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고려 조선 유적_왕릉

고양 행주산성(사적56호), 임진왜란 행주대첩 현장이자 서울 해맞이 장소

younghwan 2014. 2. 22. 21:20
반응형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중에 있었던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의 현장으로 우리에게 아주 가까히 있는 유적지이다. 행주산성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석축으로 성벽을 쌓고 사방에 문루가 있는 전형적인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고, 한강과 창릉천으로 둘러쌓여 있는 덕양산의 지형적 장점을 이용하여 산을 둘러서 토성을 쌓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삼국시대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백제가 쌓은 토성들은 조선시대에 석축성으로 바뀌었는데 행주산성은 서울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조선시대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곳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후손들이 찾는 역사유적지이다. 행주산성은 일산으로 가는 자유로에 자리잡고 있어 눈에 익은 명소이기는 하지만 자주 방문하게 되는 곳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경치도 좋고 임진왜란 당시를 한번 되새겨보기에 좋은 장소이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때 권율장군 휘하 조선군이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로 진주대첩, 한산대첩과 함께 임지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은 평상시 유지되어 오던 성곽이나 요새가 아니었고, 명나라의 참전으로 평양을 수복한 후 남쪽의 관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한강은 건넌 뒤 잠시 머물고 있던 지역이었다. 당시 왜군은 벽제관에서 명군을 크게 격파한 후 기세가 회복된 직후였으며,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관군이 머물던 행주산성에서 7차례 대규모로 공격을 하였으나 실패하고 패퇴하였다고 한다. 행주산성의 승리요인으로는 권율을 비롯한 지휘부를 비롯하여 조선군이 결사적으로 싸웠고, 행주산성이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지형적으로 유리했던 점도 있었지만, 조선의 활과 총통를 비롯하여 신기전 등 무기가 일본군에 비해서 우세했으며, 조총은 초기에는 위협적이었으나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서 강.약점이 드러나 큰 위력을 보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백병전에서 일본도와 오랜 내전을 통해 쌓은 경험은 조선군을 압도했다고 한다.

고양 행주산성, 사적 56호
행주산성은 덕양산(해발 124.9m)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전체둘레는 약 1km이며, 현재는 약 415m 정도가 복원되어 있다. 산성의 남쪽은 한강에 맞닿아 있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돌아 한강으로 유입되며, 산성의 동남쪽과 남쪽일대는 경사가 매우 급하여 자연적인 요새지로서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과, 북쪽으로 전개된 작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이중구조이다. 이 산성은 행주대첩(1593)의 역사적 전승지이며,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지로 꼽히고 있다. 산성의 정상에는 선조 35년(1602)에 세운 대첩비와 1963년 문화재 정화사업으로 세운 15.2 m의 행주대첩비가 위치해 있다. <출처:고양시청>



행주산성 출입문인 대첩문.


행주산성의 이름을 널리 알린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장군의 동상이 산성 입구에 우뚝 서 있다.
 

뒷편에는 행주대첩 현장의 모습들을 청동부조로 장식해 놓고 있다.


행주산성 오르는 길


충장사 입구 홍살문


행주산성에는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가 있다. 원래 권률장군을 모셨던 사당은 행주나루터 부근 행중서원에 있었으나 구한말 서월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충장사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전통적인 형태의 사당은 아니고 70년대 성역화 사업때 만든 콘크리트리로 지은 사당이다. 그래서 전통전인 사당의 모습은 아니고 전형적인 70년대 풍의 건물 모습을 하고 있으며, 현판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행주대첩 기념관 부근


행주대첩 기념관


기념관에서 본 행주산성 정상


행주산성 정상으로 오르는 길


충장사와 행주대첩기념관 있는 언덕


행주산성 아래 한강과 방화대교


행주산성 정상으로 오르는 길


덕양정 아래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진강정. 최근 행주나루터 부근 고양시정연수원에서 이곳까지 둘레길이 개설되어 걸어다니기 좋다.


진강정에서 덕양정으로 오르는 길.


행주산성에서 가장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한 덕양정. 발 아래로 한강이 흐르고 한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인 방화대교와 강너머 강서구 마곡지구가 훤히 보이는 곳이다.


2009년 봄


덕양정에서 내려다 본 방화대교와 한강

행주대첩비,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에서 권율(1537~1599) 도원수가 왜병을 격퇴한 승전을 기념하여 선조 35년(1602) 장군의 부하들이 세운 비이다. 비문은 1593년 행주대첩의 경과와 권율장군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이다. 이 비의 재질은 흑색이 가비된 화강암이며, 비문은 최립이 짓고 비의 명칭은 김상용, 글씨는 한석봉이 썼으며, 끝의 추기는 이항복이 지었고 김현성이 썼다. 이 비는 비각을 세워 보존하였으나, 오랜 세월 풍화작용과 마모로 비 몸이 갈라지고 떨어져 같은 재질로 보수된 상태이며, 헌종 11년(1845) 같은 내용의 비를 기공사에 세워 놓았다.
  <출처:고양시청>


행주산성 정상에 세워진 행주대첩비


행주대첩비, 선조 35년(1602) 동지중추부사 최립이 글을 짓고 가평군수 한호가 썼으며, 김상용이 두전을 썼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닳아서 없어지고 비석만 남아 있다.


행주대첩비각에 걸려 있는 글


행주산성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는 승전기념 조형물입니다. 멀리서도 보이는 행주산성의 이정표 역할을 해 주고 있다.


2009년 봄


행주산성 정상부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행주산성은 서울에서 동쪽편에 위치한 아차산과 함께 새해 해맞이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그만큼 행주산성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이 막힘이 없이 훤하게 뚫려있고 발 아래는 한강이 흐르고 있다. 행주산성에서 서울쪽을 보면 한강 양쪽으로는 자유로와 올림픽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고, 방화대교를 시작으로 해서 여러 한강다리들이 눈에 들어 온다.


행주산성 정상에 위치한 충의정


한강과 더불어 행주산성의 천연 해자역할을 해주고 있는 고양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창릉천.


행주산성의 성벽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돌로 쌓은 석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흙으로 쌓아 올린 토성과 경사진 언덕을 이용한 산성이다. 조선시대에 많이 사용하거나 중요시 했던 곳은 전형적인 삼국시대 산성이다.


2009년 봄


행주산성의 옛날 입구인 성문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지역이자, 행주대첩 당시 접전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이곳에서 승병들이 백병전을 벌여 왜군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행주산성 토성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