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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서산 해미읍성] 호서좌영 객사

younghwan 2010. 9. 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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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해미읍성은 충남 서해안 지역의 왜구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새운 읍성으로, 조선 전기까지는 충청병마도절제사가 머무르던 곳이며 왜구의 침입이 없어진 조선 후기에는 해미현 관아가 옮겨왔다고 한다. 해미읍성 관아 건물로는 객사, 동헌, 내아를 볼 수 있는데 원래부터 있었던 건물은 아니고, 건물터에 현재의 건물을 복원했다고 한다. 읍성내에 있는 작은 동산 아래에 관아 건물들이 모여 있다.


해미읍성 북쪽편 동산 아래에 객사를 비롯한 관아 건물들이 모여있다.

해미읍성 객사. 복원된 건물로 문화재적인 가치는 없으나, 옛날 관청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미읍성 객사는 앞면이 5칸이나 되는 건물로, 도절제사가 머물렀던 관청 건물답게 다른 지역의 객사보다 크다.

객사 양쪽 날개부분에는 대청마루를 마련하여 연회등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감영 입구에서 본 객사 건물

감영 내아에서 본 객사의 뒷부분

해미읍성 서문에서 본 관청 건물들.



이 성은 고려 말부터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왜구가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하여 조선 태종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이 곳에 옮기고자 축성(築城)되었으며, 효종3년(1652)에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병마절도사영으로 군사권을 행사하던 성으로 있다가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설되고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에 옮겨져서 해미읍성으로 이용되었고, 1914년까지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는 호서좌영으로서 내포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아사(衙舍) 및 작청(作廳) 등의 건물들이 빼곡히 있었으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 있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와, 현재의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외곽석장기지(官衙外廓石牆基址)가 발견되었다. 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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