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실] 천자로 불린 고려왕, 고려 인종 장릉 출토 유물

younghwan 2011. 12. 6. 16:54
반응형

 고려가 살았던 시기는 몽골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북방 민족의 요.금과 중국 민족의 송, 그리고 서역의 많은 나라들이 존재했으며, 서로 견제 및 협력관계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고려왕은 형식상 조공관계를 유지했지만, 국제관계의 역학 구도에 따라서 왕이라 칭하기도 하고 천자라 칭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역사 유적 또는 유물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고려 역사를 대표하는 유물 또는 기록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조선초에 역사에 대한 세탁이 한번 있었던 관계로 그런 현상이 생긴것으로 보인다. 국립 중앙박물관에는 고려 왕에 대한 대표적인 유물로 인종의 무덤인 장릉에서 출토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천자로 불린 고려 왕
고려의 후삼국 통일 이후 몽골이 일어난 13세기까지 동북아시아는 고려와 정통 중국 왕조인 송, 북방 민족이 세운 거란과 금 등이 다원적인 세력관계를 이루었다. 이러한 가운데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왕을 천자로 부르며 천자국에 맞는 국가 체제를 운영하였다. 왕을 천자.황제 등으로, 왕실을 황가로, 왕성을 황성으로 부르고, 왕의 명령을 제 또는 칙이라 한 것 등은 그 좋은 예이다. 송이나 거란.금 등에 조공하며 사대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외교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고려가 천자의 나라를 자처할 수 있었던 것은, 후삼국의 통일을 이루었다는 높은 자긍심고 함께, 당시 다원적 국제 질서 속에서 고려 스스로 또 다른 천하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고려 인종의 무덤인 장릉에서 출토된 인종 시책. 이 것은 인종의 시호를 올리며 지은 글로 형식상 후대 왕인 고려 의종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고려 제 17대 왕 인종의 시호와 생전의 업적 등을 새긴 시책이다. 인종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시책은 당대의 대표적 문장가가 그 글을 지었을 것이나, 형신은 아들인 의종이 지어 바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일, 원구에서 제사지낸 일 등의 업적과 인품을 서술한 후, 시호와 묘호를 기록하였다. 각 돌의 옆면 위아래에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어서 금실 같은 끈을 넣어 연결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끈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 원래는 글씨와 무늬를 새긴 곳에 금칠을 하고 신장상 일부에 진사를 사용하여 상당히 화려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인종의 무덤에 넣은 함. 청동으로 만든 내함과 이암으로 만든 외암의 한조로 되어 있으며, 그 용도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인종의 무덤에 넣은 함, 인종 24년(1156), 인종 장릉 출토
마름모 모양의 내함과 마름모 모양의 외함이 한 조를 이룬다. 내함은 청동으로 만들고 주석을 도금하였으며, 이암으로 만든 외암은 표면에 진사 등의 성분이 확인되고 있어, 원래 무늬를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내외함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유적에서 발견된 뼈항아리를 넣어둔 석재 외함과 비교할 수 있어, 고려시대 왕실 묘제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인종의 무덤에 넣은 청자 합, 인종 24년(1146), 인종 장릉 출토


인종의 무덤에 넣은 은수저, 인종 24년(1146), 인종 장릉 출토

숟가락은 구리가 소량 함유된 은으로 만들었는데, 자루의 단면이 납작하고 길게 휘어진 곡선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매우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젓가락 역시 은으로 만들었으며 단면이 둥글고 끝마디에 음각의 홈이 장식되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인종의 무덤에 넣은 청동 도장.

불법 수호의 상징적 동물인 사자 두 마리가 앞발로 보주를 받치고 서 있는 모양의 도장이다. 도장 면의 도형은 아직 그 의미가 판독되지 않고 있으나, 죽은 인종의 권위를 드높이는 상징물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에 죽은 왕의 시호를 올리면서 생전의 덕행을 기록한 옥책과 함께 시호를 새긴 도장을 함께 만든 점도 참고할 만하다. <출처:중앙박물관>


인종의 무덤에 넣은 청자 받침대.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받침대이다. 단이 있어 포갤 수 있고 윗면이 오목하여 내용물을 놓을 수 있단는 점 등을 미루어 여러 층으로 포개어 쌓은 합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청자 참외모양 병, 12세기, 개성부근 출토



인종의 무덤에 넣은 청자 뚜겅 있는 잔(청자유개잔)



인종 때 송나라 사신이 본 고려청자 빛깔


"(고려의) 도기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 사람들은 비색이라고 하는데, 근년에 들어 만드는 솜씨가 교모해지고 빛깔도 더욱 좋아 졌다." - 선화봉사고려도경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