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임영관지는 고려시대부터 강릉지역 관아가 있었던 건물터로 기록에 의하면 고려태조 19년인 936년에 강릉을 동원경이라 칭하고 임영관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강릉은 조선초에는 대도호부였다가 국방상 큰 위험이 없었던 까닭에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그 이후 강릉부로 구한말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태백산맥 동쪽 동해안에서 가장 넓은 평야지대가 있는 곳으로 삼국시대 이래로 이 지역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현지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강릉은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옛날부터 피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고관, 선비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접대하느라 아주 바빴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의 객사에서는 객사를 사용할 수 있는 직위를 설명하지 않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그 직위를 설명해 놓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2000년대 들어서 복원한 건물로 건축물로서 큰 의미는 없지만 강릉의 사회와 문화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강릉을 둘러보면 객사는 규정이 있어 크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강릉향교 명륜당을 비롯하여 지역유지의 대저택인 선교장 등을 보면 많은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건물규모가 크고 많은 방들을 두고 있는 것이 특색이기도 하다.
강릉 관아의 중심건물인 객사는 중대청과 좌.우 익랑인 서헌, 동대정이 있는 것은 다른 지역의 객사와 같지만 건물 앞쪽에 전대청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대청은 관찰사가 이 곳에서 임시로 근무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관찰사를 비롯하여 고관들의 방문이 잦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왕의 궐패를 모셔두는 객사 중당. 이 곳에 공민왕이 쓴 임영관 현판이 걸려 있다.
공민왕 글씨.
강릉 객사 동대청. 4칸으로 된 건물로 2칸은 온돌방, 2칸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2품 이상의 관리들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좌측의 서헌과 더불어 사신 및 중앙관료들의 숙식 및 연회, 재판, 국가 경사 및 애사시 망곡 등을 하던 곳이다.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헌보다 규모가 더 크다. 이용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에 의하면 문.무관 구별없이 사신 일행 중 품계가 2품이상은 동대청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서헌보다 위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출처:강릉시청>
강릉객사 서헌. 3품이상의 관료들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측의 동대청과 더불어 사신 등이 숙식을 하던 곳으로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대청보다 규모가 작다. 이용규정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에 의하면 사신 일행 중 정3품 관료들이 서헌을 사용했다고 한다. <출처:강릉시청>
강릉객사 중대청. 다른 지역 객사에서는 볼 수 없는 건물로 관찰사가 임시로 근무하는 건물이라고도 한다. 아마도 이 곳을 찾은 고위관료들이 머무는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건물은 고려 건축양식으로 전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양식이다. 건물의 용도에 대하여는 관찰사의 순력 등을 위한 장소로 추정되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출처:강릉시청>
여러 방향에서 본 강릉객사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객사문(국보 제51호)만 남아 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공민왕이 쓴 ‘임영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1993년에 강릉 시청 건물을 지을 계획으로 실시한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영지』의 기록을 통해 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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