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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고산 유적지 녹우당 안채

younghwan 2010. 9. 1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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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에서 수원에서 옮겨온 사랑채와는 별도로 'ㄷ'자형 안채는 어초은 윤효정이 이 곳에 자리잡으면서 지은 건물이다. 안채에는 아직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안채 툇마루에는 비료같은 농자재들이 쌓여 있고, 마당 개집에는 개가 이 곳을 찾는 사람을 맞아주고 있다. 안채 뒷쪽편에는 옛날부터 조성산 비자나무와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바람이 불면 그 소리가 꽤나 시끄럽고 시원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안채 뒤쪽에는 작은 사당이 있고, 그 담장너머로 어초은 선생의 사당과 고산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녹우당 사랑채 뒷쪽편에는 안채가 있다. 사랑채와 합쳐져서 당시 상류층 주택인 'ㅁ'자형 주택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안채 바깥쪽 툇마루에는 비료처럼 보이는 농자재들이 쌓여 있고, 안채 내부에는 후손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입문 위로 솟을대문처럼 작은 지붕을 올려놓은 것이 특이하다.

녹우당 안채 앞 마당을 지키고 있는 개.

녹우당 안채 뒷쪽편 대나무숲

녹우당 안채 뒷쪽편에 있는 사당. 아마도 녹우당을 지을때부터 있었던 사당으로 보인다.

녹우당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

녹우당 솟을대문 옆에 있는 행랑채.

녹우당 뒷쪽편 비자나무 숲에서 본 녹우당.

녹우당 안채 출입문 입구에서 서 있는 소나무

녹우당 담장 뒷쪽길


해남 윤씨의 종가이다.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호는 어초은(漁樵隱) 1476~1543)이 연동(蓮洞)에 살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사랑채 는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집을 해상 운송하여 이곳에 이전하여 녹우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해남 윤씨 종가 전체를 통틀어 녹우당으로 부르고들 있으나 원래는 그 사랑채 이름이 녹우당이다. 'ㅁ'자형을 이루며 안뜰을 둘러싼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행랑채가 여러 동 있고 집 뒤편 담장 너머에 삼신제단이 있으며 그 동쪽에 해남 윤씨의 중시조인 어초은 윤효정과 윤선도의 사당이 있다.녹우당이란 이름은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녹우당의 건축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을 진산(鎭山)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년 기념물 제 241호 )이 우거져 있다. 이 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 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 482호) 어부사시사집(漁父四時詞集)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현판은 옥동 이서의 글씨다. <출처:문화원형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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