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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조선시대까지 중요한 교통로 중의 하나였던 남한강 수운을 지키는 여러 산성중에서 하나인 여주 파사산성이다. 이 성은 삼국시대 신라 파사왕때 쌓은 산성으로 당시 고구려와의 투쟁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산성이다. 그 후로도 한강 수운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성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강에 있는 많은 나루터중에 하나인 이포나루를 지키는 이 성은 조선시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성들 중의 하나였지만, 이 곳 주민들은 이 성을 쌓고 유지하는 데 비협조적인 것으로 여러 기록들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산성의 형세를 보면 북쪽은 산악지대이고 남쪽은 여주와 이천의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파사산성을 쌓은 파사왕의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북쪽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데, 이 산성을 지키는 사람은 뒤에 강을 두고 있는 배수진의 형세를 취하고 있고, 남한강 남쪽 사람은 강이라는 천연의 장애물이 있어 이 산성에 대해서 협조할 필요성 많지 않다. 아마도 그래서 오랜기간 동안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계속유지하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소멸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주 파사산 능선을 따라 쌓은 파사산성. 원래 신라 파사왕이 쌓은 산성이었던 까닭에 후대에도 원형을 기준으로 계속 보강을 해 온 것을 추정된다. 성벽의 모습이 보은 삼년산성, 단양 적성산성과 비슷한 형태이다.
여주 파사산성 남문. 성문과 성루는 남아있지 않고 성문의 흔적만 있다. 파사산성은 조선후기에 새로 보강했다고 전해지지만, 그 중요성이 줄어들고, 지역민들의 산성에 대한 필요성이 많지 않아서 자연적으로 소멸되고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읍성들에 비해서 성문, 성루 등의 시설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파사산성 남문 서쪽편 언덕의 성벽.
파사산성 정상으로 오르는 길
파사산성 동문. 성문이었다는 흔적만 남아 있다. 파사산성을 오르는 길은 동문아래쪽 마을에서 시작한다.
파사산 동쪽편 아래 마을에서 약 500m 정도를 걸어 올라오면 파사산성 동문터를 볼 수 있다.
파사산성 오르는 길에서 보이는 남한강. 여주 방향으로 한강 수운에서 배의 움직임 등을 감시하기 좋다.
파사산성 동쪽편 성벽. 최근에도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서쪽편 성벽.
중간크기의 돌을 쌓아서 만든 성벽은 신라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파사산 정상
남한강변 이포대교에서 본 파사산
파사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1800m이며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신라 파사왕(재위 80∼112) 때 만든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승려 의암이 승군을 모아 성을 늘려 쌓았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남한산성에 대한 비중이 증가하여 파사성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하였다. 현재는 동문이 있던 자리와 남문이 있던 터가 남아있다. 이 성은 성의 일부가 한강변에 나와있어 강 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하기 매우 좋은 요새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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