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 김구선생 묘역이다. 김구선생은 일제강점기에 공원이 되었던 효창공원에 해방을 맞이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소를 이장하였고, 본인도 1949년 흉탄에 쓰러진 후 삼의사와 함께 이곳에 묻혔다. 이런 연유로 효창공원은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효창경기장이 들어서고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에 묻히지 못하게 됨으로써 도심공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면에서 약간 아쉬운점이 있기는 하지만, 국립현충원과 달리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심공원에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백범 선생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002년에 백범 김구선생의 생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된 백범기념관이 묘역부근에 세워졌다.
효창공원은 원래 정조의 맏아들로 어린나이에 요절한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이 있었던 곳으로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넓은 능역을 구한말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공원이 조성되었는데 원래면적의 절반정도로 축소되었다. 효창운동장, 숙명여대 등이 능역이었던 곳에 들어섰다고 한다.
백범 김구선생 묘역, 서울 용산구 효창동
이곳은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의 묘역이다.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일찍이 한학을 배웠고, 조선왕조의 부패에 항거하여 동학에 참가하였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 장교 스치다를 의살하고 이 나라에 충절이 있음을 만천하에 알렸으며, 이로 인해 인천감옥에 투옥되었다. 을사조약이 늑약되자 그 철폐를 위해 투쟁하였고, 신민회에 가입하여 국권 수호에 앞장섰으며, 민중을 계몽하기 위해 교육, 강연 등의 애국계몽운동에 투신하였으나, 일제는 안악사건을 꾸며 다시 투옥, 서대문감옥과 인천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과 내무총장, 국무령 등 주요 요직을 거쳐 주석에 이르렀으며, 한인애국단을 조직,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통해 임정의 위상을 크게 높였으나,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충칭으로 옮기면서 27년간 조국광복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김구 선생에 힘입은 바 크다. 한편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을 조직하고 좌우합작운동에 노력하였으며,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여 조국광복을 위한 무장투쟁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45년 해방을 맞아 환국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도하면서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미.소 등 강대국의 한국 분할정책에 맞섰다. 남과 북이 각각 단독정부의 수립을 위하여 1948년 총선거를 실시하려고 하자, 이것이 곧 민족분열과 동족상잔을 가져 올 것임을 예견하고, 이를 막아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세우고자 남북협상에 앞장섰다. 남북에서 분단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민족통일, 자주독립 운동을 전개하던 중, 1949년 6월26일 경교장에서 흉한에 의해 쓰러지니, 7월5일 민족의 존경과 애도를 담아 국민장으로 이곳에 봉안하였다. 1924년 중국에서 먼저 돌아가신 부인 최준례 여사와 1999년 4월 12일 합장하였다. <출처: 백범기념관>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선생 묘역. 백범 김구선생은 해방 이후 효창공원에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역을 조성하였는데, 1949년 본인도 흉탄에 쓰러지면서 이곳에 안장되었다.
백범 김구선생 묘역 입구.
묘역을 오르는 계단.
백범 김구선생 묘역, 1924년 중국에서 먼저 돌아가신 부인 최준례 여사와 1999년 4월 12일 합장하였다.
묘역에 세워진 비석
묘역에서 내려다 보이는 효창공원
효창공원 입구에는 백범 김구선생이 조성한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역이 있다.
백범기념관,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은 그 생애를 오직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통일에 바치신 우리 겨레의 영원한 스승이시고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이시다. 백범기념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은 문화를 가진 자주.민주.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생을 분투하신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선생의 삶과 사상을 널리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2000년 6월 기공하여 2002년 10월 22일 개관하였다. 근.현대사 전문 역사박물관인 백범기념관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한 백범 김구선생의 삶과 사상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와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고 조국의 자주.민주.평화 통일을 지향하며 민족의 아름다운 문화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온겨레의 문화적 삶의 공간이다. 백범기념관은 전시관 1층과 2층에 백범 김구선생의 일대기와 한국 근.현대사 관련 각종 기록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전문자료실과 각종 교육 프로그램 및 문화행사 등에 활용될 수 있는 교육장과 대회의실 그리고 컨벤션홀 등 다양한 교육.문화 공간을 갖추고 있다. <출처: 백범기념관>
백범 김구선생 묘역 아래에는 2002년 개관한 백범기념관이 있다. 선생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백범전시관 입구
전시관을 들어서면 태극기를 배경으로 백범 선생이 앉아 있는 석상을 볼 수 있다.
전시실 내부
백범기념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효창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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