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도심공원으로 조성한 효창공원에는 해방 이후 귀국한 백범 김구선생이 항일투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해방되던 시기에 돌아가신 임시정부 주요 인사였던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의 묘역을 마련하면서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백범 자신도 1949년 흉탄에 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묻혔다. 이곳은 원래 정조의 맏아들로 어린나이에 죽은 문효세자의 능역인 효창원이었던 것으로 구한말까지 상거래이 중심지였던 마포나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넓은 능역이 남아 있었던 곳이다.
효창공원을 들어서면 정면에 이곳에 처음 묘역을 조성한 삼의사 묘역이 있고, 동쪽편 언덕에는 임정요인의 묘역이, 서쪽편 언덕에는 마지막으로 조성한 백범 묘역과 백범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백범 묘역 아래에는 1970년대 조성한 7분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의열사가 있다. 백범기념관과 함께 도심 가까운 곳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삼의사의 묘
이곳은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를 모신 묘역이다. 1946년 김구 선생이 주선으로 봉환하고 안장되었다. 삼의사의 묘 왼편에는 1910년 3월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1879~1910)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려고 마련한 빈 무덤이 있다. 이봉창(1901~1932)의사는 서울 출신으로 용산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본 국왕 폭살 계획을 세워, 1932년1월8일 동경 사카라다문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져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했으나, 일본인으로 하여금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였다. 거사현장에서 체포되어 그해 10월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윤봉길(1908~1932) 의사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덕산 보통학교를 자퇴하고 농촌 계몽운동에 전력하였다. 1930년 망명길에 올라 만주를 거쳐 상하이에 도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독립운동 대열에 나서게 되었다. 1932년 4월 29일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겸 상하이사변 전승 축하 기념식에 참가한 시라카와 대장 이하 일본요인들을 폭살, 중상시키고 거사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가나자와형무소에서 12월 19일 순국하였다. 백정기(1896~1934)의사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3.1운동 후 노동자운동과 일본상품 배격운동을 지도하였고, 일본 시설물 파괴 공작과 요인사살, 친일파 숙청 등을 목표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상하이 훙커우 육삼정 연회에 참가한 일본 주중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잡혀 일본 나가사키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6월5일 지병으로 순국하였다. <출처: 백범기념관>
용산 효창공원 가운데 언덕에 위치한 삼의사 묘역이다. 삼의사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를 일컫는데,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후 귀국하면서 조성한 묘역이다.
삼의사 묘역, 왼편에 안중근 의사를 모시기 위한 가묘가 마련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으면 모시기 위해 마련한 곳으로 1946년에 이곳에 묘역을 조서할 때 마련해 둔 곳으로 유해를 찾지 못해 지금도 비어 있다.
삼의사 묘역을 오르는 길
김구선생 묘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삼의사 묘역
삼의사 묘역 동쪽편 언덕에 백범 김구선생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 묘역
임정요인의 묘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한 임정주석 이동녕,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리석 선생의 묘역이다. 이동녕(1869~1940)선생은 충남 천안 출신으로 독립협회 활동과 언론.계몽운동, YMCA 운동 및 을사늑약 반대운동 등을 전개하였고, 1906년 북간도로 망명하여 서전의숙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의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1907년 귀국하여 신민회 조직에 참여하는 한편 언론.교육활동을 통해 항일구국운동에 나섰다. 1910년 서간도에 망명하여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3.1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에 참여하였고, 한국독립당.한국국민당을 조직하는 한편 임정의 의정원 의장, 국무위원, 주석 등을 역임하였다. 1940년 중국 치장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1948년 김구 선생이 주선하여 사회장으로 봉환하였다. 조성환(1874~1948)선생은 서울 출신으로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군부를 개혁하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1912년 일본의 총리대신 가쓰라의 만주시찰 때에 암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 옥고를 치렀다.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군무차장에 임명되었으며, 만주 북로군정서에서 군무부장을 역임하면서 청산리전투 등 무장독립 투쟁을 전개하였다. 1945년 환국하여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8년 서거하였다. 차리석(1881~1945)선생은 평북 선천 출신으로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신민회에 가입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3.1운동 때 만세시위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창간에 참여하고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활약하였다. 그후 임지의정원 의원, 국무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임정이 존폐위기에 처했을 때 임정을 고수하여 1935년 국무위원회를 조직하고 비서장에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또한 한국독립당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흥사단원동임시위원부 단무를 총괄하였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여 환국을 준비하던 중, 중국 충칭에서 세상을 떠났고, 1948년 김구 선생이 주선하여 사회장으로 봉환되었다. <출처:백범기념관>
효창공원 입구 동쪽편 언덕에 마련된 임정요인 묘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한 임정주석 이동녕,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리석 선생의 묘역이다. 해방이후 귀국한 백범 김구의 주선으로 임정요인들에 대한 사회장을 실시하고 이곳에 묘역을 마련하였다.
임정요인 묘역
의열사
이곳은 애국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과 임정 주석 김구 선생,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선생이 삼의사 등 7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60주년인 1979년 4월13일 합동추모제전을 봉행하고, 해마다 연례적으로 제전을 봉행해 오고 있다. <출처: 백범기념관>
효창공원 서쪽편 백범 김구선생 묘역 아래에는 이곳에 모셔진 백범 김구선생을 비롯하여 삼의사, 임정요인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의열사가 마련되어 있다.
의열사 사당. 임시정부 수립 60주년인 1979년부터 이곳에서 제전을 봉행하고 있다.
효창공원 백범 기념관 앞에 세워진 이봉창의사 동사, 1995년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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