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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보물 358호), 석탑 형태로 만든 승려의 사리탑

younghwan 2012. 7. 2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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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보물 358호로 지정된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이다. 이 사리탑은 고려말 승려인 보제존자의 사리탑으로 현재도 보제존자의 사리탑은 여주 신륵사 뒷동산에 석종형태로 만들어져 있지만, 특히하게 그의 제자들이 석탑형태로 사리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원주 영전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말에 통일신라시대 양식이 두개의 탑 형식으로 세운 것도 특이하며, 아마도 우리나라 남아 있는 제대로 된 삼층석탑 중에서 가장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기단과 탑신의 구성요소들의 비율의 통일신라시대 양식과 비슷해서 얼핏 보기에도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옹선사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중국 원나라 법원에서 인도의 승려 지공의 지도를 받았으며,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머물면서 불법을 전했다고 한다. 회암사 주지를 지냈으며, 고려말에서 조선초 불교를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승려로 전국의 많은 사찰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의 사리탑은 양주 회암사를 비롯하여, 여주 신륵사, 원주 영전사에 세워졌으며, 여주 신륵사에는 그를 모신 조사당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영전사지 보제존자 사리탑. 크기는 아담하지만 통일신라 석탑에서 볼 수있는 기단과 탑신 구성요소간의 비율이 뛰어서 그냥 보기에도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기단부 몸돌에는 장식이나 기록은 없고 기둥 모양만 조각해 놓고 있다. 석탑에 있어서 아름다움은 장식보다는 구성요소간의 비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석탑이다.


이 석탑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도 특색있는 장식은 없지만 전체적이 비율이 잘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석탑의 상륜부에는 꽃봉우리 모양의 장식이 있다.


동쪽편 탑


서쪽편 탑


두개의 탑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2009년 여름


영전사지 출토 사리구(Sarira Reliquary), 고려 1388년, 원주시 영전사지. 은제접시(Dish), 은제도금 육각사리기(Sarira Reliquary), 은제 원통형 사리기(Sarira Reliquary), 수정구슬, 동전, 향목, 청동합(Covered case), 청자발, 석제 사리호, 청동 사리호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형적인 사리구의 형태를 하고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보제존자 탑지석에는 "도인 각수가 왕사 보제존자의 사리 1매를 탑에 모셨고, 비구니 묘관도 보제존자 사리 1매를 동쪽 탑에 모셨다. 대공덕주 봉익대부 서윤현의 법명은 각희이며, 처는 단산군부인 장씨이니 법명은 묘연이다."라늠 명문이 적혀 있다.


나옹선사가 주지로 있던 양주 회암사지에 남아 있는 사리탑



여주 신륵사에 남아 있는 나옹선사의 석종형 사리탑


나옹선사 영정을 모신 여주 신륵사 조사당

영전사 보제존사 사리탑, 보물 358호, 강원 원주 영전사 터
보제존자 나옹(1320~1376)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고려 우왕 14년(1388)에 세운 승탑이다. 보통 승탑이 팔각집 모양이거나 종모양을 띠는 것에 비해 이 승탑은 특이하게 불탑과 같이 네모난 형태의 두 탑으로 이루어져 매우 이채롭다. 나옹의 사리를 모신 승탑은 이 탑 외에도 그가 입적한 여주 신륵사와 그가 주지로 있던 양주 회암사 터에도 남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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