘박씨(朴氏)·유씨(劉氏)’명(銘) 막새도 있고, 취두편은 모두 21개가 조사되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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